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침묵 : 소음의 시대와 조용한 행복’
엘링 카게 지음·민음사 펴냄
인문·1만3천원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침묵센터는 최근 성장하고 있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 LA 선셋 대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레이크 쉬라인(Lake Shrine)’ 사원은 “고독한 침묵”을 약속한다. 외국의 풍경만이 아니다. 힐링, 휘게, 욜로, 소확행의 중심에는 고요함이 있다. 고독과 침묵에 대한 수요는 우리 시대의 특징인 ‘소음’에서 발생한다. 소음의 시대. 침묵은 거의 멸종됐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돼 있다. 더욱이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현대인의 진짜 비극은 바쁨에 대한 욕구에마저 익숙해져 있다는 데에 있다. 필요한 건 자기만의 방만이 아니다. 방에 있어도 소란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침묵이 필요하다. 그러나 침묵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모두에게 똑같이 열려 있지 않다. 침묵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불평등하고 어떤 이에게 침묵은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침묵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침묵인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

‘자기만의 침묵 : 소음의 시대와 조용한 행복’(민음사)은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이자 작가인 엘링 카게(56)가 남극 탐험 과정에서 경험한 침묵을 바탕으로 철학, 음악, 문학, 미술을 망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사람들이 어떻게 침묵을 정의하고 자기만의 침묵을 만들어 냈는지 탐색한 생활 철학서다.

예수, 아리스토텔레스, 비트켄슈타인, 존 케이지, 뭉크, 올리버 색스 등 철학, 음악, 문학, 미술을 망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사람들이 추구한 침묵 애호는 관념으로서의 침묵을 생활 수단으로서의 침묵으로 변화시킨다. 다양한 사례와 자료를 통해 침묵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실생활에서 침묵을 만들어 가는 방법을 무겁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이 책은 침묵이 인생을 경험하는 우아한 방법이자 시간을 사용하는 신비로운 체험임을 증언한다.

엘링 카게 /민음사 제공
엘링 카게 /민음사 제공

누구나 침묵할 수 있지만 모두가 침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침묵에 대한 여느 책과 달리 이 책은 카게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오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침묵의 체험기다. 본문 중간중간 극지의 절대 고독을 전하는 사진 역시 카게가 직접 찍은 것이다. 설상 스쿠터도 개썰매도 식량 저장소도 없이 세계 최초로 북극에 도착한 엘링 카게는 1993년, 역사상 최초로 혼자, 그것도 걸어서 남극에 도착했다. 1994년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도 올랐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며 타임지로부터 “모험의 한계를 밀어내고 있는 현대의 탐험가”라는 극찬을 받은 그가 한계 상황에서 마주한 것은 침묵의 순간들이다. 존재의 결정체와도 같은 그 완결한 순간의 경험은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하는 삶의 무기가 됐다. 그의 체험은 침묵에 대해 우리가 물어야 할 33개의 질문과 대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이야말로 경험하는 책이다. 침묵이 우리 시대의 필수‘사치품’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카게는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며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고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