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돌에 새긴 이상향 불국사·시와 풍류의 포석정…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10-20 19:51 게재일 2025-10-21 2면
스크랩버튼
세계 속 ‘문화 수도’ 경주의 속살
도심 속 왕과 귀족의 무덤 ‘대릉원’
신라왕경 위 현대 감성 ‘황리단길’
연못 위에 비친 궁궐 ‘동궁과 월지’
Second alt text
불국사 전경. /이용선 기자 photokid@kbmaeil.com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경주가 천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신라의 유산은 단수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형 문화 수도’의 얼굴로 되살아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것처럼 경주의 속살도 이제 세계가 열광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 불국사, 이상향을 돌에 새긴 신라인의 건축 정신
토함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불국사는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창건하고 774년 완공된 통일신라 사찰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반원형 홍예 아치 아래에 놓인 석조 교량으로 총 34단(청운교 16단·백운교 18단)으로 구성된다. 세속과 불국토를 잇는 경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하문을 지나면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이 서로 마주 선다. 화려함과 절제의 대비는 신라인이 추구한 조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불교 교리를 건축공간에 구현한 대표 사례”로 평가했다.

◇ 포석정, 흐르는 물 위에서 시와 풍류를 나누다
경주 남산 서쪽 골짜기에 자리한 포석정은 통일신라 귀족들이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진성여왕조에는 왕과 신하들이 이곳에서 시를 짓고 술을 나눴다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수로는 길이 22m, 높낮이 차 5.9cm의 화강석 홈이 이어진 구조로 물길 위에 술잔을 띄우던 풍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신라 상류층의 예술적 교양과 사유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된다.

Second alt text
대릉원. /이용선 기자 photokid@kbmaeil.com

◇ 대릉원, 흙 봉분 사이로 드러나는 신라의 장례 미학
경주 도심의 대릉원은 왕과 귀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신라 왕릉군이다.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 등 대형 고분이 포함돼 있다. 무덤 구조는 돌무지덧널 위에 흙을 덮는 적석목곽묘 형식으로 생과 사의 순환을 상징한다. 천마총 내부 벽화의 ‘천마도’는 현실과 내세를 잇는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시각화한 대표적 유물이다. 잔디 언덕의 완만한 곡선과 봉분 사이의 공간미는 ‘죽음마저 품은 미학’이라는 신라적 감수성을 전한다.

◇ 황리단길, 신라 왕경 위에 피어난 현재형 감성
신라 왕경의 중심이었던 황남동 일대는 ‘황리단길’로 불린다. 전통 한옥과 현대적 상점이 어우러져 과거의 풍경과 새로운 감성이 공존한다. 한옥 지붕 너머로 고분 능선이 이어지고 돌길 사이로 전통과 현대가 만난다. 첨성대의 실루엣을 본뜬 간판과 골목의 불빛은 천년의 도시가 지금도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Second alt text
동궁과 월지. /이용선 기자 photokid@kbmaeil.com

◇ 동궁과 월지, 물 위에 반사된 궁궐의 밤
동궁과 월지는 674년(문무왕 14) 조성된 왕실 별궁과 연못 유적으로 신라의 조경예술이 응축됐다. 사적 제18호로 지정된 이곳은 밤이면 연못 위로 누각의 불빛이 반사돼 현실보다 선명한 환영을 만든다. 달빛과 조명이 겹친 수면 위의 궁궐은 신라 왕경의 미적 감수성과 자연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

◇ 월정교, 밤의 문화 경관 
남천 위를 가로지르는 월정교는 신라 시대 교량 양식을 고증해 복원한 목교다. 2018년 복원사업 완료로 다리의 원형이 살아났고, 야간 조명이 더해져 대표적 야경 명소가 됐다. 붉은빛이 물결에 스며드는 교각 아래를 걸으면 과거의 건축 기술과 현대의 도시 조명이 한 장면 속에서 만난다. 월정교는 천년의 시간을 잇는 다리이자 유산과 문화가 공존하는 경주의 상징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