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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이 간직한 최고 유물은 ‘마애여래삼존불’ 아닐까

이용선기자 · 홍성식 기자
등록일 2024-11-12 18:16 게재일 2024-11-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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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br/>&lt;14&gt; 위엄 갖춘 신라 유물 선도산 마애 여래 삼존불
‘선도산의 보물’이라 불러도 좋을 마애여래삼존불.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무너지고, 파괴되고, 시간에 깎여나간 것들이 멀쩡하고, 번듯하고, 번쩍거리는 것보다 매혹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들은 때로 폐허와 상실을 아름답게 받아들인다.

20년 전쯤이다. 인도를 여행했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낡은 버스와 연착을 거듭하는 기차를 갈아타며 인도 남부 내륙 깊숙이 자리한 도시 ‘함피(Hampi)’를 찾아갔다.

아주 오래 전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수도였던 함피는 힌두왕국과 이슬람제국이 번갈아가며 지배한 지역.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자주 갈등과 반목이 있었다. 함피도 다르지 않았다.

힌두왕국이 번성할 때 이슬람 세력은 웅크렸다. 힌두교도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을 탄압하고, 그들의 종교가 발붙일 수 없도록 억눌렀다. 이슬람 세력은 ‘우리가 권력을 얻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힌두교도의 통치가 끝났을 때 등장한 새로운 지배자는 이슬람제국이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힌두교와 힌두교도에 대한 가혹한 핍박이 시작됐다.

힌두교를 신봉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고, 힌두교가 섬기는 갖가지 신(神)의 형상은 모조리 목이 날아갔다. 이슬람교도의 보복이었다.

파괴된 함피의 신전과 조형물은 지금까지도 온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 무너진 유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함피를 ‘아름다운 폐허’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서진 유적과 유물은 부서진 유적과 유물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을 터. 그래서다. 1986년 유네스코는 폐허의 함피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산 정상 우뚝 솟은 안산암 암벽 위 고부조로 새겨

얼굴·몸 많이 훼손 됐으나 여전한 위용으로 자리

얼굴 온전히 남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6.4m 남짓

좌우 양쪽 두 보살상 은은한 미소·부드러운 곡선

보존상태 양호 복식·지물 등 세부특징 확인 가능

신라인들이 신성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선도산 일대 고분들.
신라인들이 신성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선도산 일대 고분들.

◆세월과 세파도 온전히 파괴하지 못한 선도산의 불상들

올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경주 선도산을 찾았다. 선도산이 간직한 최고의 유물은 누가 뭐래도 마애여래삼존불이 아닐까?

처음으로 그 불상을 봤을 때 20년 전 인도 함피에서의 기억이 소환됐다. 시간에 깎여나가고, 세월에 풍화되며 잊힐 수도 있었던 신라의 석불(石佛)은 21세기인 오늘도 실체로 우리들 앞에 존재하고 있다. ‘경이(驚異)’는 이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닐지.

명지대 미술사학과 최선아 교수는 바로 이 마애여래삼존불이 무열왕 시기에 만들어졌다 추정하며 ‘신라 陵墓(능묘)와 추선 佛事(불사): 서악동 고분군과 선도산 아미타삼존불입상’이란 논문을 쓴다.

논문에 쓰인 ‘아미타삼존불입상’은 마애여래삼존불을 지칭한다. 같은 불상을 이야기하는 것. 그 논문은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의 외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신라의 왕경 경주 서편에 위치한 선도산(仙桃山)의 정상에는 높이 6m가 넘는 마애불이 조성돼 있다. 우뚝 솟은 안산암 암벽 위에 환조에 가까울 정도의 고부조로 새겨진 불상은 현재 얼굴과 몸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상의 현존 높이는 5.81m이지만 얼굴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가정하고 복원한 높이는 6.4m 남짓이다. 불상의 좌우에는 각각 높이 4.49m와 4.56m의 보살상이 서있는데, 두 상은 안산암이 아니라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미국 NBA 농구팀. 그들 가운데 최장신 선수보다 2배 이상 큰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의 가운데 불상.

법흥왕 이후 신라의 국교로 역할했던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만들어졌을 7세기 당시 그 불상의 미려함과 섬세함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왕이나 최상층 귀족의 명령에 의해 신라 최고의 석공(石工)이 조각했을 터이니.

◆‘아미타삼존’을 표현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 가운데 가장 큰 불상은 마모와 훼손이 심하다. 반면 양쪽에 선 두 보살상은 파괴의 정도가 덜하다. 그래서, 여전히 은은한 미소와 부드러운 곡선을 확인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위의 논문은 이 보살상에 관해 서술하며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을 언급한다. 아미타삼존은 아미타불을 중앙에, 그 좌측에 관음, 우측에 세지(勢至)의 양 보살을 안치한 삼존을 말한다. 다시 한 번 논문을 인용해보자.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 보살상 역시 부분적으로 마모됐으나 불상보다는 보존상태가 양호해 상호와 복식, 지물, 장신구 등 중요한 세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불상의 왼편, 즉 좌협시보살상의 보관에는 화불(化佛·부처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일)이 남아 있어, 세 구의 상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하는 아미타삼존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그마치 1400~1500여 년 전. 이름도 남기지 않은 신라 석공은 우뚝한 불상 하나와 보살상 두 개를 힘겹게 만들어 왕릉을 굽어보게 했다. 바위를 깎고 다듬는 지난하고 긴 작업이었을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도 희미하게나마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유적과 유물엔 만든 이들의 피땀이 깊게 배어있을 터. 이는 신라와 백제가 다르지 않고, 동양과 서양이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을 바라볼 때면 그걸 깎아 세운 신라 석공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계속)

심하게 훼손됐지만 근엄한 표정이 느껴지는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의 현재 모습.
심하게 훼손됐지만 근엄한 표정이 느껴지는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의 현재 모습.

서산과 태안에도 마애여래삼존불이…

불교는 꽤 오랜 시간 우리 땅을 지배한 종교이자 통치이념이었다. 신라와 백제가 그러했고, 고려 또한 사찰과 그 안에서 수도하는 불승(佛僧)을 귀하게 대접했다.

한국에서 ‘명산’이라 불리는 곳엔 대부분 큰 사찰이 있고, 불당과 인근 바위에선 수많은 불상과 보살을 만날 수 있다. 그 형태와 예술적 완성도는 각기 다르지만.

그러니, 한때 ‘불교왕국’이라 불렸던 신라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있는 경주에 불상과 보살상이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도 그런 차원에서 보고 해석해야 존재 이유가 선명해진다.

마애여래(磨崖如來)란 ‘바위에 새겨 넣은 부처의 형상’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삼존불(三尊佛)은 뭘까? 어렵지 않은 한자이니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하다. ‘3개의 존엄한 부처’라는 뜻이 아닌가.

비단 옛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만이 아니다. 앞에 말한 것처럼 불교는 한 시대의 통치이념이자 많은 백성들이 믿었던 종교였다. 그런 까닭에 경주 이외의 다른 지역에도 ‘마애여래삼존불’이라 불리는 불상이 존재한다.

‘위키백과’가 “백제 후기 중국 및 고구려와의 해상 교통을 통한 불교문물 수용의 요지였던 서산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중앙에 여래 입상의 거구(巨軀)를 양각(陽刻)하고 여래의 오른쪽에 보살 입상을, 왼쪽에 반가사유형 보살좌상을 배치했다. 삼존에 나타난 고졸(古拙)한 미소는 백제 불상의 특이상(特異相)으로 지적된다”라고 설명하는 건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이다.

가야산 적벽에 부조(浮彫)된 이 불상은 ‘법화경’ 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귀한 유물. 1959년 4월 보원사지 유물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고, 이후 국보고적보존위원회가 국보로 지정했다.

충청남도 태안 동문리의 마애여래삼존불은 백화산 바위에 새겨져있다. 이 불상은 신라와 함께 패권을 다퉜던 또 다른 고대왕국 백제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마애여래삼존불보다 더 빨리 조각됐을 것으로 여겨지는 태안 동문리 마애여래삼존불에 관해서 ‘나무위키’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마애불 가운데서 가장 초기 작품 중 하나로 판단되며, 그 형식에서도 아주 특수한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삼존불은 크게 묘사된 석가모니와 같은 본존불의 좌우로 보살이 보좌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 마애여래삼존불은 중앙에 위치한 작은 보살의 좌우로 중앙 보살보다 큰 여래입상이 있는 대단히 특이한 형태다. 이런 형태는 현재까지 발견된 마애불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것이다.”

태안 동문리 마애여래삼존불 역시 경주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바람과 파도에 깎여 본래의 형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라인이 만든 것이건, 백제인이 조각한 것이건 1500~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마애여래삼존불이 가치 있는 유물이란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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