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구스타프 말러.

오시카 마사코가 쓴 ‘누구나 마지막에 꾸는 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란 책을 보면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경험이지만 대부분이 원하지 않음에도 집을 떠나 병원에서 객사(?)하는 사람이 많은 슬픈 현실을 언급한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골목길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근조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죽음을 알리는 근조(謹弔)등은 빨강과 파랑으로 예쁘게 구성되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근조등이 달린 문 앞을 지나갈 때면 본능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의 음악세계는 ‘죽음’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1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그 중 9명이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말러가 15세가 되던 해 바로 아래 동생 에른스트가 세상을 떠난 일은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

장례의식은 모순된 분위기가 있다. 슬퍼하는 유족의 오열 속에 손님들은 문상이 끝난 후 음식을 대접받고 서로 친목하고 인사하며, 웃고 즐기는 묘한 분위기다. 형제를 잃은 슬픔이 큰 말러에게 이러한 모순된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말러가 유년 시절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 ‘장송곡이 포함된 폴카’였음에도 어린 시절 죽음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말러의 모든 교향곡에 ‘장송 행진곡’ 풍의 악장이 들어 있으며, 특히 ‘교향곡 1번의 3악장’에서는 동요를 캐논의 형태를 사용하여 장송곡으로 편곡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여기서 사용된 동요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동요인데 ‘프리레 자크’ 또는 ‘브루더 마르틴’ 등으로 불린다. 영어권에서는 주로 아이를 깨우는 노래로 쓰이며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으로 시작되는데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3악장에 동요를 단조화 하여 아이들의 장르인 동요와 죽음을 결합시키는 모순된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베토벤과 드보르작, 슈베르트 등은 9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말러도 8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9번째 교향곡 착수를 앞두고 죽음의 딜레마에 휩싸였다. 그래서 아홉 번째 교향곡을 9번 교향곡이라 명명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불렀으며 중국의 한시를 텍스트로 사용하여 연가곡과 교향곡의 혼합된 작품을 남겼다. 이후 9번 교향곡을 완성한 후 10번 교향곡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으니 말러는 그가 우려한대로 9번 교향곡을 넘어서지 못했다.

말러는 1884년 청년기인 24세에도 가까웠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죽음의 경험을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음악의 동료였던 한스 로트(Hans Rott·1858∼1884)의 죽음이었다.

말러의 친구 한스 로트는 작곡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말러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인생이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말러를 넘어서는 작곡가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19세기 말은 베토벤을 계승하고 음악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브람스를 필두로 하는 ‘보수파’와 리하르트 바그너(R.Wagner·1813∼1883)와 프란츠 리스트(F.Liszt·1811∼1886)를 필두로 극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개혁파’의 팽팽한 대립이 있던 시기였다. 한스 로트는 ‘개혁파’의 음악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베토벤 대상’에 작품을 응모했을 때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보수파의 브람스가 집요하게 선정에 반대하여 탈락시켰다. 그리고 한스 로트가 교향곡 1번을 완성한 뒤 당시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던 한스 리히터에게 보여 초연을 추진했으나 브람스는 한스 리히터(Hans Richter·1843∼1916)를 찾아와 교향곡 초연의 반대를 설득했다. 결국 초연은 무산됐으며 이후 한스 로트는 괴로워하며 정신병에 걸려 25세의 젊은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초연이 무산된 로트의 교향곡은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1989년 신시내티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됐다고 하니 한 세기가 지난 뒤 빛을 보게 된 셈이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