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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다가

등록일 2025-03-23 18:07 게재일 2025-03-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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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7일, 찬바람이 감돌던 시기에 겹백도화 어린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날은 어디 먼 곳을 떠돌던 어린 영혼 하나가 나를 찾아온 날이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백도화 심는 일이 기념식수 행사처럼 되고 말았다. 나무를 심으려니 땅속에 큰 돌이 있어 그걸 뽑아내는 데만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적잖은 고역을 치른 셈이다.

문제는 나무 심기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마당을 풍성하고 화사하게 가꾸고 깊은 마음이 점차 짙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꽃과 나무가 있으면 하나둘 공책에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묘목 가짓수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헤아려 보니 7종 24주 나무를 심은 것으로 드러났다.

3주 동안 겹백도화, 목수국 12주, 홍화 산사나무, 왕보리수, 블루베리 4주, 꽃사과 3주, 말발도리 2주와 원평소국, 은배초 같은 초본식물을 화분에서 마당으로 옮겨 심은 게다. 여러 종류의 꽃씨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우려 애쓰고 있기도 하다. 왜 이런 마음이 생겨났을까?! ‘금강경’ 제2 사구게(四句偈)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을 이어가노라니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1895∼1970)의 아주 짧은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1953)이 떠오른다.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어낸 소설인데, 마치 실화처럼 오해되기도 한 작품이다. 50대 중반 사내 엘제아르 부피에가 30년 넘는 장구한 세월 나무를 심어 황야를 녹지로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핵심 줄거리다.

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3년에 시작한 이야기가 제2차 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까지 이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나무의 생태 때문이다. 나무는 풀과 달리 생장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1년생 풀과 8,000년을 산다는 용혈수(龍血樹·dragon’s blood tree)는 그야말로 비교 불가(不可)다. ‘장자’ ‘내편’ 가운데 ‘소요유’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와 땅강아지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목숨이 짧은 것들이다.” 목숨이 짧은 것들의 이항 대립에 장자가 제시하는 대상은 ‘대춘(大椿)’이다. 팔천 살을 봄으로 삼고, 팔천 살을 가을로 삼은 나무가 대춘이다. 거목은 예로부터 숭배와 존숭의 대상으로 섬겨진 신물(神物)이기도 하다.

불과 한두 달 전 혹은 한두 해 전의 일이 머나먼 과거처럼 여겨지는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대춘’ 같은 나무는 상상하기 어려울 터다. 마을마다 등 굽은 소나무 이야기가 전해지고, 서낭당 곳곳에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오랜 전설을 간직했던 아름다운 시간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하되 지나간 것들은 향수를 불러오는 법!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신비를 10년 넘게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를 지탱할 동량지재(棟梁之材)의 부재를 절감한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숨 쉬는 일마저 괴로운 기나긴 내란 정국을 지나가면서 울울창창 호호탕탕 독야청청 우뚝하게 커나가는 거목의 생장을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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