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프랑스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본성·욕망·좌절 냉철히 그려낸 걸작
1920년대 프랑스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본성·욕망·좌절 냉철히 그려낸 걸작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1.17 18:35
  • 게재일 2019.0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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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매’
글렌웨이 웨스콧 지음·민음사 펴냄
장편소설·9천800원

미국 문학사에서 독특하고 이색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글렌웨이 웨스콧의 대표작 장편소설 ‘순례자 매’(민음사)는 길지 않은 분량과 뛰어난 가독성으로 한 호흡에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비록 지난 세기에 쓰인 작품이지만 마치 어젯밤 벌어진 술자리를 기록한 것처럼 생생하며, 지극히 모던한 방식으로 ‘사랑과 욕망’이라는 감정을 담고 있다.

일견 20세기 중반의 귀족적 생활양식과 이성애 결혼 제도를 희화화한 것처럼 보이는 ‘순례자 매’는 웨스콧의 정수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순례자 매’인 루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성과 욕망, 좌절과 적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차례의 전쟁, 지난 세기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던 1920년대 프랑스.‘순례자 매’의 화자(이자 작가의 분신) 알윈 타워는 1920년대 후반, 프랑스의 전원 마을 샹셀레에 자리한 절친한 친구이자 미국 출신의 부호 알렉산드라 헨리의 저택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앞으로 닥쳐올 어떤 파국(2차 세계대전)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듯,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이곳 샹셀레에 세계 전역을 여행하는 지방 귀족이자 유산 계급의 컬렌 부부가 찾아온다. 화려한 용모를 지닌 데다 수다스러운 컬렌 부인, 그녀의 남편이자 어딘가 권태로워 보이는 얼굴의 래리 컬렌. 그리고 그들 사이에 엄숙하게 버티고 앉은 한 마리의 매, 루시. 오직 반나절 동안, 아름답고 나른한 풍광을 배경으로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밑도 끝도 없는 열망과 치명적인 불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감정의 도가니가 칼에 베인 상처처럼 움푹 입을 벌린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듯 스러져 가는 모든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컬렌 부부와 그들의 어긋나 버린 관계를 잔인할 만큼 냉정하게 관찰하는 주인공, 또 저택 뒤편에서 자기들만의 격정적인 드라마를 피로(披露)하는 하인들…. 샹셀레 저택에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순례자 매’는 마침내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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