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에 들를 때면 종종 임고서원을 찾았다. 임고서원은 1553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포은 정몽주(1338~1392)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정몽주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문관이자 성리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태종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나 즉위 후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익양부원군으로 봉했다. 종종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의 운명과 비교되기도 한다. 태종 즉위 후 바로 명예회복이 된 포은 선생과 달리 정도전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명예가 회복되었다.
임고서원 옆에는 포은 유물관이 있어 아이와 함께 역사공부 차원에서 방문하기에도 좋다. 영천이란 도시는 낯설었지만 임고서원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기분이 들어 첫 방문 이후 단골 코스가 되었다. 근처를 걷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 작년 늦가을 즈음에도 임고서원을 거쳐 경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정몽주 생가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몽주 생가를 복원해 둔 곳이다. 실제 선생이 태어난 곳은 그곳에서 5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선생의 외가이자 태어난 곳으로 현재 유허비가 놓여있다. 당시엔 시간이 늦어 들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찾았다. 입구엔 선생이 생전에 지은 시들이 커다란 암석 위에 새겨져 있다. 포은 정몽주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단심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한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건물들은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풍제월당(光風霽月堂)’이라 적힌 편액이다. 비가 그친 뒤 맑은 바람과 달을 의미한다. 포은 선생의 평소 마음가짐이라 여겨진다.
안채엔 옷가지와 간단한 가구들이 놓여있다. 대청마루 위 놓여진 가구를 살펴보다 사랑채인 존양당으로 이동했다. 안채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랑채 뒤에는 영정각이 있다. 영정각은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살펴볼 수 없었다. 영정각을 뒤로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기와들이 정갈하게 놓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외에도 포은 선생의 전 생애를 여섯 폭의 병풍으로 제작해 놓아두었다. 태어난 해부터 선죽교에서 생을 마감한 56세까지의 일대기가 연도별로 적혀있어 누구나 쉽게 읽어볼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돌아 나와 안채 앞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선 정몽주의 삶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양식들도 재현되어 있어 아이의 호기심을 끌기 좋았다.
안채 한켠에는 우물과 장독대가 놓여있다. 그리고 입구에는 마굿간이 있는데 거대한 말이 마치 살아있는 듯 만들어져 있다. 당시 교통수단이 말이었으니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소가 아닌 말이 있어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창고 겸 머슴방으로 쓰였을 곳도 재현되어 있는데 짚신과 꼬아진 짚, 그 외 생활도구가 있어 당시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켠에 놓인 허름한 초록 이불이 안채와 사뭇 비교되었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 흔적을 남긴 후 바깥으로 나오자 관리인을 만났다. 친절한 어르신께서 영천 모바일 스탬프 투어 안내지를 건네주셨다. 친절한 설명을 듣고 안내지를 살펴보니 이미 가본 곳이 다수다. 아무쪼록 아이에게 좋은 역사 공부가 되었길 바라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입장료는 무료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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