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리에 치른 경주는 뒤이어 ‘신라금관특별전’으로 들썩들썩했다. 따로 떨어져 있던 금관이 경주국립박물관에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특별함 때문이었다.
신라 금관 6개를 모두 본 감동을 되살리려 다시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날은 특별히 ‘나는 박물관 간다’의 저자 김용호 작가와 인문학 회원들과 함께였다.
경주로 향하는 길, 오후의 봄 햇살은 내 등 뒤에서 포근히 따라왔고 이제 막 피어나려는 벚꽃처럼 신라의 역사가 우리 앞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했다. 거대한 서사 앞에서 우리는 작아졌고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잘 모르는 신라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박물관 입구는 언제나 그렇듯 3대가 함께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체험을 하러 온 학생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 외국인 무리가 뒤섞여 있다. 막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니 때맞춰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종소리에 행복해진 우리는 약속 장소인 신라역사관 앞에 모였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작가는 신라 금관 이야기로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신라역사관의 시작은 신라의 연표부터 보는 거였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쳐 버렸는데 작가님 덕분에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물왕 때부터 임금의 칭호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에서 마립간이라 쓰며 신라가 독자적으로 정립해 나갔다. 그리고 온전히 왕권을 갖고 싶었던 염원이 청동을 지나 금관을 탄생하게 했다.
금관을 볼 때면 먼저 화려한 공예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황금 왕관을 마주할 때면 감탄과 동시에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금관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금관과 금제 장식들이 신라의 왕들에겐 권력을 표현하는 확실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거다. 금관 최대의 미스테리인 곡옥과 달개, 그 시절 신라 사람들의 세공 기술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세움 장식의 나뭇가지 모양이 신단수와 오벨리스크로 이어진다고 작가는 책에서도 말했다. 이 부분이 내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기다란 장대 끝에 기러기가 앉은 모양의 솟대도 신단수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지난 금관전 관람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금관에 나뭇가지 장식을 함으로써 하늘과 신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죽어서도 나라를 다스리며 하늘과 신에 기원하고자 금관의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죽어서도 왕이 되고 싶었던 대릉원의 무덤처럼. 이제까지 단편적으로 알던 금관에서 한 발짝 나아간 느낌이다. 황금과 유리잔과 구슬이 신라에 있었던 건 북방의 기마민족과 남방 항로를 통한 교류의 흔적이었다 것도 확인했다. 평소에 문화는 교류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오늘 이야기도 일맥상통한다.
투어를 마치고 질문 시간에 신단수와 오벨리스크에 대해서 다시 물었더니 작가는 신단수를 압축한 게 서양에서는 오벨리스크라고 말했다. 그게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순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기념비가 떠 오른다. 중요한 공공장소에 세워진 그 상징성을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두만강과 압록강이 그리 큰 강이 아닌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갇혀 있다고 말했다. 또 역사를 아는 건 나를 아는 것이니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작가님의 나긋나긋한 설명이 오후 내내 내 귀를 행복하게 했다. 그 목소리가 중학교 때 잘생긴 총각이었던 국사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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