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문화재단, 아트앤테크 모델 구축 지역 산업·과학·기술·공간 자산 바탕 철강에서 문화기술 도시로 체질 변화 기계 조형물·거리 퍼포먼스 ‘머신 아트’ 지역 문제 해결에 초점 맞춘 ‘융합예술’ 도시 전체를 무대로, 참여 콘텐츠 확대 장기·안정적 문화산업도시 육성 위한 지속적인 정부 예산·정책 지원 등 필요 지방선거 이후 정책 방향이 중요 변수
포항시 출자출연기관인 재단법인 포항문화재단이 산업도시를 넘어 미래형 문화도시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해양 그랜드 마리오네트’로 대표되는 머신아트와 융합예술 전략이 그 중심에 있다. 프랑스 낭트 등 해외 선진 사례를 참고해 출발했지만, 현재 포항문화재단의 방향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포항의 산업·기술·공간 자산을 바탕으로 한 ‘포항형 아트앤테크(Art&Tech)’ 모델 구축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추진된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와 경험이 이 전략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포항의 다음 단계를 보여주는 흐름으로 주목된다.
■ 문화도시에서 이어진 다음 단계···포항형 전략의 출발
포항문화재단이 2022년 제시한 ‘해양 그랜드 마리오네트 거점 구축사업’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프로젝트였다. 과학·기술·산업 인프라와 문화·예술을 결합해 새로운 문화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도시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대형 기계 조형물과 거리 퍼포먼스를 결합해 도시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는 구상이 핵심이었다.
같은 해 열린 국제 컨퍼런스는 이 방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 포스텍 등이 참여한 자리에서 프랑스 예술단체 라 머신(La Machine)과 프랑스 예술대학 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함께하며 ‘기계, 예술, 도시’를 주제로 논의를 이어갔다. 한·불 공동제작팀이 참여한 ‘d-Bot’ 시연과 쇼케이스 공연도 진행되며, 포항에서 구현 가능한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줬다.
이 사업은 단순한 공연이나 볼거리 차원을 넘어, 산업도시 포항의 자산을 문화와 기술로 다시 풀어내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철강 중심 도시 이미지를 넘어 문화·관광·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연결하려는 출발점이었다.
■ 머신아트와 융합예술···두 축으로 확장된 포항의 실험
이후 포항문화재단의 문화전략은 하나의 프로젝트에 머물지 않고 두 개의 축으로 확장돼 왔다. 하나는 ‘머신아트’로 대표되는 대형 기계조형물 기반의 거리 퍼포먼스다. 포항문화재단은 그랜드 마리오네트 사업을 통해 장소특정형 거리극과 시민참여형 퍼포먼스를 실험하며, 도시 공간 자체를 문화 콘텐츠로 바꾸는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이어 ‘머신 아트랩’을 통해 로보틱 작품 ‘이아피(Iahfy)’를 제작하고, 2024년 11월 포항해상공원에서 쇼케이스 ‘이아피, 희망이 뛴다’를 공개하는 등 콘텐츠로 발전시켰다. 송도 일대에서도 해상공원과 워터폴리 등을 활용한 로보틱·융합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실험 범위를 넓혔다.
다른 한 축은 융합예술이다. 포항문화재단은 문화도시 사업 시기부터 융합예술 창제작 거버넌스 형성, 창작 실험, 교육 프로그램, 국제 컨퍼런스, 오픈포럼, 융합예술주간 ‘제6의섬’, 포항융합예술프로젝트, 포스텍 공동기획 ‘인공지능예술주간’ 등으로 흐름을 이어왔다.
융합예술은 단순히 예술에 기술을 붙인 전시가 아니다. 포항이 지향하는 융합예술은 지역의 문제를 풀고, 공간을 다시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포항 융합예술 창제작 프로젝트에 참가한 김희은 작가의 ‘메탈 레이브’는 형산강의 중금속 오염 데이터를 사운드오 미디어로 전환한 작품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과학기술의 원리를 예술로 풀어냈고, 포항의 환경 문제를 기후·생태·지속가능성이라는 세계적 의제로 확장해 보여줬다.
또한 포항의 융합예술은 사라진 지역의 기억을 홀로그램이나 미디어기술로 다시 불러내고, 유휴공간이나 문제 있는 공간에 빛·소리·센서 기술을 입혀 시민과 반응하는 새로운 장소로 바꾸는 방식에 가깝다. 예술이 먼저 공간에서 말을 걸고, 시민이 반응하며 도시를 새롭게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포스텍, 포항가속기연구소, 한동대학교 등과의 산학연 협력 기반, 그리고 프랑스 낭트 ‘창조지구’, 캐나다 퀘벡의 ‘예술과 기술 공동체(SAT·Society for Arts and Technology)’, 일본 야마구치의 ‘야마구치정보예술센터(YCAM) 등 해외 문화기관과의 교류 가능성이 더해지면서 기술 기반 문화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도 함께 쌓여가고 있다.
■ ‘문화사업이 아니라 도시전략’···공간과 기억을 다시 살리는 예술
머신아트가 도시 공간과 대중적 경험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융합예술은 인공지능, 로보틱스, 미디어아트 등 첨단기술과 결합해 창작 생태계와 도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 두 축을 통합해 포항만의 문화산업 구조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포항문화재단 이상모 대표이사는 “미래문화 전략사업은 하나의 공연이나 전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포항의 산업과 기술, 문화가 결합된 도시 전략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그동안 축적해 온 머신아트와 융합예술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간과 기억을 다시 살리고 지속 가능한 문화산업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도시 사업이 끝났다고 해서 포항의 실험이 끝난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문화도시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개별 사업을 넘어 도시 차원의 전략과 정책으로 연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아트앤테크 클러스터로···미래 산업과 도시의 연결
포항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할 산업·기술 기반도 갖추고 있다. 포스텍과 AI대학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포항가속기연구소,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 등 연구 인프라와 함께 국제불빛축제, 스틸아트페스티벌, 국제음악제 등 문화 콘텐츠 실증 무대도 확보하고 있다. 이는 포항이 단순히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도시를 넘어, 기술과 예술을 함께 실험하고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로 읽힌다.
현재 포항문화재단은 첨단기술 기반 창작 LAB 구축, 지역 특화 창·제작 생태계 조성, 기업 육성, 국내외 유통과 교류협력, 인력양성 체계 마련 등을 포괄하는 중장기 구상을 이어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하나로 묶어 ‘영남권 아트코리아랩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 선택의 시간···이제는 정책과 결단이 필요하다
다만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가 도시 전략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과 정책 연속성이 필수적이다. 대형 구조물 제작과 운영, 기술 기반 창작 인프라 구축, 국제교류와 인력양성은 단년도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화사업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특히 다가오는 6·3지방선거 이후 새롭게 출범할 시정과 광역, 정부의 정책 의지가 향후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포항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실험을 개별 사업 수준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형 문화산업도시 전략으로 키워낼 것인지는 결국 행정과 정책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해양 그랜드 마리오네트’로 시작된 포항의 실험은 이제 단일 프로젝트를 넘어 도시 전략으로 확장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산업과 기술, 예술과 도시를 결합해 포항만의 미래 문화도시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아니라 실행과 결단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