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공신제도 운영 방식 입증하는 중요 사료···한국국학진흥원, 전통문화유산 보존 의지 밝혀
안동 소재 국학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이천서씨 양경공 종가가 기탁한 360여 점의 자료 중 조선 태종 즉위와 직접 관련된 유일한 공신 문서인 익대좌명공신 교서 1점과 왕지 2점 등 총 3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문서들은 조선 초기 공신제도의 운영 방식과 왕명 문서 체계를 입증하는 희귀 사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신제도는 조선 초기 국가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칭호와 특권을 부여해 충성을 유도하고, 고려 말 혼란을 수습하며 새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교서는 1401년(태종 1년) 2월, 제2차 왕자의 난(1400년)에서 이방원을 왕위로 옹립한 공로로 조선 개국 공신이자 문신인 서유(1356~1411·이천서씨 양경공파 중시조)가 익대좌명공신 4등에 책록됐음을 국왕이 공식 선포한 문서로, 조선 초기 공신 제도의 실체를 입증하는 희귀 사료로 주목받고 있다.
서유의 교서는 태종이 즉위 직후 공신 47명을 좌명공신으로 추서한 조치의 일환으로 발급된 것으로, 현재까지 실물이 전해지는 조선 초기 좌명공신 교서 중 유일한 사례다. 앞서 개국공신교서(1392년, 이제)에 이어 두 번째로 이른 시기의 문서로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교서에는 ‘조선왕보(朝鮮王寶)’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으며, 붉은 천을 덧댄 ‘단서철권’ 형식이 고스란히 보존돼 조선 초 공신 문서의 전형적 양식을 확인시켜 준다.
함께 공개된 왕지(王旨) 2점은 조선 초기 관직 임명장의 원형으로, 태조와 태종 시대의 인사 행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1394년 태조가 서유를 봉정대부 세자우필선으로 임명한 왕지는 현존 왕지 중 네 번째로 이른 시기의 문서이며, 1402년 태종이 서유를 추성익대좌명공신 가정대부 이성군 집현전제학 겸 판내자시사로 추증한 왕지도 함께 기탁됐다.
정종섭 원장은 “이번 공개 자료는 조선 건국 초기 공신 책봉과 왕명 체계의 구체적 과정을 보여주는 획기적 기록”이라며 “600년간 종가가 지켜온 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전통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확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