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띠띠미 마을의 선물
경북 봉화군 봉성면의 산골 마을 띠띠미는 매년 봄마다 노란 산수유꽃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흙냄새와 봄꽃 향기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산수유꽃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마을 전체를 황홀한 노란 물결로 물들인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는 꽃향기는 400년 역사의 숨결과 함께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띠띠미마을은 조선 시대 병자호란의 굴욕적 화의에 반발해 청나라에 항거한 ‘대명절의’ 정신을 간직한 곳이다. 특히 태백오현 중 한 명인 두곡 홍우정(1595~1656)이 이 마을의 산수유 역사를 시작했다. 그는 경기도 이천에서 산수유 두 그루를 가져와 심었고, 이는 후손들에 의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홍우정의 종택과 ‘옥류암’ 정자가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그의 뜻을 기리는 태백오현(홍우정, 심장세, 정양, 강흡, 홍석)과 관련된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문수산 자락 아래 자리한 원조 산수유 군락지는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들이 고즈넉한 고택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토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돌담과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오며, 가을이면 빨간 열매로 변모하는 산수유는 영원한 사랑과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꽃잎은 차로, 열매와 뿌리는 약재로 활용되는 산수유는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피어난 희망의 상징이다.
남양홍씨 집성촌인 이곳에는 두곡종택, 옥류암 정자, 홍가선가옥, 성경재고택 등 전통 한옥들이 산수유 군락과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특히 홍우정의 종택 옆에는 ‘옥류암’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맑고 깨끗한 물이 떨어지는 계곡 옆에 자리해 이름 그대로 청정함을 간직한 공간이다. 고택 담장과 계곡, 산비탈 언덕까지 사방이 노란 꽃그늘로 물드는 봄날, 마을 사람들은 순박한 모습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지난 28일에는 봉화문인협회가 주최한 산수유 시낭송회가 열려 노란 꽃망울 터지는 순간을 문학적으로 기념했다. 마을 초입에는 수십 그루의 춘양목 군락이 우뚝 서서 선비 같은 기품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봉화의 어디를 가도 마주치는 늘씬한 춘양목은 띠띠미마을의 고택들과 산수유꽃이 빚어내는 황금빛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을 연출한다.
띠띠미마을의 산수유꽃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호젓한 고택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노란 꽃밭은 마치 시간을 거스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가족, 연인, 아이들이 함께 산책하며 봄을 만끽하는 모습은 마을의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봉화의 8경 중 5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이곳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한다.
400년간 이어진 산수유의 향연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봄 햇살 아래 펼쳐지는 황금빛 꽃물결 속에서 방문객들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선조들의 정신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향기 그윽한 세월의 흔적과 지천으로 핀 산수유꽃이 어우러진 띠띠미마을은, 봄의 전령으로서 우리에게 끝없는 영감을 선사한다.
/류중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