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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사 문우관을 찾아서

등록일 2026-04-05 15:00 게재일 2026-04-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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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경상도 관찰사 이숙·유척기 선정 기린 사당
일제 때는 민족정신 함양 교육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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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반월당 인근에 있는 상덕사 비각과 문우관의 모습.

지하철 1호선 반월당역에 내려서 옛날 적십자병원 쪽 출구로 나가서 동부교육청 조금 못 미친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100m 쯤 가면 도로명 주소로 대구시 중구 문우관길 13에 상덕사(尙德祠)가 있다.

1682년 세워진 상덕사는 조선 현종 때 경상도 관찰사 이숙과 영조 때의 경상도 관찰사 유척기의 선정을 기리는 사당이다. 원래는 현 대구시청 주차장 부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덕사 이름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편액은 죽천 김진규가 썼다고 전한다.

1826년에 경상감사 조인영이 상덕사 뜰에 이숙과 유척기의 사적을 새긴 상덕사 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9월 9일 비 앞에서 제를 지냈다.

상덕사 입구 맞배지붕 협문에는 진덕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석재 서병오의 스승이었던 서석지의 아들 중산 서경순의 글씨로 문우관이 건립될 때 쓴 것이라 한다. 담장이 높지 않아서 마당과 건물을 넘어다보고 있는데 문을 여는 선비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진덕문을 들어서 왼쪽의 건물이 문우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상덕사 비각(碑閣)이다. 현재 문우관에서는 30여명이 모여 일주일에 한번씩 한문 공부를 한다고 한다.

문우관은 1918년 채헌식, 구달서 등이 건립한 강회소다. 을사늑약 이후에 일제가 공교육을 실시하자 민족의 전통을 회복하고 강학과 후진 양성을 위해 선비들이 모여 지은 공부방이다. 문우관 방 벽에는 ‘이문회우 이우보인’ 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로 ‘문으로써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더불어 인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따서 문우관으로 이름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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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사 입구에는 덕을 향해 나아가자는 뜻의 진덕문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이 글씨는 서병오의 제자이며 영남서화 회장을 지낸 주병환이 1976년 설날에 문우관에 걸기 위해 쓴 글이다. 문우관은 지금도 향사와 강학이 이어지고 있다.

문우관의 뿌리는 낙육재와 이어져 있는데, 낙육재는 1721년 경상도 관찰사 조태억이 설립한 대구의 첫 관립 도서관이자 지방 국립대의 효시다.

당시 향교와 서원이 있었으나, 도 단위의 인재를 선발한 것은 낙육재가 처음이었다. 선발된 경상도 지역의 유능한 선비들이 함께 기숙하며 엄격한 학칙 아래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장서각과 예산을 조달하는 학전도 있었다. 문우관 끝 오른쪽에 상덕사 비각이 있다.

상덕사는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시청의 전신인 지금의 청사를 지으면서 사라지고, 비와 비각만이 190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상덕사 비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은 사각의 화강석 기단 위에 세 칸 규모의 원주를 세우고, 맞배지붕을 올려 비교적 고풍을 간직한 모습의 건물이다.

옻색의 문과 붉은색의 촘촘한 살대 속에 상덕사비와 이숙의 선정비, 유척기의 영세불망비 2기 고종 때의 도순찰사 이호준의 불망비 등 5기의 비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9월 9일 중양절에 이숙과 유척기의 유덕을 기리는 향사를 문우관에서 봉행한다.

시민기자가 상덕사를 찾은 이날, 대구문화유산지킴회 회원 10여 명도 동행해 현장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유산지킴회 강춘화 씨는 “이처럼 소중한 유산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며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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