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 털썩 앉았다. “저기, 진달래”라는 남편의 말에 시선을 돌린다. 마당 한쪽 마른 가지 끝 진홍빛, 남편은 시답잖은 나의 표정에 실망하는 눈치다. 일주일 전 방촌마을 강둑에 피기 시작하던 벚꽃과 개나리를 보고도 그저 ‘아, 봄이네’라며 스쳤다. 강물의 반짝이는 윤슬과 연두색 버들가지에 잠깐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마음 한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올봄, 나의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어무이는 좀 어떻더노?”
남편의 물음에 “여전하시지. 안 드시려는 걸 겨우 계란찜을 해드렸더니 겨우 몇 술 뜨셨어.”라고 대답했다. 대구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어머님은 “나는 우짜노, 이제 나는 우짜노···.”라고 넋두리를 했다. 그 말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빨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왔다.
어머님이 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지 3주째다. 손목뼈 골절로 병원 문을 두드린 지는 한 달이다. 요양병원에서 옆 침대 환자들이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며, 당신도 저들과 같이 될까 두려워 집으로 오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시골집엔 아주버님과 조카, 남편까지 남자뿐이라 병간호가 막막했다. 다행히 요양보호사님이 평일에 세 시간씩 도와주시지만, 저녁 시간과 주말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4월부터 나가기로 했던 직장도 포기했다. 농사일에 부엌일로 지쳐가는 남편을 외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돌아눕지도 못하는 어머님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시골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누워 지내는 어머님의 몸은 물먹은 나무처럼 무겁다. 하루에 두 번, 요양보호사님과 내가 번갈아 가며 어머님의 뒤처리를 해드린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어머님은 당신의 치부를 아들들에게 보이지 못하신다. 내가 대구에 머무는 날엔 불편함을 견디며 하루 한 번의 처치로 버티셔야 한다. 그 고단한 기다림 탓일까, 어머님의 살결에 붉은 욕창이 돋기 시작했다. 더 심해지면 패혈증까지 올 수 있다는데, 마음이 타들어 간다.
어머님은 4남 2녀를 두셨다. 며느리가 넷에 사위가 둘이다. 지금 어머님 곁을 지키는 자식은 둘뿐이고, 며느리는 나 혼자다. 조카와 질녀, 큰딸이 가끔 다녀가며 손을 보태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병원 문안 이후로 소식이 없다. 서운함이 불쑥 치밀다가도 이것이 요즈음의 현실인가 싶어 입술을 깨문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 드문 세상이다. 시설이 더 나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머님은 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완강히 고개를 저으신다. 자식의 손길이 닿는 집이 어머님에겐 끝까지 지키고 싶은 안식처인 모양이다.
잠시 대구에 나왔지만, 마음은 이미 청송의 방 한구석에 가 있다. 어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활짝 핀 벚꽃 아래 잠시 멈춰 섰다. 모든 것이 시들하게 느껴지는 올봄이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꽃잎이라도 눈에 담아보려 애쓴다. 바깥출입 한 번 못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이 사소한 꽃구경조차 죄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우울한 기분을 달래야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어머님의 내일에 정말 희망은 없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접고, 내일 청송에 갈 때는 노란 후리지아 한 다발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향기 없는 진달래 대신, 방 안 가득 봄의 냄새를 채워드리고 싶다. 어머님의 마음에 핀 욕창이 그 향기에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면, 나의 회색빛 봄에도 노란 물감 한 방울이 번져갈지도 모르겠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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