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되면 여의도나 석촌호수 부럽지 않을 만큼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되겠다. 그냥 집 앞에 돗자리 깔고 벚꽃 구경하면 되지, 뭐. 우리 가족은 그런 말을 하며―실제로도 벚꽃 개화 시즌에 맞춰 피크닉을 한 적은 없다―바람에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을 지켜보곤 했다.
벚꽃이 마음에 든 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면, 단지 곳곳에서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댔다. 아이들이 그만 찍겠다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 계속.
그래서인지 그 집에 사는 동안 내게 봄은 아이들을 보는 계절로 인식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주시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꽃잎이 사방에 뿌려진 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강아지는 이따금 길가의 꽃잎을 주워 먹는다. 집안의 화분들엔 관심도 없으면서 밖에만 나가면 코를 들이밀고 입을 벌려 꼭꼭 씹다가 퉤 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봄에는 마음이 들뜨는 걸까? 그래서 안 하던 짓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꽃은 있지만 봄꽃이 아니면 뜯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강아지가 봄바람에 코를 씰룩이는 것처럼, 아이들도 봄에는 유독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를 보는 순간 스위치 켜진 장난감처럼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강아지다! 외치는 것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강아지를 만지려고 겁 없이 작은 손을 뻗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그럴 때 보호자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아지 귀엽지? 만지고 와도 돼, 하고 멋대로 지시하는 보호자와 강아지 귀엽지? 그래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하고 제지하는 보호자. 반려인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를 선호하고 또 지지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전혀 예상 못 한 세 번째 유형의 보호자를 만났다.
정확히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강아지를 본 아이는 대번에 흥분해선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강아지, 강아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몹시도 엄격한 얼굴로 크리스,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한댔지? 강아지가 아니라 퍼피라고 해야지,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곳을 보는 척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스피크 잉글리시. 올웨이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이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가 따라 할 때까지 퍼피, 퍼피,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말이 없자, 급기야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퍼피 스펠링을 하나하나 그리기까지 했다. Puppy, puppy. 결국 아이가 더듬더듬 퍼피, 하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로 리멤버, 크리스.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단호히 되뇌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종종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애한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웃음이 거두어진 자리에 남은,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얼굴이. 강아지든 퍼피든 뭐가 중요할까. 애가 그렇게 웃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엄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잊었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날의 아이 엄마도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토록 단호했던 거겠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미래를 보고 있던 거겠지. 그렇지만 강아지든 퍼피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는가, 얼마나 기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일 테니까.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미래가 아닌 더 중요한 지금을 보고 싶다.
/양수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