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일곱번째 안부 - 봄이, 짱이, 소낙비
예순일곱번째 안부 - 봄이, 짱이, 소낙비
  • 슈퍼 관리자
  • 등록일 1970.01.01 09:00
  • 게재일 2009.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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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는 화실로 출근합니다.

짤막한 다리로 힘겹게 3층 계단 끙끙 올라

그림 그리는 엄마 곁에서 납작한 코, 동그란 눈으로 종일 맴돌지요.

음악을 들으며 콜콜 잠을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식 생각이 나면 킁킁 조르기도 하고

위층 체육관에서 아이들 포도 알처럼 쏟아지면

유리문 앞으로 가서 물끄러미 내다보기도 합니다.

봄아~

지나는 길에 문 밀고 들어서면 어찌나 반가워하는지요.

겅중겅중 뛰고 뱅뱅 돌고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눈빛을 줍니다.





짱이는 회사에 출근합니다.

큰딸이 낳은 아이를 봐주느라 아내가 서울로 간 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을 짱이가 걱정되어 데리고 출근하는 아빠,

간식과 사료 그리고 담요까지 꼼꼼하게 챙긴 배낭 속 빵빵 합니다.

그 녀석 물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면

사장님 체면이고 뭐고 짱이 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일가친척 없는 곳에서 젊은 날을 다 소진하며 기업주로 산 세월

컸다고 훌쩍 떠나 저 살기 바쁜 자식들이 서운할 때 마다

정 붙이고 맘 나눈 게 짱이였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짱이가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장난처럼 말하면

무슨 소리냐고 얘처럼 예쁜 애가 어디 있냐고 펄쩍 뛰는

짱이 아빠 보는 마음 간혹 짠할 때가 있답니다.

그게 뭔지 아니까요.





우리 소낙비는 바닷가 마을에 삽니다.

제가 베란다에 앉아 신문을 보면 주둥이를 쭈욱 깔고 곁에 자리를 잡구요.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다 `소낙비야, 오늘 바람 참 좋재?` 하면

눈 지그시 감고 까만 코 발름거리며 `그렇네요` 바람 냄새 맡지요.

태어난 지 40일이 되어 와서 12년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았으니

제가 하는 말, 눈빛, 마음까지 죄다 읽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얼굴로 말입니다.

이젠 녀석도 늙어 예전처럼 뛰노는 일은 줄었지만

글 쓴다고 앉은 늦은 밤이나 어쩌다 홀로 마시는 술상 앞에는

여전히 눈 맞추고 소낙비가 있네요.





봄이 엄마, 짱이 아빠, 그리고 소낙비 엄마는 압니다.

통하는 말 때문에 통하는 글 때문에 막혀버린 세상에서

아무것도 통하는 게 없어 최선을 다하는 녀석들.

그 맑은 눈망울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깊은 소통이고 울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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