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태백과 7포 세대는 어느덧 일상용어가 된 지 이미 오래고 많은 청년들은 스스로를 `헬조선`이라는 단어 아래 가둬놓고 희망과 꿈을 포기한 안타까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년들의 자세는 모든 이의 귀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본지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26세 청년들의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나만이 할수 있는 일 조각가의 꿈에 `뿌듯`
승희동 조각가
어릴때부터 손재주 뛰어난 동물 애호가 청년영남대 미술 전공… 군시절 창작대회 대상도
순수예술인 삶 희망… 내년 첫 개인전도 기대
승희동(26)씨는 청년 조각가이다. 정확히는 조각가를 꿈꾸고 있지만, 대학 졸업 이후 주변 선·후배들의 작품에 함께 참여하며 조각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보면 언제나 뿌듯합니다.”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예술고와 영남대학교 디자인 미술대학을 졸업한 승희동씨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 특히 손으로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조소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언제나 손에서 뭘 놓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살아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그림이나 지점토로 표현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술인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의 종손이었던 승씨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위해 예술고로 진학했고, 이후 조소로 전공을 정해 2009년 당시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조소과에 입학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해서도 꾸준히 미술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던 승씨는 군대에서도 연대장 표창을 받아 휴가를 나온 적도 있다며 자랑했다.
“진중창작대회에서 대상을 탔었습니다. 그래서 포상휴가를 다녀온 적도 있죠.”
승씨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또 승씨도 집안의 든든한 지원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승씨는 설명했다.
“솔직히 힘들고 배고플 때가 정말 많습니다. 어떨 땐 며칠을 꼬박 세워 작업할 때도 있고요. 그러나 편안하고 안전한 삶보다는 내가 하고 싶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이 길을 선택했어요.”
승씨의 작품에는 유독 동물과 관련된 작품이 많았다. 미술을 하기 이전에는 꿈이 동물 사육사였을 정도로 동물을 사랑했던 승씨는 대학시절 길러보지 않은 동물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기르던 동물들이 너무 많아 부모님으로부터 혼나기도 했을 정도. “제 생일날 부모님이 미역국을 끓여 주시러 자취방에 오셨다가 집안을 점거하고 있던 개, 고양이, 앵무새, 거북이 패거리를 보고 매우 놀라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수업을 듣던 도중에 집으로 돌아와 꾸중을 들으면서 미역국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승씨는 앞으로도 계속 예술인의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찾진 못했지만, 먼 훗날 자신이 존경하는 Nick bibby처럼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순수예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사이에서 언제나 고민하곤 합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나 나만의 예술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내 작품의 가치를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승씨는 내년도 생애 첫 개인전 준비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길 잃은 꼬마의 영웅 `경찰관` 꿈이 현실로
김보영 포항남부경찰서 순경
초등학생부터 장래희망은 언제나 `경찰`
경찰행정학과 진학, 경찰공무원 꿈 이뤄
안전한 교통 책임지는 `교통전문가` 목표
자신의 직업을 천직(天職)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격무에 시달리다 직업과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거나, 반복되는 업무에 싫증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2014년 12월 12일 경찰에 임용된 포항남부경찰서 김보영(26·여) 순경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눈치다. 사람이 꿈을 찾는 계기는 다양한데, 김 순경은 어릴 적 겪은 한 사건으로 경찰을 동경하게 됐다.
“유치원 다닐 때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울면서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어떤 경찰 아저씨가 저를 발견하고 부모님을 찾아주셨죠”
길을 잃고 두려움에 떨던 김보영 어린이의 눈에는 그 경찰관이 슈퍼맨만큼이나 듬직하고 멋있는 영웅으로 보였을 법하다. 그때부터 김 순경의 꿈은 대한민국 경찰관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 여느 아이들처럼 변덕이 심했지만, 학기 초 희망직업을 적을 때는 진지했다고.
“경찰관 임용시험 당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했는데, 희망직업 적은 걸 보니 모두 경찰이었어요. 사실 저도 조금 놀랐죠(웃음)”
경찰을 꿈꾸던 어린 소녀는 한 발짝씩 전진했고, 경찰행정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김 순경은 1년 동안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꿈을 향한 간절함이 통했는지 단박에 합격했다.
요즘은 많은 청년이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면서 `공무원 되기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런데 김 순경 가족은 겹경사를 맞았다. 함께 시험을 치른 그의 오빠(29)도 경찰관 배지를 달게 된 것이다. 현재 오빠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을, 동생은 포항을 지킨다.
대구 토박이인 김 순경이 포항으로 온 동기는 좀 특이했다. 타향살이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바다가 좋아서 포항 근무를 원했다고 한다. 경산에서 신임순경 현장실습을 마친 그는 지난해 포항으로 발령받았다. 포항남부경찰서 효자파출소를 거쳐, 현재는 이 경찰서 경비교통과 교통관리계 홍보단속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여리고 앳된 모습처럼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치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순수함이 배어나는 천상여자 그 자체였지만, 앞으로 어떤 경찰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사뭇 진지해졌다.
먼저 교통안전 캠페인이나 강의 등을 할 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갖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만큼 기쁠 때가 없다며 자신의 업무를 자랑했다.
“우선은 지금 맡은 교통관련 홍보단속업무에 집중하고 싶어요. 단속에 불만을 느낀 민원인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 힘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하는 만큼 현실적인 개선 효과도 뛰어나서 뿌듯할 때가 많아요”
김 순경은 교통관리계 업무를 보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새내기 때는 형사 등 많은 부서에 욕심을 냈지만, 지금은 교통전문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오늘도 안전한 교통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길 잃은 꼬마에게 경찰의 꿈을 안겨준 경찰 아저씨처럼 벌써 영웅이 된 건 아닐까.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