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자가 간다, 의성으로 간다

조문국박물관에 전시된 금동관.
조문국박물관에 전시된 금동관.

‘사라진 제국’ 조문국이 궁금하세요?
금성면 일대에 고인돌·고분 등 흔적 남아 있어
조문국박물관선 제국의 ‘흥망성쇠’ 한눈에 조망

잠시 존재했다가 영원히 사라진 제국은 인간의 상상력을 민감하게 자극한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 대서양과 지중해를 가르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화려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다는 설화 속 섬나라 아틀란티스(Atlantis)가 그렇고, 2천500년 전 지구의 30% 이상을 지배했다가 서서히 몰락해간 페르시아(Persia) 또한 그렇다.

두 왕국을 떠올릴 때면 허구와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거대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촛불처럼 초라하게 소멸해간 한 민족의 발자취가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걸 더듬는 행위는 쓸쓸하고 허허롭다.

의성에도 삼한 시대 초기엔 강력한 제국이 존재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 등에 흔적이 남아있는 조문국(召文國)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의성읍 남쪽에 위치한 금성면에 조문국의 유적지가 다수 분포돼 있다. 조문국의 당시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고인돌과 청동기로 제작된 각종 유물들. 이 두 가지는 당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문국을 통치했음을 알려준다. 초기 고대국가로의 발전을 지향했던 조문국 유적지 일대에선 신라의 금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금동관이 다수 출토됐다. 또한 왕족과 귀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古墳)도 존재한다. 조문국은 인접한 나라 신라가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충지에 자리했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가의 멸망을 앞당기는 이유가 됐다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삼국사기’는 이 사실을 이렇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현재 조문국박물관에선 특별기획전 ‘조문국의 부활’이 열리고 있다.
현재 조문국박물관에선 특별기획전 ‘조문국의 부활’이 열리고 있다.

“벌휴왕 2년(185)에 파진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가 조문국을 정벌했다.”

사라진 제국의 한가운데 자리한 ‘의성 조문국박물관’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역사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을 반겨준다. 기자가 찾은 날도 입구를 지키는 박물관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2013년 문을 연 조문국박물관에선 조문국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의성의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해 전시하고, 학술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곳”이라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 조문국박물관은 민속유물전시관과 고분전시관까지 갖추고 있다. 보물 제880호인 ‘정만록’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3호 ‘울릉도 사적’, 학미리 1호 고분에서 나온 은제환두대도(銀製環頭大刀), 붉은 간토기, 돌 화살촉, 탑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동 신발, 나비 모양 관 장식 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고인돌 모형이 전시된 조문국박물관 정원.
고인돌 모형이 전시된 조문국박물관 정원.

지금 조문국박물관을 찾는다면 특별기획전 ‘조문국의 부활’도 관람이 가능하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도 속에 선명하게 기록된 ‘召文(조문)’이란 글자를 볼 수 있다. 이는 사라진지 2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선 조문국이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면 ‘어린이 고고 발굴 체험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듯하다. 체험을 원한다면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 조문국박물관 홈페이지 http://jmgmuseum.usc.go.kr

관련 문의: 054-830-6915

빙계계곡.
빙계계곡.

늦여름 휴가는 빙계계곡으로…
‘빙혈’과 ‘풍혈’이 만들어준 ‘경북 8경’ 중 하나
김안국·이언적 기린 빙계서원도 둘러봐야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다. 번잡한 해변이나 유명 관광지의 호객 행위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의성군 빙계계곡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눈앞에서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이 답답한 도시 생활에 찌든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준다. ‘경북 8경’의 하나인 춘산면 빙계계곡을 찾은 날. 기묘한 형상의 바위 사이로 숨어든 젊은 남녀 몇몇이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물장구치며 깔깔거리는 그들의 웃음이 보기 좋았다. 독특한 이 계곡의 이름은 한여름에는 얼음이 얼고, 추운 겨울엔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는 빙혈(氷穴)과 풍혈(風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쾌하고 재밌는 작명이다. 참고로 ‘빙계 8경’은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얼음구멍, 부처막이다. 의성 중심가에서 차를 몰아 빙계계곡으로 들어서면 입구에서 빙계서원(氷溪書院)이 환하게 웃으며 여행자에게 손을 내민다. 권위적이지 않은 시원스런 처마와 널찍한 대청마루가 인상적이다. 고풍스러운 빙월루(氷月樓)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1556년 김안국과 이언적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빙계서원은 선조 때 사액서원(賜額書院·왕이 편액을 내린 서원)이 됐다. 이후 유학자인 김성일, 유성룡, 장현광을 추가로 배향(配享)했다고 한다.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시원한 계곡과 조선시대의 역사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빙계계곡과 빙계서원으로의 여유로운 여행을 권하고 싶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의 풍광.
의성 금성산 고분군의 풍광.

저 거대한 무덤들의 주인은…
21명 왕이 369년간 지배한 삼한의 고대제국
전시관선 2천년전 순장문화 볼 수 있어

20세기 초반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이 묘사해놓은 풍경 같았다. 짙푸른 풀밭이 드넓게 펼쳐졌고, 그 위로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거대한 봉분 수백 기가 솟아 있다. 쏟아지는 여름 햇살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은 드문데,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불어오는 바람에 고대 왕국의 귀족처럼 여유롭게 흔들렸다. 지상의 풍경처럼 보이지 않았다.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의 ‘고분군(古墳群)’은 약칭 ‘금성산 고분군’ 혹은 ‘대리리 고분군’으로 불린다. 고분이 위치한 지역은 까마득한 옛날 존재했던 조문국의 도읍지로 짐작된다. 현재의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다. 21명의 왕이 369년간 지배권을 행사했던 조문국. 금성산 고분군은 이 왕국의 대표적 유적지다. 모두 200여 기의 고분이 높이를 달리하며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경덕왕(신라의 경덕왕이 아닌 조문국의 왕)의 능(陵)과 고분전시관 등이 방문자를 기다린다.

고분전시관은 지난 2009년 발굴된 대리리 2호분의 내부를 재현했다. 출토된 여러 점의 유물을 볼 수 있고, 2천 년 전 매장 풍습 중 하나인 순장(殉葬·왕이나 귀족이 사망하면 산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법) 문화에 관해서도 설명해주고 있다.

이곳은 분명 일종의 ‘공동묘지’임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주위 풍광이 빼어나 산책하는 이들은 그 사실을 깜빡깜빡 잊게 된다. 봄에는 작약이 화려한 꽃을 피워 아름다움과 운치를 더한다고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잠든 프랑스 파리의 묘지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 못지않다. 만약 내년 5~6월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다면 금성산 고분군의 소나무와 작약꽃을 두 사람 사랑의 증인으로 세우고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고운사의 목어.
고운사의 목어.

고운사 오르는 길 ‘푸른 그늘’ 속으로
연꽃 닮은 ‘명당 중의 명당’에 지어진 신라 고찰
최치원의 손길 남아있는 가운루·우화루 볼 만

약사전, 석가여래좌상 등 보물급 문화재가 몸을 숨긴 절은 물론 좋았다. 더불어 사찰로 올라가는 길 역시 매력적이었다.

고운사(孤雲寺)는 신라 때 유교·불교·도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던 학자 최치원(857~?)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절이다. 그는 두 명의 승려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었다. 681년 창건 당시엔 고운사(高雲寺)라 불렀는데, 이후 최치원의 호가 사찰의 이름이 됐다고 한다.

‘명당 중 명당’이라는 반쯤 핀 연꽃을 닮은 지대에 창건된 고운사는 도도한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어 의성군 단촌면에 당당한 위세를 자랑하며 우뚝 서있다.

푸른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낸 고운사 대웅보전.
푸른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낸 고운사 대웅보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 아래에서부터 걸어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푸른 그늘’을 이야기했다. 고운사로 오르는 길은 시원스럽고 미려하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한다. 여름날, 더없이 좋은 선물이다.

사찰 경내엔 진분홍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그 붉은색이 초록색의 수목과 잘 어울렸다. 어디선가 풍경 소리가 들려왔고, 떠들썩하고 분주했던 마음 한 켠이 물속처럼 고요해졌다.

규모가 제법 큰 절이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곳곳에서 흥미로운 유물을 만나게 된다. 산을 내려온 청설모도 한두 마리 눈에 띄었다.

동승(童僧)의 순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관광객이라면 고운사 주변 풍광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 분명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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