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레밍(lemming)이라는 이름의 쥐과 동물이 있다. `나그네쥐`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동물은 집단을 이루고 살며 우두머리를 따라 직선적으로 이동하다가 모조리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80년 8월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전두환이 곧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고 말해 큰 논란이 일었다. `레밍`이 `들쥐`로 번역되는 바람에 더 이상해진 위컴의 발언은 `망언`으로 간주돼 격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지식인들이 위컴의 발언은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그의 진단에 타당한 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외국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감정과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 국민들 가슴에서 쌍곡선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 정치사는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지도자 추종주의`를 여지없이 입증한다. 군소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벌이는 끊임없는 `당쟁` 폐습, `패거리` 문화가 정치사 곳곳에 우여곡절을 자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침략과 수용 문화를 동시에 지닌` 중국의 대륙기질이나 `음흉한 침략본성을 지닌` 일본의 섬나라기질과 비교하여 한국인의 특성을 `남의 땅을 넘보지도 않고 들어오는 세력을 쫓아내기만 하는` 다혈질적인 반도기질로 설명하기도 한다.

북한의 다섯 번째 핵실험과 사상 최강의 경주 지진사태 등 대형 악재로 민심이 온통 뒤숭숭하다.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진 재앙을 동시에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작금 상황은 전대미문의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들을 보면 존 위컴 사령관의 말이 반드시 맞는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북한의 가공할 핵미사일에 대비하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국민들이 드러내고 있는 반응에는 좋은 의미에서의 `레밍 근성`이 전혀 없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면서도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반응에는 깊을 대로 깊어진 님비(NIMBY)근성만 여실하다. 경주 강진(强震)은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등식을 완전히 깨부쉈다. 한반도의 지진 발생 빈도수는 2000년을 기점으로 연 19회에서 40회로 뚜렷하게 증가했다. 지진 강도도 규모 2.0 이하에서 3.0~4.0 정도로 강해졌고, 규모 5.0 이상의 지진까지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 육상에서 발생한 지진의 46%가 영남 동부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통계는 끔찍하다. 경주 강진 이후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진에 대한 낯선 역사기록들이 날아다니고, 동해안에 집중된 원전시설의 안전문제를 비롯, 건물의 내진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경고들이 난무한다. 하나같이 요긴한 관심들이다. 제기되는 문제점과 대안들은 국민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 놓칠 수 없는 테마들이다.

그런데 과연 며칠이나 갈까. 장구한 세월 목도해온 우리 국민들의 `냄비기질`이 불현듯 사라지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국민들은 또 다른 관심을 좇아 이리저리 흩어질 개연성이 높다. 불행에 대한 망각이 인간 삶의 영속성을 뒷받침하는 지혜인 것은 맞다. 그러나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나 `지진재앙`의 가능성은 그렇게 잊어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 민족의 `레밍 근성`은 남한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 반면, 북한에서는 `김씨 왕조`라는 희대의 독재정권을 온존케 만들고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먼저 자기중심적 공공정신 결핍 증상이나, 쉬이 뜨거웠다가 금세 싸늘해지는 습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트린 시련은 `님비(NIMBY)근성`이나 `냄비기질`을 그냥 두고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있는 난제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