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를 찾아서-장기 할매바위> 저녁에 물든 '용모' 설화 실감
<문화의 향기를 찾아서-장기 할매바위> 저녁에 물든 '용모' 설화 실감
  • 윤희정
  • 등록일 2004.02.20 18:57
  • 게재일 2004.0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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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할매바위
포항시 남구 장기 땅은 일찍이 유배지가 된 오지였다.

유배지의 특징중의 하나가 빼어난 자연환경이고 그 환경에 걸맞는 푸른 동해 바다가 지척이요, 토함산에서 흘러내린 맥이 만리성재를 넘어 동악산(252.5m)으로 멎어 있는 곳이다.

산의 계곡을 감돌던 시내가 모여서 장기천으로 고요히 흘러내리고 물에는 지금도 유유한 은어 떼들이 지천으로 올라오는 곳. 여기에 송시열 정약용 같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그 님들의 귀양살이에서 남긴 행적은 장기고을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으며 우암을 배향 한 죽림서원이 있고, 다산의 유배문학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쓸쓸한 바람은 석우 마을에 불고 눈앞에는 세 갈래길 두말은 서로 울어 예지만 그놈들은 가는 곳 알 턱없네 한 놈은 남쪽 땅 신지도로 가야하며 또 한 놈은 동으로 장기로 가야하네 형을 신지도로 유배 보내고 그는 장기로 가야하는 애 타는 마음을 읊은 도하담(到荷潭)의 앞부분이다. 그런 애절함은 없더라도 우리도 그를 따라 장기로 간다.

면사무소 맞은편으로 장기천을 따라가면 동해의 맑은 바다를 향한 길이 있다.

이 길은 장기천의 방뚝이 되고 길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가 장기천과 함께 흐른다. 그 산줄기의 중간 즈음에 작은 마을이 있으니 이곳의 논으로 산에 잇대어 선 채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가 있다. 이 바위가 할매바위이다.

형상이 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할매바위라 듣고 보는데도 도무지 그 용모가 안 잡히는 것이다.

장기 사람의 마음을 못 읽은 까닭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보고 가곤 하던 어느 날은 눈이 번쩍 뜨이게 드러나는 얼굴이 있었다. 겨울날 오후 기우는 햇살에 비친 얼굴이었다. 서너 번은 족히 다녔을 때의 일이다.

10여m 높이의 할매바위는 쪽진 머리에 이목이 뚜렷하다. 무언가에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그런 표정으로 앙 다문 입에 심통이 있는 대로 나셨다.

앞으로 쏠린 머리와 둥글게 튀어나온 눈, 유난히 날카로운 콧날과 토라져 굳게 다문 입은 누가 무어라 한마디만 거들어도 오만 사연을 다 토해낼 그런 표정이다. 그 입에 가장 많은 인공(人工)이 묻어있다.

코 아래로 인중과 입 주위를 둔기로 거칠게 떼어내면서 자연스럽게 균열 진 부분과 만났다. 그 곳은 입이 되고 떼어낸 부분은 노인 특유의 입가 주름처럼 묘사되었다. 간단한 서술로 할머니의 얼굴이 완성된 것이다.

천인합작(天人合作)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마는 튀어나오고 볼은 살이 빠졌다. 살이 빠져 주름이 잡힌 입과 이마에서 흐르는 선이 만든 메부리 코, 눈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이마의 명암으로 그림자가 눈빛으로 되었다. 태양의 점안(點眼)이다.

과거, 우리들의 어머니께서는 수건으로 머리를 싸고 눈부심을 막았다. 그와 똑같은 머리형용이다.

여기에 옛 얘기가 있어 전한다.

저어 용 바위에도 말이 있어. 저 아가리 바로 거어 묘가 있는데, ‘창암’사람 꺼라. 성가라꼬 그지 아매. 그 집안 사람이 여기다가 묘를 써서 발복을 했는 데, 큰 부자가 됐어. 부자가 되고나이 손이 많에. 얼메나 오는지 손이 하루도 없는 날이 없어. 끊이잖코 오는기라. 메누라가 진절머리가 나. 그리 손은 마이 오고. 한날은 어떤 중이 와서 시주를 달라꼬 그래. 이 메누리가 “주는거는 얼매든지 주꾸나 마는 우리집에 오는 손 좀 어예 덜 오게 해도가” 하는기라. 그르니게 그 중이 하는 말이, 도스이라. “윗대 할배 누구누구 묘가 저짜 맞능교” 하는기라. 글타 하이께네, “거어 가서 용 아가리에 이러이러한 돌이 있는데, 그돌을 깻뿌라” 그래. 그래가 밑에 하인을 델꼬가서, “거 가면 꼭 용 아가리 같이 생겼는데, 그 아가리 안의 돌을 깨라 그래. 그래가 그 돌을 깨고 나니까 거짓 말처럼 손이 딱 끊기드래. 그게 여의준데, 여의주를 깻뿌랫지. 지금도 가만 그때 돌 깨진 게 마이 있어. 그래가 그 집이 쫄당 망했다 그지. 손도 끊기고.” 동류의 풍수 설화는 경향각지에 많이 구전되고 있다. 할매바위 뒤로 이어진 산줄기도 같은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할매바위에서 산을 따라 오른 쪽으로 가다가 산이 끝나는 부분을 보면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른다. 이른바 산진수회. 바위는 용의 머리가 되고 그 앞은 산의 기를 함축하는 혈처가 된다. 여기에 분묘 한 쌍구가 있다. 노인의 말 그대로다. 노인의 말대로 거대한 용의 입처럼 바위가 벌어져 있는 형국이다. 그 아래 묘 주위로 파편과 같은 큰돌과 부스러기가 또한 흩어져 있다. 설화는 이것으로 어느 정도 사실성을 지닌다. 유사 동종의 설화와도 같이 교훈적인 얘기다. 가늠해 봤을 때 입 사이의 돌은 6,70여㎝는 족히 되지 않았을까. 주위에 흩어진 크고 작은 돌의 개수와 덩어리로 추측해 본 수치이다. 앞에 소로가 있어서 하금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이 된다. 할매바위는 그 주위와 앞이 논으로 돼 있다. 모심기 직전 논물에 비친 바위의 위용도 볼만 하지만 가을 추수 뒤나 겨울에 가면 좋다. 원래가 고즈넉한 외진 곳이기도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한 시간이면 낮은 조도에 명암이 살풋하여 그 형용이 더 살아난다. 놀에 물든 용모에 설화를 실감케 하는 물색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동해 그림 같은 바다가 낙조를 드리우고 있다.

<암각화 연구가 이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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