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시인
김현욱 시인

여름휴가 동안 정독(精讀)하고, 초서(抄書)한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이 깨어>, 김윤규 교수의 <다산, 장기 유배 문학 산책>, 이상준 향토사학자의 <영일 유배 문학 산책>,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 정찬주 작가의 <다산의 사랑>, 박석무 교수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이소정 작가의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 등이다.

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에 나오는 조선판 오렌지족, 대전별감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한양의 밤(?)을 주무르던 안도환이 조선의 3대 유배 섬 중 한 곳인 추자도로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 모습에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안도환이 지은 유배가사 <만언사>는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였다.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제법 인기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은 다산이 강진 주막 봉놋방에서 중국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 대신에 <아학편>이라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정독이라면, 필요한 것을 가려 뽑아 따로 정리하는 독서법을 초서라고 한다. 다산은, “책을 초록(抄錄: 글이나 문장 따위에서, 필요한 대목만을 가려 뽑아 적음. 또는 그 기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면서, 아들 학유에게,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百家)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여름휴가 동안 읽은 책들의 공통점은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였다. 다산이 경상도 장기에 220일 동안 유배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01년 3월 9일, 다산은 경상도 장기에 도착한다. 장기에 머물던 220일 동안 다산은 130수의 시와 <이아술>, <기해방례변>, <촌병혹치> 등의 책을 남긴다. 특히, 인간 정약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130수의 시는 경상도 장기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시켰던 것처럼,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책에서 필요한 문장과 구절, 낱말, 유배 정보 등을 <220일>이라는 공책을 만들어 따로 정리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목차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보니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는 다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첫-’을 잊지 못한다. 다산에게 경상도 장기는 첫 유배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를 온 신세였다.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경상도 장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옆에 한 소년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의 경상도 장기 유배 동화 <220일>은 다산의 독서법, 초서 덕분에 그 뼈대를 점차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