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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정유재란 울산성 전투: 지옥의 성벽 위로 흐른 탐욕과 생존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6-01-31 10:32 게재일 2026-02-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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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약 2주동안 말의 피와 소변으로 갈증을 채운 왜군
가토 키요마사가 구마모토성에 우물을 130개나 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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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성 전투도. /출처 위키백과

전쟁은 기본적으로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지옥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본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420여 년 전, 정유재란의 막바지 혈투가 벌어졌던 울산성(울산왜성) 전투는 그 비극적 모순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조명(朝明) 연합군은 승리를 위해 조선의 최첨단 공성(攻城) 장비들을 투입했다. 조선의 포(砲)는 위력적이었음에도 곡사(曲射) 능력이 취약해, 가파른 지형을 활용한 왜성의 방어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성전의 일반적인 상식 또한 울산성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대개 성(城)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군사력(보통 10대1)이 필요하지만, 연합군은 2~3배 군사적 우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연합군 4만7500명, 왜군 2만9000명)

기술적 한계와 견고한 요새화는 결국 전투를 장기적인 고사(枯死) 작전으로 몰고 갔으며, 이는 성 안팎 모두에게 지옥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울산성을 사수(死守)하기 위한 왜군의 총집결도 패전의 한 원인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수군과 육군을 총출동시켜 울산성으로 모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순천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까지 구원병으로 출정했다는 사실이다. 평소 극심한 반목 관계였던 이들이 생사 위기 앞에 전면적으로 협력한 모습은 당시 일본군에게도 울산성 수성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립된 성 안의 풍경은 참혹했다. 보급이 끊긴 일본군은 군마(軍馬)를 잡아 허기를 채우고, 말의 피와 소변으로 목을 축였다. 기록에 남은 이 장면은 전쟁이 영토와 명분을 넘어, 한 모금의 물과 한 점의 살점을 두고 벌이는 원초적 사투임을 증언한다.

당시 왜군 종군(從軍)승려 경념(慶念)의 일기에는 “성 안에 물과 식량이 떨어져 오줌을 받아 마시거나 말을 잡아먹었다“고 “말고기를 먹고, 흙벽을 긁어 먹거나 종이를 끓여 먹는 등 처참한 상황이 계속되었다”고 적고 있다.

12월 엄동설한을 배경으로 전개된 전투에서 변변한 방한(防寒) 장비가 없었던 조선의 민초들의 동사자도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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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수군 전투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이 지옥 속에서 가장 이질적인 대목은 성벽을 넘나든 ‘물장수‘들의 이야기다. 매일 새벽, 물동이를 든 물장수들이 사선(死線)을 넘어 성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가져온 물 한 병을 금과 은으로 바꿨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에서 피어난 이 기묘한 상거래는 ‘상혼(商魂)‘이 절망의 끝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지독한 본성임을 말해준다.

산성에서의 경험은 생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남겼다. 가토 기요마사는 일본으로 돌아가 구마모토성을 쌓으며 무려 130개의 우물을 팠고, 다다미조차 고구마, 토란줄기로 만들어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이는 울산성에서 겪었던 고립과 갈증에 대한 공포가 형상화된 트라우마의 기록이다.

울산성 전투는 군사적 충돌 외,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탐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류학적 보고서다. 금과 바꾼 물 한 병, 그리고 그 물로 연명했던 이들이 만든 찰나의 ‘시장‘은 전쟁의 명분보다 질긴 생존의 욕망을 증언한다.

울산성의 척박한 땅 위에 흐른 것은 피뿐만이 아니었다. 절망을 자양분 삼아 피어난 기묘한 상흔과 생존의 본능은, 42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사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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