선생님의 용기
선생님의 용기
  • 등록일 2020.01.08 20:07
  • 게재일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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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물리적 시간으로는 새해이지만 정치를 비롯해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새해는 한참 멀었다. 분명 보신각종은 울렸는데, 그 효험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사람들은 보신각종 소리에 절망적인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 그런데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희망의 결심 대신 절망의 복수에 중독되어버렸다.

성난 군중의 모습은 홍콩만의 일이 아니다. 오만과 독선에 빠진 정치인들의 작태에 이 나라 국민도 단단히 성이 났다. 촛불이라도 들고 싶지만, 이념으로 변질된 촛불은 오히려 국민의 눈과 마음을 멀게 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이념에 갇혀 도로를 오염시키는 무리가 될 수는 더 없다. 자정 능력을 잃은 사회를 사는 방법에 대한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그 사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외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방법은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 답이 없는 사회에 오로지 내 답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무리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혼돈은 단군 이래 최고다.

네거리를 지나다 어느 정당에서 내건 “국민의 힘”이라는 문구가 적힌 불법 가로펼침막을 보았다. 특정 정당의 홍보 수단이 되어버린 “국민”이라는 단어가 참 아팠다. 국민을, 그것도 국민의 힘을 저렇게 함부로 써도 될까는 생각에 화가 났다. 지정된 장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불법으로 내걸린 특정 정당 홍보물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 이 나라 국민의 실정이다.

도대체 이 나라엔 국민(國民)이 있을까? 교과서에서는, 그리고 지금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했다. 진정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교과서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국민을 기만(欺瞞)한 것이 확실하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과 국민은 정치의 도구요 수단,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국민 정치 로봇이라는 용어가 역사에 기록되기 전에 더 이상 이념 정치인들에게 농락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육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도, 교사도 아니다. 지금 학교의 주인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교육 관료들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면 학교 정책들은 하루아침에 바뀐다. ‘SKY 캐슬’에 이어 최근 ‘블랙독’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거기서 어느 기간제 선생님의 말씀이 필자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애들 보기에 쪽팔리지 않습니까!”

과연 지금처럼 간다면 2020학년도의 학교 모습은 어떨까? 달라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학생들은 의미도 없는 줄세우기식 시험에 갇혀 하늘 한 번 못 볼 것이다. 또 공시생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어른들의 편견에 떠밀려 명문대학교 진학을 위해 밤을 낮으로 삼을 것이다.

정말 학생들 보기에 쪽팔린다. 더 이상 우리는 학생들을 명문대라는 말로 유혹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초에 교사들이 용기를 내어 교육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학생 여러분, 교실에, 교과서에, 시험에 가두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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