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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화 ‘기생충’이 보내는 메시지

강희룡 서예가사람에게 기생충(寄生蟲)은 이나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과 회충 또는 십이지장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 있다. 조선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도 대부분 중국의 각종 의서 내용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쳤다. 그 예를 보면 ‘사람이 고단할 때 열이 있으면 충이 생기는데 이 심충(心蟲)을 회충, 비충(脾蟲)을 촌백충(寸白蟲), 폐충(肺蟲)은 누에와 같으니 모두 사람을 죽이는 병으로서 그 중 폐충이 가장 급한 병이다’ 라고 천금방(千金方)의 기록을 인용했다.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수 1천만을 넘었다. 인간 기생충을 다룬 이 영화는 한국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흥행은 현실의 사회상을 반영한 대중성이 높을수록 성공한다.내용을 살펴보면, 지상과 지하를 경계로 지상의 집에 도착해도 다시 계단을 오르는 부유층과 반지하에서 작은 창문 틈을 통해 위를 봐야 세상이 보이는 지하방, 그리고 더 지하로 내려가서 사는 하층계급을 다룬다.이 영화에는 계획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부자인 IT회사 사장은 직원들과 회사경영의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을 성공시켜 부를 이루지만, 가난한 계층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니, 하루하루를 살며 무계획을 계획으로 살아가게 된다.땅을 경계로 지상과 지하 즉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층으로 지상은 언제나 풍족하고 폭우 앞에서도 걱정 없지만, 반지하부터는 물에 잠겨 피난을 가야 한다. 신계급주의사회의 양단에 살고 있는 두 가족의 거주형태는 빈민계층 사람들이 아무리 위로 올라가려 해도 불가능해 현실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없는 자의 몸에선 늘 가난이란 냄새가 공통적으로 풍긴다. 이 냄새는 옷을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 찌든 생활의 냄새이다. 빈민층끼리는 못 맡지만 부유층에선 쉽게 맡아 이 냄새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삶이 고통으로 찌들면 여유가 없어 남을 배려하거나 동정심은 사라지고 증오와 미움만 남는다는 인간심리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유층은 빈민층이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한다. 이 선이란, 운전기사는 기사로서, 가정부는 가정부로, 각자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되 상부층에 도전하지 말라는 선이다. 기생충 가족이 일시적으로 성충이 되어 보지만, 결국 못 견디고 숙주(宿主)가족을 공격한 후, 파멸되어 스스로 본연의 자리인 지하로 내려간다.달팽이는 몸속의 수분이 많이 증발하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달팽이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매일같이 바위 위로 올라와서 갈매기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는 갈매기 몸속에서 번식할 수 있는 기생충이 달팽이를 이용한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개미도 있다. 평소에는 풀숲 사이로 기어 다니던 개미가 기생충의 공격을 받으면 자꾸만 풀잎 끝으로 기어오른다. 그리곤 풀을 뜯는 가축의 장으로 들어간다. 초식동물의 장 속에서 번식하는 것이 이 기생충의 삶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빈부의 양극화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살아가는 동선을 보면 거의 안 겹치는 게 현실이다. 기생충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을 숙주로 한 것이다. 어둠속에서 유권자들이 맡긴 권력을 이용하여 청탁이나 횡령 등으로 부패한 공직자들, 정치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대중매체 등을 이용해 그들의 의도대로 대중조작해 언론소비자들을 마취시키는 행위에 편승한 언론사는 회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며, 패거리 정쟁을 일삼고 일을 안 하는 국회나 직권남용 같은 사례는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들이다. 대체로 이런 기생충들은 정치 후진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독버섯 같은 기생충이 토착화하기 전에 완전 제거가 안 되면 사회와 나라는 병들어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2019-08-12

교사의 평가 자율성 확보해야 창의력 교육 꽃핀다

조현명 시인·교사한국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106으로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지능지수에 창의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창의성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이 창의력을 막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의력은 질문할 용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학교에서 질문하는 아이는 버릇없고 쓸데없는 생각을 가진 아이로 취급되기 쉬운데 질문은 어디까지나 학습하는 진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범위를 넘어가면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범위를 제한하면 창의력이 담길 수 없다. 시험성적을 위해서 정해진 답을 암기해야하는 현실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질문은 금물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성적향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으나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기자가 질문하려 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토론 강의 서두에 단골로 올라온 영상이다. 그때 강사들의 질문은 ‘왜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려 하지 않았을까’이다. 이 화두는 충격을 주기 위함이고 반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 이래서 한국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비판정신도 없고 어쩌고 하는 평을 늘어놓아 반성적으로 토론강의에 임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기자들이 질문과 토론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자회견의 질문자가 정해져있는 데다가 미국 대통령에게서 나올만한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질문자가 정해지지도 않고 답변도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적당한 문제를 내어주고 프로젝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문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열정이 있고 충분히 아는 것도 많으며 해결점을 찾고 조직하고 적용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호기심과 끈기를 그들의 잠재력을 보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그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꾸어 내는 창의적인 두뇌들도 있다. 감탄할 만하다. 이런 경험을 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탈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국력이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상을 타지 못할 뿐이라는 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창의력을 억누르고 있는 학교의 교육시스템, 그것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방법이 올바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르면서 오지선다형인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의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왜곡되어 오고 있다. 고3의 2학기 수업이 파행적인 것이 대표사례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나마 평가를 다양하게 유도하는 듯 보이나 학교에서 시행되는 중간·기말고사의 성적이 사실상 과목별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100%인 다양한 형태의 수행평가로 시행되는 고교는 드물다. 공정성 때문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평가방법의 개선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숙명여고 사건이나 여타 성적조작 사건으로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문책하는 편이지 평가에 대한 자율권은 조금도 인정해 주진 않는다. 바칼로레아라는 논술평가를 시행하는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교사가 교과서도 없이 자신이 직접 조직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자율권을 가지고 평가한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그대로 따라 간다. 프랑스의 시스템에 한국 학생들이 배운다면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은 아마 우주를 뚫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인재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이다. 교사의 평가를 믿어주고 성적조작이라는 시선으로 공정성만 요구하다보면 평가개선은 요원해지고 미래를 여는 창의력 교육은 어려워진다.

2019-08-12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삶(2)

동굴 속 답답한 공기와 달리 맑고 달콤한 산소가 폐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활력을 몸에 공급합니다. 밤이 되자 눈뜰 용기를 냅니다. 하늘에는 뭇 별들이 반짝입니다. 교교한 달빛에 비친 나무며 들판이며 산들을 바라봅니다. 하룻밤을 흥분으로 지새웁니다. 눈이 현실에 적응합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세상 만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 뛰어가는 사슴 한 마리.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꿩 한 마리를 봅니다. 경이로움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침내 죄수는 용기를 내어 가장 강렬한 빛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죄수가 경험하는 세상을 ‘진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동굴 안에서 희미하게 보던 삶을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시(可示)적 영역이라면, 동굴 밖 세상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가지(可知)적 영역이라 말합니다. 가지의 영역에서는 태양으로 비유한 선의 이데아, 즉 만물의 궁극의 제1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삶, 진정한 앎에 이르도록 빛을 비춰 준다고 말합니다.지성으로만 알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캐묻는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하지요. 캐묻는 삶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금광에서 황금을 캘 수 있는 비결입니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진정한 삶을 한 번 본 사람은 거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굴로 돌아가야 합니다.다시 어둠에 적응해야 하고, 밖에서 본 것들을 죄수들에게 설명하고 사슬을 끊고 방향을 돌려 밖으로 탈출하자고 설득해야 한다는 거죠. 죄수들은 익숙해진 삶에 태클을 걸고 자꾸만 캐묻는 이 작자가 귀찮아집니다. 결국, 죄수들은 밖에 나갔다 온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자고 결의합니다.아테네 법정에서 죽을지라도 캐묻는 삶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소크라테스 존재와 죽음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진정한 골드러시는 생각에서 황금보다 소중한 것들을 캐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축제입니다. 익숙하게 살고 있는 먹구름 아래 현실이 어쩌면, 동굴 안의 죄수와 같이 희미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자기 인식과 성찰. 동굴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 같이 가자고 부추기는 진정한 친구.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삶이 고난의 통로를 거치고 진흙으로 엉망이 된다 해도, 빛을 만나 안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진정한 황금은 우리 생각 안에 이미 가득 매장되어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2

디지털디톡스

디지털디톡스는 세계적으로 디지털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운동을 말한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디지털 중독 치유를 위해 디지털분야에 적용하는 디톡스요법을 디지털디톡스라 한다. 디지털 단식이라고도 한다. 세계적인 IT회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도 디지털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슈미트는 2012년 5월20일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인생은 모니터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 한시간 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강조했다. 디지털디톡스 운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다섯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인터넷 휴(休)요일’을 만들거나 한 시간 정도 ‘디지털과의 이별’을 연습하라. 둘째 디지털기기와 단절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하는 생각을 예방하기 위해 생각의 목표를 설정하라. 셋째, 디톡스의 궁극은 침묵에 있기에 꼭 필요한 말외에는 하지 않는 ‘말의 침묵’, 불필요한 행동은 자제하는 ‘표현의 침묵’, 필요한 것에만 관심을 두는 ‘정신의 침묵’, 불같이 화를 내지 않는 ‘열정의 침묵’, 남에 대한 선입견을 품지않는 ‘상상의 침묵’을 시도해보라. 넷째, 디지털디톡스를 결심했다면 다음 날 기상한 순간 무엇을 할 지를 정해두라. 다섯째, 메신저로 수다를 떨고 싶은 욕심이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마다 공책을 임시보관함 삼아 생각을 적어두라.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하는 디지털디톡스 5계명을 소개했다. 침대로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기, 이메일 계정 로그아웃하기, SNS와 모바일 메신저 알림기능 끄기, 디지털기기 대신 종이책 보기, 온라인 접속시간 측정하기 등 5가지다.디지털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디지털디톡스가 디지털을 매개로 전개되고 있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만큼 디지털중독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름휴가가 한창인 요즘, 하루만이라도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한 처방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12

진정한 ‘광복(光復)’은 지금부터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연일 폭염특보가 발령되고 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 데도 기세가 여전하다. 최고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극장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복동’과, ‘봉오동전투’가 항일영화로 받아들여져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영화 ‘김복동’은 본다”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못 보는 경우 표를 예매하는 ‘영혼보내기’가 진행되고 있다. ‘봉오동전투’는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어느덧 1400회가 되며 맞이하는 제74차 8·15 광복절의 의미가 그래서 더 각별하다.‘광복(光復)’은 일본의 식민통치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권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백가쟁명 시대라고 하더라도 최근 언론에 보도된 극우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우리 안의 식민성을 돌아보게 한다. 지만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반일 나선 개돼지들’이라는 제목 하에 “위안부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은 위안부 소녀상 옆에서 “한일동맹을 고의적으로 파탄 낸 문재인은 하야하라”고 주장하며 “아베 총리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속에 편 가르기를 하며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어려운 시국에 함께 뜻을 모으기는커녕 역사의식의 부재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인 기준이다.우리들은 사회에서 태어나고 역사를 통해 성장한다. 지금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내부가 먼저 단합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적폐청산’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만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안의 부끄러운 모습과 모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을 넘어서 차제에 독자적으로 경제기술을 개발하고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일본 아베정권이 경제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면 구한말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또 다시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구호만이 아닌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친일(親日)’, ‘반일(反日)’이라는 프레임 논쟁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극일(克日)’을 하려면 ‘지일(知日)’과 ‘용일(用日)’의 마인드가 요청된다. 미 국무성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를 활용하여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문화적 특성을 파악해 전후 관리를 구상하고 도모했던 것처럼,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일본에 대한 격앙된 감정과 우리 내부의 소모적 논쟁을 극복하고, 일본의 ‘혼네’를 정확히 파악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동학들과 인제 만해마을로 하계 워크숍을 다녀온 덕분에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행적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것으로’ 라는 물산장려운동과 국산품 애용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자립 운동을 이끈 한용운 선생은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하였다. “개인은 개인의 자존심이 있고 국가는 국가의 자존심이 있나니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한다”며 재판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만해 소식을 보도한 오래된 신문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폭염과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보내면서 더욱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한일갈등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대립되는 시선이다. 우리의 앞날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열망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광복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는가?

2019-08-12

한국에는 없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성과를 낸다. 하나는 계층 간 대립을 해소하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계층 간 대립은 정치의 안정을 해치는 불안한 요소다. 그러나 가진 자 특히 귀족층의 용기 있는 양보를 통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요즘 부자들의 도네이션 등이 이런 것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국민을 통합하는 힘이다. 기득권층의 솔선수범 정신은 국민을 하나로 묶고 사회적 역량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이런 경우는 고위층의 청렴성과 높은 도덕심이 관건이 된다.지금 우리가 맞이한 정치적 상황은 매우 불안스럽기 짝이 없다. 대외적으로 북한의 핵 도발과 미사일 발사, 한미일 안보공조의 불안감,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 등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국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으로 달리는 정치적 대립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설상가상이다.여야 정치인 모두가 좀 잘 풀어갔으면 하는 국민적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지도층이 지금쯤 꼭 새겨야 할 정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려 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의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다.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시의 시민정신은 아직도 많은 후손에게 회자되는 교훈의 장이다. 영국 정부가 전쟁에서 이기고 모든 칼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동안 저항한 죄를 물어 6명의 대표를 처형키로 결정했다. 누가 단두대에 오를 6명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문제를 두고 칼레시는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 때 도시 최고의 부호가 가장 먼저 목숨을 내놓기로 자청한다. 그러자 곧 칼레시의 시장과 고위 관료들이 줄지어 목숨을 내놓기를 자청하면서 칼레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도시가 된다.우리의 정치인 및 고위 관료가 이런 상황에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역사적 교훈을 백번 익혀도 한번 실천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청와대가 2기 장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검증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은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11

‘쓰레기통’ 엎어놓고 ‘미래’를 팔다

안재휘 논설위원‘애국가’가 위험하다. 이 나라 헛똑똑이 리더들의 어리석은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반일(反日) 선동에 혈안이 된 집권당 인사들의 경거망동 또한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주제의 공청회를 열고 “친일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도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행적 문제로 애국가가 논란이 된 바 있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안익태에 대한 단편적 평가도 그렇거니와 대한민국 근·현대사 내내 불린 애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지금 일본의 무역보복을 막아내는데 ‘애국가’ 시비가 대체 무슨 해법이 되는가.최재성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한 라디오에 나와 방사능 물질 검출을 이유로 “도쿄를 포함해 여행 금지구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나아가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말했다. 올림픽 보이콧은 일본의 무역보복보다도 더 천박한 망발이다. 후쿠시마 방사능과 연결해 내놓는 궤변이 교졸하기 짝이 없다.여기자 성추행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과 김현 민주당 사무부총장, 최민희 전 의원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코피를 흘리는 그림이 들어있는 ‘일본 가면 코피나(KOPINA)’ 티셔츠 판매를 홍보하고 있다. 그 밖에도 지자체들이 만국기에서 일장기를 내리고, 일본 연수단 방문을 거절하고, 직원들이 쓰는 일본 문구들을 폐기 처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 중구 서양호 구청장은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과 청계천 일대 등 중구 전역에 1천100개의 ‘노 저팬’ 깃발을 걸겠다고 나섰다가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깃발을 도로 내리는 망신을 당했다. 시민들이 위정자들보다 더 성숙한 의식을 발휘해 ‘무차별 선동’을 꾸짖은 셈이다.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어리석은 판례를 남겼다. 한국 사법부는 이 판결을 ‘사법 적극주의’라고 지칭하지만, 국제적으로 ‘사법부가 외교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말하면 한국은 1965년 청구권협정을 인정하는 게 옳다.우리 정부는 어떻게 했어야 온당한가. 일본 정부의 반발을 예측하고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에 명시돼 있는 대로 후폭풍에 대해 적극적으로 외교력을 발휘했어야 마땅했다. 제3조 2항에 명시된 ‘중재’ 조항대로 내놓은 일본의 중재 제의 자체를 우리 정부가 8개월 동안이나 묵살했다는 대목은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아베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모조리 미심쩍다.우리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반일(反日)’이 아니라 ‘반 아베’로 가는 것이 슬기롭다는 것을 훤히 꿰고 있다. 일본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므로 현 정권이 문제이지 일본 국민 모두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더 잘 깨닫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함께하며 평화롭게 살아야 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돼 과거의 냄새 나는 ‘쓰레기통’을 모두 엎어놓고 나라의 ‘미래’를 몽땅 헐값에 팔아먹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망동은 중단돼야 한다. 반론자는 물론 신중론자들마저 무차별적으로 악의에 찬 ‘친일’ ‘매국’ 딱지를 붙여대는 정치꾼들의 저열한 행태는 즉각 청산돼야 한다. 국민을 속이다 못해 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는 그 엉큼하고 어리석은 속셈일랑 당장 거두는 게 맞다.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의 애국가가 새삼 뭉클하다.

2019-08-11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삶(1)

생각 속 황금은 어떻게 캐낼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을 결정한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 자신은 포테이다이아와 암피폴리스 그리고 델리온 전투에서 그대들이 나를 지휘하라고 임명한 장군들이 머무르라고 명령할 때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장소를 죽음을 무릅쓰고 지켰습니다. 그랬던 내가, 지혜를 사랑하며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이 인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캐묻는 데 삶을 바치라고 신께서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도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캐묻는’ 데 있다고 말하지요.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 삶의 목적이므로 설령 죽음에 이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할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제자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캐묻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갑니다. 동굴의 구조가 특이합니다. 벽 앞에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단히 결박해 놓은 상태로 평생 한 번도 뒤를 돌아볼 수 없었고 오직 앞만 볼 수 있습니다. 뒤편에는 담이 있고 그 담을 끼고 길이 나 있습니다. 담 뒤편에 큰불이 피워져 있어서 그 불빛에 사물들이 비치고 죄수들은 담 위를 오가는 물건들의 정체에 대해 그림자를 보고 유추합니다. “아. 지금 당나귀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구먼.” “이번에는 두 사람이 가고 있네.” “바윗덩어리가 굴러간다.” 이런 식으로 그림자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거지요. 죄수들은 세상만사를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본질이 아닌 피상적인 생각으로 평생 살아갑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합니다.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게.”동굴은 비스듬히 지하 쪽으로 깊게 파 내려가 있고 불이 피워진 담 아래쪽으로 밖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가 존재합니다. 풀려난 죄수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자유의 걸음을 한 발씩 딛게 되지요. 통로를 따라 오르막을 기어오르자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출구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망막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다시피 하고 동굴 밖으로 나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1

북한의 권력 세습, 남한의 재벌과 교회 세습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세습(世襲)이란 권력이나 재산, 신분, 직업 따위를 가족이나 친족끼리 승계하는 것을 말한다. 개방된 민주사회에서는 특권, 재산, 권력, 명예이든 어떤 것이든 세습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산의 세습을 막기 위해 최소 50%에서 최대 65%까지 상속세를 부과하여 부의 불평등을 막으려고 한다. 자유 민주 사회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 경쟁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은 출발에서부터 과정, 결과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분단의 세월 70여 년, 같은 민족인 남북은 추구하는 정치 이념에 따라 사회의 구조와 관행도 상당히 이질화되어 있다. 남북한은 세습행태도 다른데 북은 권력 세습, 남은 재벌세습이 심각한 문제이다.북한의 권력세습은 3대에 걸쳐 이루어지고 비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봉건 왕조국가도 아닌 나라에서 백두혈통이 세습의 기본 요건이 된 것은 아이러니이다. 백두 혈통이란 김일성이 백두산을 거점으로 부인 김정숙과 항일 빨치산 투쟁을 했다며 붙여진 명칭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김정일마저 백두산 정일봉 아래서 태어났다고 선전하는 것도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북한당국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령승계론을 제시하였다. 수령은 인체의 뇌수처럼 가장 중요하며 북한의 전 인민은 수령의 수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북한의 학자들도 ‘위대한 조선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백두혈통의 권력세습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북한 땅에서 수령에 대한 비판은 ‘국가 존엄 모독’으로 숙청을 당한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도 이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재산의 상속도 인정치 않는 북한체제에서 권력의 3대 세습은 그들만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종의 도그마이다.남한사회에서도 재벌 세습은 경제 정의 실현의 최대 장애물이 된 지 오래다. 재벌(財閥)이란 가족과 혈연으로 이어지는 거대 자본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삼성, 현대, 롯데, LG, SK 등은 대표적인 재벌이다. 한국어 고유명사인 재벌은 한국 경제의 독특한 모순 구조로 이해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재벌 세습이 한국에서는 당연시되어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한국 재벌의 위장 상속, 분식회계, 배임과 횡령, 땅콩 회항 등의 횡포는 이제 다반사가 되고 있다. 한국의 재벌은 정치, 사법, 심지어 언론권력까지 교묘히 장악하여 재벌의 세습구조를 이어가고 있다.이같은 재벌 세습에 이어 교회 세습이 우리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장로교회 중 등록교인 10만이 넘는 초거대 명성교회는 목사의 부자세습 문제로 시끄럽다. 성경 어딜 찾아보아도 교회의 부자 세습을 정당화하는 구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경은 오히려 하느님의 참된 자녀는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고, 세상의 탐심을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드디어 대한 예수교 장로회교단 재판국은 며칠 전 명성교회 부자 세습은 교회법상 ‘무효’라고 심판하였다. 그러나 명성교회의 현직 장로들은 합법적 절차를 내세워 후임결정이 결코 세습이 아니라는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세속의 재물이 교회에 침투한 결과로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북쪽의 권력세습이나 남쪽의 재산 세습은 자유 평등사회의 구현의 장애물이다. 김정은의 3대 권력 세습은 북한의 모든 권력을 독점화하여 인민들의 인권마저 말살하고 있다. 남쪽의 재벌 세습은 부의 독점과 편중으로 경제 정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구조는 인민들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종식되어야 할 사안이다. 북한은 최소한 권력의 집단지도 체제라도 등장하길 바란다. 남한의 재벌구조는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최소한 자본과 경영이라도 분리되어야 한다. 민족 통일을 위해서라도 남북의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 남북의 세습구조가 해소될 때 남북의 교류 협력은 더욱 촉발되고 통일의 새벽은 가까이 올 것이다.

2019-08-11

관찰하는 사람

김현욱 시인사다리차가 들어온다. 뒤따라 이삿짐차가 들어온다. 주차 된 차를 빼달라고 인부들이 휴대폰을 들고 분주히 오간다. 하나둘 차가 빠지면 사다리차가 튼튼한 지지대를 내린다. 사다리차가 겹겹이 접혀있던 사다리를 펴 올린다. 7층 베란다 난간을 겨눈다. 난간에 담요를 덮는다.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위치를 맞춘다. 짐을 올릴 사다리차 바닥이 몇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삿짐차 문이 열리고 짐이 쏟아져 나온다. 짐이 올라간다. ‘아, 이사를 왔구나!’ 누가 이사 왔는지는 모른다. 저 사람들은 인부들이다. 저기 저 위 베란다에 있는 아주머니가 주인인가? 책이 많은 걸 보니 집에 학생이 있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화분도 제법 자리를 차지한다. 초등학생이 타는 자전거와 킥보드도 보인다. 집에 초등학생이 있는 모양이다.이상은 우리 아파트에 이사 풍경을 관찰한 글이다.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기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이렇게 대놓고(?) 관찰한다. 그러다 운 좋게 시를 몇 편 얻기도 한다. “이사//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 밖으로/ 사다리차 바구니가/ 오르락내리락/ 고개 내밀어 보니/ 침대 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부지런히 내려가는/ 이삿짐들/ 여태/ 누가 살다/ 누가 가는지 몰랐는데/ 짐이 이사 가네/ 짐만 살다 가네.//’, ‘인사// 분리수거장 앞에// 낡은 장롱/ 깨진 벽거울/ 다리 한쪽 부러진 식탁/ 주저앉은 소파/ 둘둘 말아 놓은 전기장판/ 칠 벗겨진 옷걸이/ 빨간 끈에 묶인 전집/ 내려앉은 책장/ 녹슨 세탁기// 잘 있다 간다고/ 인사도 못하고 간다고/ 친구네 대신/ 그렇게 한 이틀 서 있었습니다.//”관찰(觀察)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이다. 주의(注意)는 마음에 새겨 집중한다는 말이고, 살피다는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따지고 헤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관찰보다는 익숙한 판단을 따른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캠릿브지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은 중요치 않고, 첫번째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나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글자가 엉망진창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읽을 것이다. 관찰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 13가지 창의성 도구 중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관찰’이다. 이 책에는 위대한 관찰자들이 나오는데, 화가 조지아 오프키는 “나는 그전에도 천남성을 많이 보아왔지만 그 꽃을 그렇게 집중해서 들여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드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고 말했다.미술 선생님이었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도록 시켰다. “열다섯 살이 되자 나는 사람의 얼굴, 몸체 등도 다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비둘기 발밖에 그리지 않았지만 어느 때는 모델 없이도 그릴 수 있었다.” 피카소는 한 사물을 유심히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다른 것들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관찰은 모든 창의성의 시작과 끝이다. 관찰은 인내가 필요하다. 후천적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순리가 그리하듯 “관찰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삶에서도 관찰은 중요하다. 붓다가 설했다.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나는 분명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9-08-11

향기

김순희 수필가어머님 생신이라 모든 가족들이 모인 몇 해 전 8월이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눈도 뜨지 못하고 여간해선 사람 손에 잡히지 않는 날쌘 고양이가 겨우 기어서 시댁 문 안에 들어왔다.허약해서 어미 고양이가 버린 새끼였다. 남편의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밥알을 몇 개 앞에 놓아주니 얼른 먹어치웠다. 생선살도 주워 먹더니 작은 먹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피곤함을 잊은 듯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조그만 몸으로 온 가족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도 귀여움을 내뿜고 있다.마음이 동한 남편이 며칠만 키우자고 하자, 안 된다 아파트에서 어찌 돌볼 거냐고 자르기도 전에 두 아들이 똥도 치우고 목욕도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예전부터 아이들은 친구들이 애완견을 키우는 것을 부러워했었다. 못이기는 척 일주일만 돌보고 보내자며 집에 데려오는 것을 허락해주었다.상자에 담아 차에 싣고 오면서 우리 집 남자 셋은 고양이 이름 짓기로 들떠있었다. 남편이 나비라고 외치자 둘째는 야옹이 어떠냐 했다. 큰아이는 노란 얼룩무늬라고 치즈라고 하자고 했다. 신호에 걸려 창밖을 보니 꽃가게 이름이 ‘풀향기’였다. 고양이에겐 관심도 없던 내가 무심코 “향기 어때?” 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다고 반겼다. 그렇게 향기는 한여름에 우리 집으로 왔다.나는 무엇을 돌보는 것에 약한 사람이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여느 엄마들이 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도 업어주지 않아서 다 자란 후 포대기를 동서에게 물려줄 때 보니 새것처럼 뻣뻣한 풀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손을 탈까봐 많이 안아주지 않았더니, 잠투정 한 번 하지 않고 컸다.아이들이 순한 탓도 있지만 남편 말에 의하면 계모 같은 엄마가 받아주질 않으니 아이들이 알아서 큰 거라고 했다. 이런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아기 고양이가 가까이 오려하면 발로 슬쩍 밀어냈고, 곁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작은 덩치로는 기어오르지 못하는 높은 소파 위나 침대에만 앉았다.몸에 닿으면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불러서는 데려가라고 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기는 자꾸만 내 옆에 다가왔다. 모두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집에는 나와 향기만 남는 일이 많았다. 못 먹어서 뼈만 남은 다리로 소파를 암벽 등반하듯 겨우 기어올라서는 내 무릎에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분명 집을 따로 만들어 주고 폭신한 방석까지 깔아 주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운 내 등에 자기 등을 붙이고 있었다.엄마를 잃고 내게 자꾸만 달라붙는 고양이가 애처롭기 시작했다.외출해서도 혼자 있을 향기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계단을 오르는 내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고 현관 앞에 두발을 모으고 기다리는 것도 기특했다. 고양이의 상징인 도도함을 버리고 다가오는 향기에게 나도 마음을 주기로 했다.사랑하면 보이나니, 고양이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져 향기가 내게 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몇 천 년 전 이집트에서 곡식을 갉아 먹는 설치류 때문에 길을 들이게 된 고양이는, 무역하는 배를 타고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해지던 삼국시대에 들어 왔다.마차에 실려 오는 불경을 쥐들이 갉아먹자 그 속에 고양이를 함께 태워왔다. 불교가 다른 종교를 가진 내게 고양이를 선물해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달이 지나자, 나는 향기의 집사가 되어 있었다. 모임에 가서는 아들 자랑하듯 고양이 이야기가 수다의 주제가 되었고, 귀여운 동물의 눈빛에서도 향기가 보였다. 길가에 핀 노르스름한 꽃을 보아도 향기의 보드라운 가슴털이 떠올랐다. 고양이에 관한 백과사전을 섭렵하며 울음소리와 행동이 조금만 이상해도 조바심을 냈다. 향기가 내게 없던 모성을 일깨워주고 있었다.그렇게 육 개월이 지났다. 덩치도 다 자라 제법 아가씨 고양이티가 났다. 남편과 나는 미뤄오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반려묘로 살아가려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저 조그만 몸에 칼을 대야 한다니 애처로워서 자꾸만 시기를 늦추었다.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은 향기를 데리고 산책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밤이 늦어서 돌아온 남편은 혼자였다. 차마 수술은 못하겠어서 좁은 우리 집보다 넓은 시골집인 시댁이 나을 거라 판단하고 시댁에 데려다 준 것이었다. 주말에 향기를 보러 갔다가 돌아온 날, 어머님이 전화로 한 말씀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우리 차가 떠난 곳을 향기는 한참이나 바라보며 매번 서너 시간 앉았더란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지금은 무지개다리 건너간 향기가 그립다.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만났을 것이다. 향기가 왔던 여름이다.

2019-08-11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강하다

장욱현영주시장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야 말았다. 최근 일본이 무역과정에서 우대 조치하는 백색리스트+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진 중대한 사안임과 동시에 우리지역에서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현실이기도 하다.일본이 먼저 수출제한 조치를 했던 불화수소 등 우리지역에 소재한 기업인 SK머티리얼즈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식각가스의 고도화와 영주시가 주력하고 있는 향후 로봇산업과 무기 등 군수산업에 필수품인 부품소재 첨단베어링 분야에도 미치는 영향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어려운 현실을 맞이해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 우리 영주시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의 선명하고 확실한 성과를 거둘 것이 틀림없다.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불안한 정치상황 속에서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한 발짝이라도 앞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변화를 수용하면서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영주시는 힐링중심, 행복영주를 시정목표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데 힘써 왔다. 영주가 자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에 걸 맞는 생명력 넘치는 도시로 영주를 바꾸어 보자는 꿈, 다른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는 행복도시를 영주의 비전으로 삼았다.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책과 실천이 필요하다. 영주는 다양한 정책으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의 기반을 착실히 다져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주의 면모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먼저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첨단베어링산업을 비롯해 영주의 도시 경쟁력을 높일 새로운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베어링은 첨단산업 핵심부품으로 해외시장 100조원, 국내시장 6조원에 이르는 미래 첨단산업의 하나로,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왔다.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었으며, 국가산업단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영주에서 추진되는 또 다른 국책사업인 중부권 동서내륙철도건설 사업 등 영주를 철도 물류 중심도시로 부활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진행 중이다.다음으로 농업혁신을 통해 부자농촌의 기반을 다져왔다. 서울 청계산 한우 프라자, 석촌역 농·특산물 직판장, 인천 문학경기장 영주한우셀프장 등 지역 우수 농·특산물의 직거래를 통한 수도권 시장을 확보했다.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베트남 호찌민, 미국 로스앤젤레스 농·특산물 홍보전시 판매장 개장 등 공격적인 수출 마케팅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도입으로 농가의 고질적인 일손문제를 덜고, 농기계 임대사업을 대폭 확대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사업으로 영주 농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영주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문화도시다. 지난해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지난 7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영주의 문화적 가치가 다시 한 번 인정받는 순간이었다.대한민국을, 그리고 영주를 알렸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지만 경제적인 분야에서도 가지는 의미가 크다.영주가 갖고 있는 문화전통 자원은 어느 산업자원 보다도 더 훌륭한 영주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영주는 가진 문화적 강점은 전통문화를 박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유물’로서가 아닌 ‘유산’으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영주는 모든 정책의 원동력을 영주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유산에서 찾는다. 영주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초·중·고 선비인성교육이 그렇고 대한민국 선비대상 조례 제정 등 전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도 궤를 같이한다. 살아있는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산업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이밖에도 영주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우수하고 아름다운 공공건축물로 전국에서 주목받는 건축의 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문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 이러한 성과를 증명했다.시민의 삶을 보듬는 생활밀착형 복지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걸 맞는 아동친화 정책의 추진 등 도시의 비전과 정책을 다듬어 나가고 있다. 국제적인 정세로 보나, 국내 여건으로 보나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야말로 우리가 성장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영주가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될 때도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될 때도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과정 하나하나 쉬운 걸음은 없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고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임을 믿는다. 도전할 줄 아는 용기와, 하나로 힘을 모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춘 영주시의 미래는 그래서 희망적이다.

2019-08-11

대통령은 응답하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규제조치를 강행한 이후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일본의 이같은 조치에 강하게 반발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기는 시원·통쾌·상쾌할 정도였다.특히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의 선언에는 마치 3.1독립운동 선언때 같은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대한 문 대통령의 태도는 그 이후에도 한결같이 단호하다.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면서 “오히려 경제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바로 다음 날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보이는 발사체를 쏘는 바람에 평화경제에 대한 비판론이 들끓기는 했지만 말이다.지난 7일에는 문 대통령이 일본 경제보복 사태 후 첫 부품소재 생산기업 현장 방문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찾은 경기 김포시의 정밀제어용 감속기 생산 전문기업인 SBB테크는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로봇용 하모닉 감속기’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업체다.문 대통령은 “수출규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데 SBB로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제자문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분업 구조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조치”라고 비판했다.문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도의 분업체계 시대에 나라마다 강점을 가진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는데,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국제 자유무역 질서가 훼손된다”면서 “일본의 기업들도 수요처를 잃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므로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변명을 어떻게 바꾸든,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규정한 뒤 “이는 다른 주권국가 사법부의 판결을 경제문제와 연결시킨 것으로,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에도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대책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품·소재 산업의 국산화 등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서는 전반적으로 위축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보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장기대책까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대통령의 말잔치에는 우리가 일본에 맞대응할 카드가 정확히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이 없다. 알맹이가 빠져 있다. 그냥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고, 국력도 많이 신장했으니, 맞싸워서 이기겠다는 얘기다. 최근 퇴근 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궁금증은 한결같았다.우리 정부가 일본을 압박해 이길 카드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사태를 풀어 나갈지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다는 주문이었다. 필자도 민심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과 청와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지 열심히 취재해 봤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의 피력만 반복될 뿐 설득력있는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의 조치에 상응해 맞춤형 대책을 세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 지는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작전상 알려주지 않겠다니 마구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다만 큰 소리는 쳤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일 뿐이다. 이쯤되면 대통령은 응답해야 한다. 일본 수출규제조치는 이런저런 방안으로 헤쳐나갈 작정이고, 단거리미사일 쏴대며 난리치는 북한은 요런저런 방법으로 살살 달래서 협상장에 자리 앉혀 평화경제를 실천해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인의 궁금증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 대통령은 응답하라.

2019-08-08

위기의 망월지

충북 청주시에 있는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초로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4천900가구가 들어선 택지개발지구내에 생태공원이 조성된 것 자체부터가 이색적이다. 이렇게 조성되기에는 자연을 보존해야겠다는 이곳 주민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2003년의 일이다. 토지공사가 산남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하기 전 인근 구룡산에서 동면하던 두꺼비 수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방죽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포착됐다. 이곳이 두꺼비의 집단 산란지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업무방해와 환경평가 소홀 등으로 서로 맞고소를 하던 양측이 합의점을 찾아 이곳에 두꺼비 생태공원이 지어진다.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이처럼 시민의 뭉쳐진 힘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주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만들어진 생태공원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를 받았다.33만평 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100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진 이곳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고의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지금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자연생태 학습장으로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전국 최대 규모 두꺼비 산란지로 알려진 대구 수성구 망월지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알을 낳고 이동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선사했던 이곳은 주변의 개발과 지주들의 연이은 용도폐지 신청으로 어쩌면 못의 일부가 메워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있다. 사유권 행사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막무가내로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2007년 새끼 두꺼비 300만 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이곳은 도심 속 자연생태공원이라는 별명으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처럼 개발할 수야 없겠으나 생태적 가치를 살리는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20년간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망월지 위기에 대한 해법이 있어야 할 이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8

무궁화의 날을 아시나요

심한식경북부8일은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의 날이었다. 별 의미없는 상업적인 이벤트에도 관심을 보여온 방송에서도 무궁화를 들먹이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보도조차 없이 넘어가 무궁화를 아끼는 국민으로서 실망스러운 하루였다. 지난2007년 민간단체가 주도해 옆으로 누운 8자가 무한대(∞)의 무궁(無窮)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8월 8일을 무궁화 날로 지정했다. 정부의 공식 지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무궁화의 날로 지켜져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 아는 국민은 아주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기자는 이른 아침부터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방송매체의 뉴스 시간을 주의 깊게 시청했다. 그러나 “오늘이 무궁화의 날”이라는 보도나 발언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일본의 식민통치 잔재로 이 땅에 남겨진 벚꽃철에 벚꽃축제는 주요 뉴스로 다투어 반복 보도해온 모습과 대비돼 씁쓸하기조차 했다.“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너무나 쉽게 이해하며 따라 부르던 동요이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이 동요를 부르는 것을 듣기도 어렵다. 숨바꼭질 하는 아이도 찾아볼 수 없지만 술래가 수를 셀 때 반복했던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을 정도로 무궁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지금의 현실은 이 뿐이 아니다. 무궁화의 의미를 교육하고 가꿔야 할 대다수 관공서와 교육현장에서 무궁화를 홀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공영방송에서조차 무궁화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서울시가 8일부터 15일까지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3·1운동 기념탑을 품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서울 무궁화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무궁화는 특별한 날에만, 특정한 인사들에게, 특정한 곳에서만 대접받아야 할 꽃이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국민 누구에게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아야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될 것이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로 노래했다.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쉽게 이야기 속에 등장할 때 무궁화가 진정한 나라꽃이 될 것이다. 지금 정부와 국민들은 일본의 무역규제에 따른 경제전쟁의 일환으로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고 있다. 극일(克日)을 외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다가오는 것이 무궁화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바쳐 지킨 것 중의 하나가 무궁화임을 감안하면 무궁화의 날을 올해처럼 흘려보내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고 싶다./shs1127@kbmaeil.com

2019-08-08

장맛비

두 주 동안 서울 가까운 곳에 가 갇혀 있었다. 시험문제를 내는 일이었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건물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 중앙의 창으로 보이는 뜰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감금’은, 몸 아픈 사람의 ‘휴양’에는 더 없이 좋은 약이었다.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문제를 내다 보면 금방 점심 때가 되고 오후는 조금 더 길게 느껴졌지만 아무 나갈 일도 없고 연락올 데도 없는 두 주일이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던가! 바깥 소식은 오로지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일방통행식 수신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보고 듣고 생각만 하면 되니 말이다.텔레비전 뉴스는 세상의 소식을 먼데 일처럼 실어다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두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경찰은 휴대폰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에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날 때도 휴대폰이 없어졌다 나타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황병승 시인도 자신의 집에서 세상 떠난지 근 보름만에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난 ‘미투’ 열풍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그때부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했다. 나는 ‘미래파’라는 ‘소동’ 가까운 ‘유파’에 ‘전혀’ 냉담한 편이었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그를 후원해 주던 비평가의 타계와 함께 이 ‘유파’의 ‘치세’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듯했다.세상에서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벨기에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더위로 무슨 조치가 내려졌다고도 하고 서울에서도 관측 이래 최고였다나 하는 무더위 소식이 이어졌다. 갇혀 있기는 해도 문제를 ‘뽑아내기’ 위해서 실내 온도만큼은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당국’의 배려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옛날에는 겨울이 좋고 더운 여름이 싫었는데, 지금은 겨울도, 여름도 다 좋아진 나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체온이 내려가고 심장이 느리게 뛰고 사람들을 만나는 활기보다 홀로 주어진 시간이 반가운 나이.갇혀서는 술도 마실 일 없으니, 지난 오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로 오염된 몸의 독소도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드디어 술을 끊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출소’해서 나가면 새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몸이 덜 시달리게 하니 잠도 규칙적으로 잘 수 있기는 하지만 이미 두세번은 깨다자다 해야 하는 체질,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검은 창밖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비내리는 소리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 창은 이중창일 때가 많고 그나마 허공에 뜬 아파트에서 날것 그대로의 빗소리란 쉽게 듣기 어렵다.‘비가 내리는군.’그러고 보니, 장마전선이 북상해서 며칠 동안 수도권 일대에 비가 계속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며칠 전에는 태풍으로 제주도 무슨 오름인가에는 사상 초유 천 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고도.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날들, 새벽의 장맛비는 내 몸속에 남아있는 소년 시절을 되살아나게 했다. 참 비가 좋은, 비가 오면 몸이 흠뻑 젖도록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한 바퀴 돌아오고서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번에 출소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을./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08

사람과 쓰레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 휴가철이면 온 산천이 몸살을 앓는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마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사람들이 다녀간 곳마다 쓰레기 더미가 악취를 풍긴다. 모처럼 기대를 걸고 계곡이나 바닷가를 찾았다가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띄면 기분을 잡치게 마련이다.그런 쓰레기와 악취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터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의외로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저들도 갈 때는 태연히 거기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심지어는 먹고 마시고 놀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파렴치들도 적지가 않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 사람들이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까지 치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행락철의 쓰레기문제는 해결방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가 가져온 것은 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자기가 먹고 마신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서 평상시처럼 분리 배출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느 계곡 어느 바닷가에도 담배꽁초나 수박껍질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쉽고도 좋은 일을 사람들은 왜 한사코 마다하는 것일까.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젖먹이 아이를 늑대가 데려가서 키우면 늑대의 습성을 그대로 가진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교육을 받고 무엇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산천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인 것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남과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 그 사회성의 기본은 역지사지하는 마음, 즉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올바른 인성을 위한 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건전한 사회의 바탕이 되는 가장도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삽으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도 있지만, 올바른 인성교육으로 절감되는 사회적 비용만 하더라도 실로 엄청난 것일 수 있다.남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며 나의 기분을 잡쳤다면,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구나. 나라도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유치원생들에게 설명을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일인데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교육과 학습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그런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한다.남을 배려할 줄 아는 능력, 역지사지하는 공감능력은 올바른 인성의 기본이고 교육의 최종 목표라야 한다. 학문과 종교와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바로 그런 것일 때 그것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바가 될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느냐 덕을 끼치느냐가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일진대 이해와 배려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도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일 수가 없는 까닭이다.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선진국이 되고 국민들이 보다 성숙한 시민이 되려면 무엇보다 우선으로 유치원에서부터 철저하게 올바른 사회성을 기르는 학습을 시켜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학습하고 또 학습하여 뇌리에 각인하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바로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이다. 제가 먹은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정도의 교양이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한낱 저급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2019-08-08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골치아픈 논의 중 하나다.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싶은 학과는 없기 때문인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기도 하다. 그건 대학정원의 결정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랜만에 교육부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가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다소 듣기에 생소한 정책 발표를 하였다. 지금은 교육부가 전체 대학에 점수를 매겨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 국가 장학금 등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대학의 정원조정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대학정원에 간섭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평가는 원하는 대학만 하고 평가 결과를 내놓을 때도 ‘일반 재정 지원 대학’만 선정하겠다고 했다. 다소 획기적이다. 아마도 이런 조치의 배경은 구조조정을 해봐야 학령인구 감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책변경이라기보다는 정책포기로 봐야 할 것이다.고된 과정을 통해 힘들게 평가해서 줄인 정원이 5년간 6만5천 명 정도인데 앞으로는 5년간 학령인구는 15만 명 가량 줄어든다는데 주목해 본다. 2000년 수능에 응시했던 학생은 89만 명이었다. 수능 시험일 일정 시간에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고,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숨을 죽이고, 모든 언론 매체가 수능 시험을 톱 뉴스로 다루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치열했다.그런데 금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55만 명으로 예상된다. 2000년보다 35만 명 가량 줄어들었고 역대 최저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년부터 만 18살 학령인구 숫자는 50만 명 밑으로 내려가고, 5년 뒤 2024년이 되면 37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00년에 비하여 정확히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번 발표는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하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공연히 고생만 하고 문제해결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좌절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채 대학을 규제하여 오던 교육부가 이젠 가만 내버려 두어도 대학은 고통 속에 스스로 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손을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돈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대학은 고통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8-08

황금을 가장 많이 캘 수 있는 곳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노래 원곡은 어부 이야기가 아니라 광부와 딸 이야기입니다. “In a canyon, in a cavern, 골짜기와 동굴 안에서 Excavating for a mine 광산을 캐며 Lived a miner, forty niner, 살아가는 포티나이너와 And his daughter, Clementine. 그 딸 클레멘타인.”포티나이너는 금광을 찾아 1850년대 미국 서부로 몰려간 사람들, 금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금광을 통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현상을 ‘골드러시’라고 하지요. 일부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금광을 찾는 데 실패합니다.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광에 달려든 사람이 아니라 몰려든 그들에게 온갖 생활용품을 팔던 사람들입니다.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는 천막 캔버스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고 바로 그 청바지가 리바이스입니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골드러시’를 보면 먹을 것이 떨어지자 가죽으로 된 신발을 삶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골드러시에 휩쓸려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묘사한 장면이었지요.일리노이대 해부학 교수 할리 먼센은 인체를 화학 성분으로 분석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칼슘 2.25㎏, 인산염 500g, 칼륨 252g, 나트륨 168g, 마그네슘 28g, 그리고 소량의 철과 구리 성분으로 구성됐음을 밝혔습니다. 체중의 65%는 산소, 18%는 탄소, 10%는 수소, 나머지 3%는 질소로 돼 있다는 것도 입증했지요. 이 모든 인체 구성 물질의 값을 계산했을 때는 단돈 89%, 우리 돈 1천원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물질로 생명의 가치가 정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마 안쪽에 있는 그 무엇. 체중의 0.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산소는 거의 20%를 소비하는 신체 기관. 두뇌 속에 과연 어떤 것이 채워져 있는 가로 한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법입니다.“황금은 땅에서 채굴된 것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되었다”라고 나폴레옹 힐은 말합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주 무대가 샌프란시스코였고 그 지역에서 훗날 실리콘 밸리가 탄생했으니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8

조롱 당하는 기상청

이시라 기획취재부“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지역에 많은 비와 함께 초속 25∼30m의 강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도된 뒤끝이라 어리둥절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물론 태풍 피해가 없었기에 다행스러웠지만 오락가락한 예보 때문에 많은 인력과 행정력이 낭비됐다는 측면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기상청은 제8호 태풍이 한반도에 근접해오던 초기인 지난 5일 “6일 밤 남해안에 상륙한 뒤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며 7일 오전 경북 안동 서쪽 약 90㎞ 육상을 거쳐 강원도 속초 부근에서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며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하지만,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6일 기상청은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초기의 전망과 달리 경북 안동 주변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하면서 소멸할 것으로 말을 바꿨다. 뭐가 뭔지 모르게 계속해서 바뀐 기상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작 태풍은 6일 오후 8시 20분께 부산으로 상륙하고 나서 열대저압부로 인해 세력이 약해지면서 40분 만에 소멸했다. 태풍이 온 사실을 느끼지 못한 지역민들은 이런 이유로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은 당초 경북 지역을 통과하며 강한 바람과 함께 최대 200㎜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태풍예보 시 바다 기온이 낮아 급속히 열대저기압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면피 사유’를 끼워넣은 것이 기상청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어쨌든 경북지역의 민관은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기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갖은 부산을 떨었다. 공무원 2천487여명이 밤샘 비상근무를 했다. 태풍과 같은 재난에 과잉대비를 한다 해도 무방비 상태로 맞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기상청이 통보문을 발표할 때마다 태풍의 상륙지가 수시로 바뀌고 시민들에게 혼란만 준다면 기관의 존재가치를 찾기도 어렵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태풍의 경로는 얼마 동안 제자리에 멈춰 있기도 하고 다양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 진로 파악이 어렵다. 더욱이 한반도와 같은 반도지형을 거쳐 가는 태풍의 진로 예보는 특히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기상청은 그동안 항상 슈퍼컴퓨터 타령을 해왔다. 지금과 같은 예보능력이라면 슈퍼컴이 아무리 많아도 책임 있는 기관이 되기는 글렀다는 비판을 어떻게 감당할지 의아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기상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예보’가 아니라 ‘중계’를 하고 있다는 따가운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기상 예보 하나로 수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기후 변화가 무쌍한 지금,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정확한 일기예보가 갈수록 요구되고 있다. 민간기상업체만도 못한 이번 태풍 예보를 보면서 많은 시민이 조롱해온 ‘구라청’이란 별명이 피부에 와 닿은 며칠이었다./sira115@kbmaeil.com

2019-08-07

항왜(抗倭)와 토왜(土倭)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일본의 조선침략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하고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투항한다. 사야가처럼 일본의 무의미하고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조선에 투항해 일본에 맞서 싸운 왜인들을 ‘항왜’라 한다.반면에 조선인이되 왜군의 침략에 즈음하여 자발적으로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군과 대적한 자들을 일컬어 ‘순왜(順倭)’라 한다. 선조가 명나라 신종에게 요동태수 자리를 애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순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휘하의 신료들조차 순왜의 규모를 이실직고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니, 조선왕조의 피폐와 무능과 신하들의 타락과 분열상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22살 나이에 투항한 사야가는 왜군에 대적하기에 부족한 조선의 무기에 눈을 돌린다. 그는 충무공과 서찰을 교류하면서 조총제작과 화약제조에 관한 견해를 개진한다. 그를 기려 1798년에 간행한 ‘모하당문집’에서 일부 발췌한다.“소장은 비록 타국에서 온 천한 군인이오나 외람되게도 신민의 대열에 끼게 되었사오니 본국인의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문하신 조총과 화포와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비국(備局)으로부터 내린 공문에 의거 진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또 김계수를 보내라 하명하시니 곧 보내옵니다.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필코 적병을 전멸시키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사야가는 충무공에게 부하 김계수를 보내고, 조선의 무기체계 개선에 진력한다. 아울러 그는 경주와 울산 전투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선조에게 가선대부 직함과 사성(賜姓) 김해김씨를 제수받는다. 그가 곧 김충선이다. 김충선은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에도 65세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여 청나라의 2대 칸인 홍타이지와 맞서 싸우는 애국정신을 발휘한다.아베 총리가 도발한 경제전쟁으로 나라가 온통 소란스럽다. 총칼과 대포를 동원한 살육전은 아니지만, 경제전쟁도 전쟁이다. 단지 총성 없는 전쟁일 뿐. 이럴 때 특히 유의할 것이 내부의 분열과 그것을 획책하는 자들의 분탕질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백성이 고통받은 까닭은 암군(暗君) 선조의 무능과 우심(尤甚)한 당쟁으로 왜적의 침략을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1세기 한일 경제전쟁에 임해 우리는 국론을 통일하고, 침착한 자세로 저들의 도발에 응전해야 한다. 적전분열이나 과도한 공포, 지나친 선전선동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더욱이 순왜 못지않은 현대의 ‘토착왜구’ 준동은 기필코 막아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친일부역자를 가리키는 ‘토왜’는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로 구체화한다. 신문은 토왜를 “얼굴은 조선인이나, 창자는 왜놈”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로 부류로 나누었다.첫 번째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이고, 두 번째는 일본의 침략행위와 내정간섭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세 번째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원, 네 번째가 토왜를 지지하고 애국자를 모함하는 가짜 소식을 퍼뜨리는 시정잡배다. 100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토왜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정치인과 언론인, 자발적 부역자(附逆者)가 적잖다. 그자들이 정보강국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백기투항(白旗投降)을 주장하는 자들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협상의 후예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이 남겼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볼 때다.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2019-08-07

달걀 껍데기를 품은 방학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달걀 껍데기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필자를 포함해 2019년 중등 교감 자격 연수에 참가한 백 명이 넘는 연수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강사만 바라보았다. 강사는 연수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서로의 눈치가 몇 번 오가도 답이 없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래도 강사는 계속 반응만 살폈다.필자는 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기까지는 육체적 상처 정도로 생각했다. 주변의 반응도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답답해진 연수생들이 강사에게 답이 무엇인지를 직접 물어보았다. 강사는 계속해서 강의실의 분위기만 살폈다. 여기저기서 생각한 답을 말하는 목소리보다는 답답함에 짜증이 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달걀 껍데기에 상처 받은 사람은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계신 바로 여러분입니다.” 갑자기 강의실 분위기 싸늘해졌다. “여러분 말고도 있습니다. 집에서 아침밥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는데 거기에 아주 작은 달걀 껍데기가 같이 나왔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의실이 술렁이었다. 그냥 먹겠다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반응을 지켜보던 강사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물론, 아침상을 차려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껍데기에 마음을 상하여 아침부터 험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마음을 쓰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것부터 먼저 생각을 하고 표현합니다.”필자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만약 필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더라도 불쾌감은 들었을 것이고, 만약 그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분명 불쾌감을 말로 표현했을 것 같았다. 결국 필자가 달걀 껍데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강사의 설명에 많은 연수생들이 격한 공감의 표시를 보냈다.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패턴은 똑같았다. 얼음 한 조각에 상처 받는 사람, 물 한 모금에 상처 받는 사람 등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는 유형에 대해 강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자극이 이어지면서 연수생들의 연수 태도도 바뀌었다. 강사는 ‘자리바꿈’이라는 용어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였다. 마음의 상처는 결국 자리바꿈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에 필자는 많은 반성을 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줄기차게 이야기 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역지사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 역시 자국 이익에만 눈멀어 자리바꿈을 하지 못한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며칠 째 계속 쏘아대는 북쪽 또한 이 자리바꿈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자리바꿈의 문제는 국내 교육계에도 있었다, 바로 자사고 폐지!강의 내내 강사의 접근방법이 필자에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필자 또한 달걀 껍데기와 관련된 여러 상황을 겪었을 텐데 왜 사람의 태도는 보지 못했는지 강의를 듣는 내내 필자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필자의 생각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오래 생각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강사가 필자의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 계시는 교감 선생님들은 교사, 학부모, 학생과 대화하실 때 ‘직책’으로 대화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제 ‘나’ 라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해보세요.”교감 자격 연수를 마치면서 필자는 ‘달걀 껍데기’를 가슴에 품었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바꿈’이라는 가치가 필자의 마음에 꼭 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2019-08-07

대오각성(大悟覺醒)

한 남자가 유서를 씁니다. 궁정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왼쪽 귀에 고음이 들리지 않기 시작하지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칩니다. 증세는 점점 심해집니다.1802년 의사 권고로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6개월을 쉽니다. 도시를 떠났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유서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신이시여! 제게 단 하루만 온전히 깨끗한 귀를 허락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이 유서를 쓰고 난 후 남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대오각성(大悟覺醒). 죽음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남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겠노라 다짐합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지요.윙윙거리는 굉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울려댑니다. 자기 귀에서 울리는 이 지독한 소음 때문에 세상 모든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로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완전한 귀머거리로 쓴 곡이 9번 합창 교향곡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4악장의 장엄함. 이 4악장을 빛나게 하려고 1악장에서 3악장까지 빠른 전개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립니다.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상태로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무대에 올라 지휘합니다. 현악 연주자들 활 놀림을 보며 곡 진행을 파악하려고 진땀을 흘립니다. 마지막 피날레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곡이 끝나는 지점을 파악 못 해 계속 손을 움직이지요.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거가 베토벤 옷자락을 잡아끌며 청중 쪽으로 몸을 돌리게 했고 열광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그제야 연주가 끝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지 22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일입니다. 베토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어떤 분은 해마다 12월이면 유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신과 맺는 1년 동안의 인생 연장 계약서라고 표현하더군요. 대오각성, 이 네 글자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럭저럭 살아온 지금까지 내 인생이라는 판을 뒤흔드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도끼질 같은 충격,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유서를 썼던 베토벤 심정 말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대오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7

가을을 기다리며

장규열 한동대 교수입추(立秋).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입추를 맞는다. 여름의 끄트머리는 몇 자락 무더위를 남기고 있겠지만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길은 없다. 뜨거운 날들을 지나면서 빚어진 일본과의 갈등은 모두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 한낮의 더위는 몸을 지치게 하지만, 이웃이 던진 불씨는 마음을 힘들게 한다. 두 나라의 역사 가운데 오래 쌓여온 불화는 이번에는 해소할 것인지 한 자락 기대도 얹어 보지만, 불편함의 빌미만 한 차례 더하는 게 아닐까 걱정부터 생긴다. 남들은 혹 모른다 해도, 두 나라 백성들은 이 다툼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통상과 무역이 문제이지만, 속으로 멍든 까닭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탐심과 반목이 아닌가.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사가 빌미인데 애꿎은 경제가 힘들 모양이지만, 따질 겨를도 없이 우리 기업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경제가 지향하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에 제동이 가해진 터에, 새로운 출구와 해결책을 찾아서 온 나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모양이다. 나라 간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 분업의 균형과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그에 차단과 교란을 초래한 일은 세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의 선택이라 해도,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은 무엇을 얻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과 중국도 금융과 경제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어 한일 간의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도 모아지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기후만큼 답답한 실타래를 두 나라는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전쟁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모아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생각을 흩어놓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모으고 전략도 모으며 이기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한다.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역량과 지혜를 한점에 모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상대 앞에서 우리끼리 흩어지는 일은 우리를 얕잡아보게 할 치명적인 실책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 현명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여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여 정연한 논리와 협상의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힘들게 한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옛일에 사무쳐 감정으로 흐르지도 말아야 한다. 통상과 외교에서 승부수를 만들어야 하며, 스포츠나 문화로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환경도 염두에 두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는 오히려 점수를 올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일본이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가 역사가 숙제인가. 한국경제를 욕보인 끝에 국제통상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무너진다면 일본이 얻을 실익은 무엇인가. 사라질 고객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온 것인가. 나라가 빚은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하게 태도를 밝히고 분명하게 실천하여야 한다. 식민지 국민을 힘들게 하였던 굴곡진 기억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국이 원한다면 수없이도 돌이키겠다는 독일의 마음도 다시 보아야 한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21세기에 적절한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전쟁을 다시 하겠다는 야욕이 실재한다면, 일본 국민은 이를 분명히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은 74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누리고 있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을 미묘한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은 이 기회에 분명히 벗어야 한다.한국과 일본은 글로벌환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린관계를 다시 지어야 한다. 이념과 욕심을 앞세워, 성실하게 일하는 기업과 국민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시원한 가을을 기다리듯이, 평화롭고 화합하는 한일관계를 기대해 본다. 갈 길이 멀다.

2019-08-07

환율전쟁

환율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평가절하·devaluation)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다.수출 증가와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겨냥한 환율전쟁은 △1930년 대공황을 촉발한 1차 환율전쟁(1921~36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2차 환율전쟁(1967~87년) △2010년 이후 현재의 3차 환율전쟁 등 크게 세차례가 있었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내수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했지만 곧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에 따라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의 통화를 약세로 유지. 수출제품의 해외 가격이 낮아짐으로써 매출 증가를 꾀했다. 따라서 환율전쟁은 일종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라고 볼 수 있다.환율은 무역에서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붙이면 미국에서 중국 물건이 비싸지게 된다. 그러면 전에는 값싼 중국산을 살 수 있었던 미국인 소비자나 기업은 손해를 보지만 중국입장에서도 미국에서 제품을 팔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중국 돈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이 중국 제품에 붙인 관세가 힘을 잃게된다. 즉, 어제까지 1달러로 6위안 어치밖에 못 샀는데 오늘부터 7위안어치를 살 수 있다면 관세를 1위안 붙인다고 해도 미국인 입장에서 어제랑 가격이 똑같기 때문이다.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환율전쟁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을‘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위안/달러 환율이 이른바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7위안선(포치·破七)을 돌파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인 두 강대국의 환율전쟁 파급효과만 생각해도 걱정이 한 짐인 데, 정부여당은 수출규제조치에 나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만 늘어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7

감성교육과 캘리그래피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환경은 디지털 미디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오프라인 만남이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을 컴퓨터 이메일과 메신저, 문자 메시지, SNS 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컴퓨터, 핸드폰 단말기,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발달이라는 하드웨어적 환경과 함께 오프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충족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디지털 미디어의 대표적 예로서, 컴퓨터 미디어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면 입출력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된 부분을 빨리 고칠 수 있고, 수정 횟수에 제한이 없다. 셋째, 컴퓨터는 모니터에서 출력이 되기 때문에 주로 시각을 이용한다. 넷째, 오프라인에 비해 공간적 제약이 덜하다. 시간만 약속하면 어디서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며, 자신이 할말을 메시지 형식으로 남길 수 있으므로 시간의 제약도 적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컴퓨터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시각과 청각에 국한되며 키보드와 마우스 입력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정형화된 컴퓨터 글씨로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컴퓨터의 입력방식이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인적 표현의 욕구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이모티콘, 영상, 기형화된 상징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개성과 표현 욕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억압되고 왜곡된 정형화된 입력 방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이 감성교육이다. 감성교육의 중요성은 루소에 의해 언급되었다. 루소가 비록 감성교육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감성을 통한 공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원시인들과 현대인을 비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자기애와 연민이라는 자연적 미덕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기애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려고 하는 것과 같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말한다. 자기애로부터 출발한 자기보존능력은 현대인의 욕망과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사자는 배가 고프면 임팔라를 잡아먹지만 배를 채운 뒤에는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렇듯 자기애는 무한한 욕망이 아니라 자연적 한계를 가지는 유한한 욕망이다.의식주와 같은 본능적 욕망에 있어서 자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될까?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원시인은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루소는 현대인과 다른 원시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연민 즉 공감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장한 원시인이 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이 어렵게 획득한 식량을 강탈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연민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연민에 의해 타인도 자신처럼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스스로의 자기애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사회적 관계가 긴밀해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사회 상태에서 발달한 인간의 인성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자신을 흔들어 놓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의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그리하여 자기애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는 자존심으로 대체되고, 자신보다 못한 자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보다 나은 자에 대한 시기심만 남게 된다고 루소는 말한다.루소의 말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감성보다는 이성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성지능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능력을 말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감성을 발달시키는 일은 공존과 공생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오감을 자극해 이루어지는 감성교육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현재 교육기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리기를 통한 놀이이다. 흔히 심리학자들은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그 아이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그림 속에는 성격이 반영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표현과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그리기 놀이를 통해 교육하는 이유는 놀이는 아이들의 일상생활이며 그 자체가 학습활동이 되어 놀이를 통해 정신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되며, 다양한 감각 능력과 기능을 습득함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놀이의 방법으로 캘리그래피를 적용할 수 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이다. 원래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Calli는 미를,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의 의미를 갖고 있다(시사상식사전). 우리나라는 먹물을 묻힌 붓을 한 번의 획으로 써 내려가는 것을 예술로 여겨 서예, 일본은 이를 도의 경지라 하여 서도, 중국은 정해진 법칙대로 쓴다 하여 서법이라 칭한다. 서양의 경우, 동양권과 다르게 한자의 사용이 아닌 알파벳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글씨를 쓰는 도구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서양의 서예는 웨스턴 캘리그래피(Western Calligraphy)라고 부른다. 사실, 캘리그래피는 문자로서의 의미 전달 뿐 아니라, 조형미를 갖춘 예술로서의 역할도 한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 유연하고 동적인 선, 살짝 스쳐가는 효과, 글씨의 굵기,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캘리그래피의 발전은 15∼16세기 이탈리아 문화에서 중세의 고딕적 경향이 물러가고, 예술의 자율을 존중하는 시대가 오자 많은 서예, 출판, 유통과 과정이 함께 활발해 졌다. 즉,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다. 캘리그래피는 기계적 입력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손의 힘을 직접 조절하고, 펜이나 붓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는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21세기는 감성이 뛰어난 창의적 인재를 기대하며 긍정의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능력 등을 필수적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어렸을 때 감성을 깨우며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받아들여 가슴으로 충분히 느끼며, 상호 작용하여 내면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019-08-06

개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개의 몸은 음식물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매일 먹는 음식물의 영양소에 의해 성장하고, 신체가 구성되며 생명이 유지되므로,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개도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와 관련한 산업분야 중 가장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료시장인데, 생명체는 먹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 것이나 먹이지 않겠다는 트렌드가 보편화되어 점차 사료가 고급화 되는 추세이다.현재 시판되고 있는 개 전용사료는 크게 수분함량이 10% 미만인 건식사료, 수분의 함량이 72~85%인 습식사료, 건식과 습식의 중간형태로 수분함량이 15~35%인 반습식 사료로 나뉘어 진다. 일반적으로 개는 습식사료를 가장 좋아하는데, 가장 맛이 좋기 때문이다.하지만 건식사료에 비해 영양이 높지 못하고 가격 또한 비싸므로 간식용이나 식욕이 부진할 때 주로 사용된다.반습식 사료는 늙은 개나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한 개에게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 원료나 성분을 특정 질병치료나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만든 처방식 사료가 일반화되고 있고, 고급 유기농 사료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유기농 사료는 합성비료, 농약, 항생제, 유전자 조작식물, 환경호르몬 등을 사용하지도, 검출되지도 않아야 한다. 유기농사료는 재료가 유기농인지를 표시한 것이므로 사료 품질의 문제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반려견들이 일반적으로 15년 정도 사는데, 야생에서 개는 24년 이상 살 수 있다. 야생을 떠나 사람과 살게 되는 개들이 상대적으로 활동의 제약이 더 있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더 많기도 하겠지만, 야생동물들의 음식섭취 형태가 사람과 살아가는 동물들과는 다르므로 수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는지 궁금하여 과학적으로 밝혀낸 관련 연구들을 찾아보았다. 영양학자인 포텐저는 1932년부터 1942년까지 10년동안 고양이 연구를 했다.900마리의 고양이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몇 세대에 걸쳐 똑같은 재료를 익히지 않은 음식, 조금 익힌 음식, 완전히 익힌 음식으로 나누어 먹인 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은 고양이 그룹은 매우 건강했고, 조리를 많이 한 음식을 먹은 고양이 그룹일수록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생식을 하는 고양이가 신체 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고, 면역력이 극대화되어 질병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로버트 맥캐리슨은 1천마리의 쥐에게 사람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55년에 해당하는 27개월 동안에 첫 번째 그룹의 쥐에게는 다양하고 좋은 재료의 생식을 먹이고, 다른 그룹의 쥐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쌀만 공급하고, 다른 그룹의 쥐에게는 통조림 음식만 공급해보고, 결과를 발표했다.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공급받은 쥐들은 건강한 상태였고, 쌀만 공급받은 그룹의 쥐들은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었다. 통조림 음식만 공급받은 쥐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난폭해져 서로 잡아먹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동물들도 음식섭취가 매우 중요하고, 동물들을 위한 음식을 공급할 때 가능하다면 다양하고 좋은 재료를 익히지 않은 상태로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개는 원래 육식성 동물이고 생식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생식으로만 음식을 공급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개가 사람과 함께 살아오며 잡식성에 적응되고 있지만 사실은 가능하다면 개가 먹는 것의 50% 이상은 육류를 제공해 주는 것이 좋다. 단백질은 신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데, 호르몬과 면역물질의 생성재료로도 사용된다. 개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은 23종이고 그 중 10종류는 필수아미노산인데, 필수아미노산은 개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음식 형태로 섭취되어야 한다.이동훈특히 사람과는 달리 아르기닌(Arginine)은 개에게 필수 아미노산이다. 아르기닌이 결핍되면 개는 아미노산을 이용해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없으므로 먹이고 있는 사료에 아르기닌을 포함한 필수 아미노산이 표준치 이상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의 심혈관 건강에 필수적인 삼투압 및 칼슘이온 이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타우린도 중요한데, 보통 충분한 육류섭취를 통해 얻을 수 있으나 대형견이나 초대형견들이 육류섭취 부족으로 타우린이 부족한 경우들이 빈번하다. 특히 복서나 코카스파니엘 등은 타우린 부족에 의한 심부전증 발병이 빈번하므로 주의해야 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06

극일(克日)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고 있다. 여기서 반일은 일본에 반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과거 우리 역사에 기억된 일본과의 나쁜 감정이 섞인 표현이다. 반일 감정이 더 악화되면 혐일(嫌日)이라는 표현도 가끔 사용한다. 그러나 극일은 반일과 혐일보다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 표현이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나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일본을 이겨 더 나은 나라로 가자는 뜻이다.지금 우리는 극일운동으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다. 한국경제의 숨통을 거두겠다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기업 할 것 없이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연일 분주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날로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여당 정치권에서는 “도쿄를 여행금지 구역에 포함시키자”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대통령도 “남북경협으로 단숨에 일본을 뛰어 넘겠다”고 하니 두 나라간 경제전쟁은 불가피한 한판 싸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이런 분위기에서 협상과 타협의 얘기를 꺼내면 이는 친일이요 배신이다. 하지만 협상과 타협은 게임을 이기는 수단으로 매우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협상과 타협은 과거에는 대체로 나쁜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승패를 가리는 방법으로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협상과 타협이 대세를 이루는 글로벌 시대다. 국가와 국가간에도 상호 협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새로운 국제간 질서다. 대립과 경쟁보다는 협상과 상생, 화해의 묘를 살리는 극일의 방법도 찾아보자는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 했다.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뜻이다.일본의 경제 보복에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에 국민의 불안감도 증폭하는 것이 사실이다. 폭락한 국내 주식시장이 바로 냉엄한 현실을 반영한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기술의 거래’라는 책에서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고 충고했다. 극일을 위한 선택의 폭도 넓혀보면 어떨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6

일본 경제종속의 굴레를 벗을 기회다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간의 외교분쟁이 무역 전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으로 경제 제재로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문재인 정부가 한심하지만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경제보복이 현실화된 만큼 손을 맞잡고 현실을 직시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물론 아예 지우려고 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어떠한가? 독일은 하도 사과를 많이 해서 주변 국가들은 더이상 독일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은 1조5천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있다. 교육에서부터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하게 교육해 어린이들조차도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과거 청산을 바탕으로 지금의 독일은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가장 굳건하고 강력한 기반 위에서 유럽을 지휘하고 있다.이에 비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4년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망언을 했다. 2015년에는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문제 관련 과거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각의를 열고 이를 세계 각국에 적극 홍보키로 했다. 과거사를 부정하고 지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다.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무역제재의 강도를 더욱 높여 갈 것이다. 중도에서 멈추거나 철회할 가능성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대강 대결국면만 남았을 뿐이다. 다만 미국이 중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것도 가능성일 뿐이다.이제는 우리 스스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각오로 이번 일본과의 무역갈등을 뛰어 넘어야 한다. GDP 규모로 보면 일본이 6조 달러, 한국이 1조5천억 달러로 일본이 한국 보다 4배 정도 많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출을 보면 일본이 700조원인데 반해 한국은 600조원이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오자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작심하고 한국 경제를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우대조치 제외 품목 1천100여개 중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나 석유 화학제품, 공작기계 등 80여 개 품목 정도가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피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그동안 한국은 양적 성장을 했지만 질적 성장은 하지 못했다. 소재, 부품, 장비 자체조달률은 60% 중반대에 그치고 있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밀산업 자체조달률은 5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만성적인 대일 의존도와 자체조달률을 극복하지 못하며 일본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도 우리 부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협력하고 정부도 자금과 세제, 규제특례 등을 통해 우리 산업구조가 더욱 탄탄해 지도록 혁신을 해야 한다.최근 지역에서는 대구에 둥지를 튼 현대로보틱스가 부품수급을 국내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희망찬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일본 부품을 사용하던 현대로보틱스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기업이 국산 부품에 눈을 돌리면서 지역 기업들에게는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우리 스스로 내실을 다지면 언젠가는 일본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을 때다.

2019-08-06

화웨이(華爲)의 인재영입 전략에서 배우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아프리카의 정글에만 치열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세계경제의 생태계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절대적인 천적관계를 형성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좀처럼 그 관계가 바뀌는 경우가 없지만, 세계경제에서는 영원한 우방이나 친구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원칙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상황에 따라 협정을 맺거나 파기하기도 한다.우리는 이러한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언제나 그 과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대체로 주변에서 일으킨 풍파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경제를 들썩일 정도의 힘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그만큼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전국을 들썩이고 있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 조치도 결국은 우리가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자제 등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않으면 양국 간 협상이나 타협조차 시도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수단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도 그에 대해서는 맞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본이 한국을 여행위험국가로 지정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라 하겠다.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겪어 왔던 위기들에 대한 대응책이 과연 옳은 방향이나 전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수입대체효과, 수출입 다변화 등은 수십 년 전에도 있었다. 물론 수치상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최적의 대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최근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한창인 중국의 대형통신기업인 화웨이(華爲技術)의 런청페이(任正非) 회장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는 지난 6월 사내 회의석상에서 금년에는 전 세계에서 천재소년 20∼30명을 채용하고, 내년에는 200∼300명을 채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어도 3∼5년 동안 우수인재로 모두 교체할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즉 당장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대책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화웨이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최대 약 200만 위안(약 3억 4천만 원)의 연봉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화웨이가 인재를 키우지 않고 단지 스카우트를 한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감한 연봉으로 우수인재를 발탁하고 채용하는 방식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증명된 인재확보 전략이며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최고 전략의 하나임은 분명하다.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우수 인재를 보는 시각이 다소 다르다. 제대로 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수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는 호시탐탐 우리의 약점을 살피면서 틈만 보이면 우리를 먹이로 삼으려는 약육강식의 경제생태계속에서 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미국이 그리고 이제 일본이 나선 것뿐이다.포항도 지역의 젊은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그저 막으려는 것에만 주목해서는 안된다. 화웨이의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재나 지역에 필요한 우수한 자원이 있다면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굴해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지역경제와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일꾼을 지키고 또 다른 일꾼을 지역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