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넘게 FRB 이끌며 미국 최장기 호황 뒷받침 금융위기 책임론 속에서도 현대 중앙은행 역사에 큰 족적 블랙먼데이·아시아 금융위기·9·11 위기 극복 주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를 18년 이상 이끌며 세계 금융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전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은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부인인 안드레아 미첼(Andrea Mitchell)은 성명을 통해 “그는 수십 년 동안 민주·공화 양당 대통령 아래에서 미국 경제의 방향을 만드는 데 기여한 거인이었다”며 “동시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진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FRB도 성명을 내고 “그린스펀 전 의장은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 엄격한 분석적 규율을 도입했으며, 연준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신뢰성 구축에 기여했다”고 애도했다.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린스펀은 1987년 당시 Ronald Reagan 대통령의 지명으로 FRB 의장에 취임했다. 이후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George W. Bush 대통령에 의해 연임되며 2006년 1월까지 18년 5개월간 의장직을 수행했다.
그는 취임 두 달 만에 발생한 1987년 Black Monday 당시 과감한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시장 안정을 이끌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90~1991년 경기침체, 1997~1998년 아시아·러시아 금융위기, 2000년 닷컴버블 붕괴, 2001년 9·11 테러 이후 경제 충격 등 잇따른 위기 국면에서 미국 경제를 이끌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장기간의 경제 확장을 지원하면서 ‘경제정책의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재임 기간 미국은 2001년까지 약 10년간 이어진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그러나 퇴임 후 평가는 엇갈렸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재임 말기 형성된 주택시장 버블과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린스펀은 이후 의회 증언에서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위험을 통제할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위기 이전의 과도한 찬사와 이후의 전면적 비판 모두 균형을 잃은 평가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린스펀은 80세로 퇴임한 뒤 경제 자문회사 ‘그린스펀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컨설턴트와 경제 자문가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에는 음악을 사랑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했고, 스윙 밴드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한 경력도 남겼다. 이후 New York University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경제학자의 길을 걸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