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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 물리친 김득배 장군 재조명

고성환 기자
등록일 2025-06-30 10:52 게재일 2025-07-0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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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서 난계 김득배 학술대회
삶과 업적 등 전문가 주제발표 
200여 명 참석, 질의응답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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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홍건적 물리친 김득배 선생 학술대회에서 이도학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고성환 기자

고려시대 말 홍건적 침략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 난계(蘭溪) 김득배(金得培)선생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문경문화원에서 열렸다. 

경북도연합회(회장 박승대)와 문경문화원(원장직대 권용문)가 주관하고, 상산김씨대종회(회장 김삼균)가 후원한 이 행사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이상 학술발표와 질의응답이 이어지며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명예교수의 ‘난계 김득배 선생 생거지 검증’을 시작으로, 고려대학교 김창현 전 연구교수의 ‘난계 김득배의 생애와 업적’, 공주대학교 윤용혁 명예교수의 ‘고려말 홍건적 격퇴의 영웅 김득배, 추숭과 현창’, 난계 김득배장군 기념사업회 이창근 회장의 ‘난계 김득배 장군 기념사업회의 발자취’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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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홍건적을 물리친 김득배 선생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고성환 기자

이 자리에서는 김득배 선생의 출생지가 상주와 문경으로 혼용되고 있는 것은, 현재 문경시 흥덕동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상주목 관할이어서 초래한 것으로, 현재의 지명은 문경이며, 김득배 선생의 가문은 그 당시 이 지역 향리(鄕吏)라고 검증됐다. 

또한 김득배 선생이 문신인지, 무신인지에 대해서는 출장입상(出將入相)으로 나가서는 장군이요, 조정에서는 재상이라는 문무를 갖춘 인물임이 밝혀졌고, 선생의 최종 벼슬은 종2품의 정당문학보다 한 단계 위인 정2품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해야 한다고 밝혀졌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침략으로 안동으로 파천했고,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해 갖은 만행을 자행하자 김득배(1312~1362) 선생은 공민왕 11년(1362년) 1월 17일 총병관 정세운과 안우, 이방실, 황상, 한방신, 이여경, 안우경, 이구수,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이튿날 새벽에 총공격을 감행해 홍건적을 섬멸하고 개경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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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홍건적 물리친 김득배 선생 학술대회 관계자들의 기념 촬영 모습. /고성환 기자

그러나 이후 김용의 계략에 말려, 정세운을 죽이는 데 가담, 그의 나이가 51세에 상주에서 효수되었고, 선생의 문생이었던 정몽주가 왕에게 청해 시체를 수습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김득배 선생의 유적은 상주시 낙양동의 ‘유허비’와 상주박물관에 전시된 선생의 동생 김선치의 벼루와 벼룻집, 선생의 위패를 모신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 선생의 부인 서흥 김씨 기사가 적힌 여주 신륵사 보제사리석종 사리탑과 비석, 선생의 부인 서흥 김씨가 창건한 대승사 윤필암이 있다. 

이도학 교수는 “이러한 선생의 업적과 유적을 바탕으로 현창해야 하며, 현창 사업들을 문경을 중심으로 찾아야 한다”며 “없는 것도 만들어 현창하고 있는 때에 있는 인물과 있는 사실, 있는 유적들을 정리하고 현창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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