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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제동서원 단오 대제 열려

등록일 2026-06-21 15:39 게재일 2026-06-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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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정벌의 역사 깃 든 장소…김유신·소정방·이무장군 위패 모신 숭무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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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서원 안 숭무사에서 대제를 마치고 제관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청명한 초여름, 산과 들에는 짙은 녹음이 넘실거렸다. 음력 5월 5일 단오를 맞아 최근 대구 군위군 효령면의 제동서원에서 대제가 열렸다. 숭무사에는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당나라의 소정방·이무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마을 서쪽 장군봉 정상에는 본래 세 장군을 모신 삼장군당이 있었다. 1862년 화재로 사당이 소실되었으나 김유신 장군의 위패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후손들은 사당을 다시 지어 효령사라 이름 짓고 위패를 봉안했다.

세월이 흐르며 효령사가 퇴락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어려워지자, 지역 유림과 후손들은 1953년 장군봉 기슭에 제동서원을 세웠다. 서원 안에 숭무사를 지어 세 장군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김유신과 소정방·이무를 함께 제향하는 것은 백제 정벌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무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는 힘을 합쳐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들이 출정 과정에서 장군봉에 지휘소를 마련해 전략을 논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쟁을 마친 세 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삼한이 통일될 것이니, 백성들이여 안심하고 살아가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전쟁에 지친 백성들에게 그 외침은 평화의 소식이 되었을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말을 탄 관민들이 장군봉 아래를 지날 때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사람들이 하마비를 세우고 제사를 올린 뒤에는 그런 일이 사라졌으며, 이것이 군위 단오제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 단오에는 고을의 수령과 백성들이 깃발과 북을 앞세우고 행진하며 축제를 벌였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던 단오제는 오늘날 다시 이어져 많은 군민이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대제 당일, 대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제동서원에 도착했다. 경무문을 지나자 ‘제동서원’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서 자란 풀을 바라보니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모신 공간이 조금 더 정갈하게 가꾸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장군봉 정상의 효령사에 올랐다. 긴 계단 끝에 자리한 작은 사당에는 세 장군의 위패가 단정히 모셔져 있었다. 절을 올린 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늑한 농촌 마을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신라군이 전략을 논의했다고 생각하니 오랜 역사의 숨결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대제 시간이 가까워져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무더위에 땀이 흘렀지만 마음은 오히려 정갈해졌다. 참례자들은 정성스럽게 제례를 올리며 세 장군의 공적과 나라를 향한 뜻을 기렸다.

대제를 마친 뒤에도 그 울림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대제는 단순히 옛 의식을 되풀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정신을 오늘로 불러내어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김성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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