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구룡포근대역사관 혹은 하시모토 가옥

등록일 2026-06-18 17:00 게재일 2026-06-19 14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포항시 구룡포에 가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일본인가옥거리가 있고, 그 중심에는 구룡포근대역사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식 가옥이 있다. 이 건물은 일본 가가와현에서 구룡포로 이주하여 일가를 이루었던 하시모토 젠키치(橋本善吉)가 살았던 집이다.

Second alt text
포항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박창원 제공

2010년 포항시에서 일본인가옥거리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건물 규모가 비교적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이 집을 매입한 후, 수리·복원을 거쳐 일제강점기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이곳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전시관으로 꾸몄다.

그런데 이곳을 관람하는 상당수 관광객들은 이 건물을 어째서 구룡포근대역사관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구룡포 사람들의 역사라기보다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역사를 담은 공간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구룡포근대역사관 건물은 1920년대에 하시모토가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와서 지은 목조주택으로 2층 난간에는 1940년을 전후하여 크게 수리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수리를 끝낸 하시모토가 거창하게 상량식을 했다고 한다.

하시모토는 가가와현 출신으로 1909년에 구룡포로 와서 선어(鮮魚) 운반업을 시작했다. 1930년 구룡포 일본인들이 제작한 ‘구룡포시가도’에 의하면 그는 주택 앞에 상가를 보유하고 있었고, 상가에는 선구(船具)와 어망(漁網)을 취급했으며, 담배대리점을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는 구룡포에 양조장인 창주주조(주), 누룩 제조공장인 영일국자제조, 선박용 기계와 부품을 취급하는 구룡포철공 등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처럼 하시모토는 구룡포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쳐 가가와현 출신 어부 가운데 최고의 부를 일구었고, 가가와현 출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슬하에 9남매를 두었고,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유토피아를 만들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1943년 11월 3일 구룡포에서 사망했다.

1939년 6월 20일자 부산일보에는 구룡포 일본인촌 개척에 지대한 공을 세운 도가와 야사부로(十河彌三郞)의 송덕비 건립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데, 그 기사 끝에 “하시모토 젠키치에 대해서도 동일한 공적이 인정되어 시민 일반의 뜻으로 공적비를 나란히 세울 계획이라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도가와와 함께 구룡포 일본인 사회의 양대 축을 형성했던 하시모토의 공적비도 세울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39년에 도가와의 송덕비가 건립된 후 하시모토의 공적비는 끝내 건립되지 못했다. 1941년에 시작된 태평양전쟁, 1945년 일본의 항복 등 대규모 전쟁과 패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적비를 세울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Second alt text
구룡포근대역사관. /박창원 제공

하시모토가 살았던 집인 구룡포근대역사관은 포항시에서 관람객들이 일본인 가옥의 건축적 특징을 살피는 한편, 전시된 가재도구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그리고 실내에 설치된 홍보영상물은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 어민들의 구룡포 이주와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구룡포에서 태어나 자란 일본인 2세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구룡포라는 황금어장에서의 어업활동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가 담긴 홍보영상물은 당시 일본인들의 입장을 대변한 듯 ‘일본 어민들의 엘도라도(El Dorado)’로 미화되고 있기에 다수의 관광객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구룡포근대역사관의 전시물들은 당시 구룡포에 살았던 우리 국민이 주체가 아닌 구룡포에 이주한 일본인들을 중심에 둔 역사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구룡포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 구룡포에 이주하여 살았던 일본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일 뿐 역사의 주체인 구룡포 거주 한국인들의 역사는 소외돼 있기에 구룡포근대역사관이라는 명칭은 도무지 맞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역사가 일본의 한국 침략사가 아닌 당시 우리 민족이 겪은 시련의 역사요, 일제의 침략에 맞선 민족의 저항과 독립운동의 역사라고 한다면 구룡포의 근대사 또한 일본 어민의 구룡포 이주사가 아닌 그것을 포함한 당시 구룡포 거주 한국인들의 역사이어야 한다.

이 건물이 이름 그대로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어떤 배경하에 집단적으로 유입되었고, 일본인의 정착과 구룡포항 건설 과정에서 구룡포의 한국인들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은 일본 어민들의 어자원 수탈과 지역 경제권 장악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로 인한 구룡포 주민들의 피해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하시모토 가옥은 구룡포근대역사관이란 명칭 대신 ‘구룡포 하시모토 가옥’ 또는 ‘구룡포 일본식 가옥’이라 부르는 게 맞다. 대신 일제강점기 구룡포의 역사를 담은 구룡포근대역사관은 별도로 건립하여 제대로 된 전시관으로 꾸밀 필요가 있다.

Second alt text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군산시 제공
Second alt text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 내부. /군산시 제공 

군산도 구룡포처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던 곳이다. 여기에 가면 구룡포의 하시모토 가옥과 비슷한 시기에 지은 2층으로 된 일본식 가옥이 있다. 바로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당시 이 집에 살았던 히로쓰 게이사부로(廣津繼伊三郞)라는 일본인 이름을 따서 흔히 ‘히로쓰 가옥’이라 부른다. 군산시는 이 집은 그 자체로 보존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되 일제강점기 군산의 역사를 담은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을 따로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구룡포도 이래야 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박창원의 포항 민속문화 이야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