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지속’
이정동·권혁주 외 지음·민음사 펴냄
인문·2만5천원

‘공존과 지속: 기술과 함께하는 인간의 미래’(민음사)는 권혁주, 김기현, 장대익 교수를 비롯해 서울대 이공대·인문사회대 23인의 석학이 합작한 ‘한국의 미래’ 프로젝트가 만 4년 만에 일궈 낸 집합 지성의 결실이다. 유전기술·에너지·인공지능·교육의 4대 핵심 분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종합 리포트하며 신기술이 우리 사회에 연착륙하기 위한 ‘공존과 지속’이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전의 기술 혁신 관련 논의들이 이공계 위주로 펼쳐졌다면 2015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기술혁신과 우리 사회의 접점을 논하며 이공계는 물론 인문사회계의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마련된 데 의의가 크다. 에너지시스템 분야를 맡은 이정동 교수를 비롯해 권혁주(행정대학원)·김기현(철학과)·장대익(자유전공학부) 교수 등이 교육미디어, 유전공학, 인공지능 분야의 좌장을 맡았다. 중국에서 얼마 전‘유전자가위’ 기술로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내성이 있는 아기를 탄생시켰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진보인가, 아니면 생명의 영역에 인간이 개입하는 위험한 시도인가? 이와 같은 문제를 둘러싼 과학적·철학적 쟁점이 책의 1부 ‘유전자 편집의 시대’에서 깊이 있게 다뤄진다.

융합의 전문가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장대익 교수가 대담을 이끄는 가운데, 유전자가위를 개발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클래리베이트(Clarivate))이자 “동아시아 10인의 스타 과학자”(‘네이처’)로 선정된 김진수 교수가 유전자교정 기술을 직접 설명한다. 이어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이두갑 교수가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기초생물학을 연구하는 김홍기 교수가 유전자 편집의 사회적 효과로 논의를 확장하며, 판사직을 역임한 뒤 철학과로 옮겨 온 김현섭 교수가 생명공학의 법적·윤리적 함의를 짚는다. 유전자편집이 건드리는 사회 영역들을 망라해 가히 ‘어벤저스’를 떠올리는 구성이다.

AI 전문가가 철학과 교수들과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눈 인공지능 파트에서는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해소된다. 컴퓨터공학부의 문병로 교수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큰 차이점 중 하나인 ‘기호의 접지(symbol grounding)’를 들어, 기호와 의미를 연결하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있지만 컴퓨터에게는 없다는 점에서 컴퓨터가 사람의 존재 가치 자체를 훼손하는 일은 아주 먼 미래라고 말한다. 이어 철학과 김기현 교수가 로봇의 인간화보다 오히려‘인간의 로봇화’가 더 큰 위험이라고 지적해, 공감을 축소해 가는 인공지능 시대에 공동체 정신의 유지로 우리 삶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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