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유적 10년 발굴 성과 공개<br/>정면 5칸·측면 4칸·18개 기둥<br/>전각 딸린 대규모 궁궐터 확인 <br/>학계 일각 ‘내진감주’ 공간 반론
‘삼국사기’등의 역사서 기록에 근거해 왕경 토목기술이 집약됐다고 알려진 태자의 거처와 정무 공간인 동궁전이 그간 알려졌던 것처럼 월지 연못 서쪽이 아니라 연못 동쪽에 자리한다는 발굴 성과가 밝혀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6일 지난 10년간 신라왕경 핵심유적 발굴 성과를 공개하며 월성 인근의 월지(안압지) 연못 주변에서 대규모 궁궐터가 새롭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궁궐터에서는 임금과 태자의 거처로 추정되는 전각과 딸림 시설 등이 다수 발견돼 월성과 월지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소는 월지 연못 동남쪽 권역에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대형 건물터를 포함한 동궁(674년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해 지었다고 전해짐) 추정 궁궐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건물터는 18개의 기둥 자리와 월대 공간, 다섯 개의 진입 계단을 갖추고 있으며, 거대한 회랑과 익랑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또 내부에는 두 개의 원지 흔적이 발견됐다.
이번에 발굴된 동궁 추정 대형 건물터는 월지 연못 동남쪽 권역(Ⅱ-나지구)에서 확인됐다. 정면 5칸(길이 25m)에 측면 4칸(18.1m)의 직사각형 평면에 18개의 기둥 자리와 함께 일정한 시점에 건물 남쪽에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돌출 시설인 월대 공간(길이 3.8m)이 증축된 것으로 드러났다. 진입 계단은 총 다섯 개로, 건물터 정면에 두 개, 뒤쪽에 한 개, 오른쪽 측면에 한 개를 둔 것으로 파악된다.
복도식 건물인 거대한 회랑과 익랑이 이 대형 건물지를 둘러싸고 그 앞에는 넓은 마당시설이 펼쳐져 있으며, 내부에는 따로 정원의 연못인 원지가 두 곳 조성된 흔적들도 잇따라 나왔다.
특히 원지는 현재 너비 43.56m, 길이 17.2m에 깊이 1m에 달하며 내부에 두 개의 인공섬까지 갖춘 얼개다. 기존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와 연결되지 않고 따로 운영돼 독립된 배수 체계를 갖춘 것으로 밝혀냈다. 그동안 신라 태자가 거처했던 동궁 궁궐터는 구체적인 실체가 파악되지 않아 그 위치가 어디냐는 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확인된 궁궐터를 태자의 동궁전으로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기존에 발굴됐던 월지 서쪽 건물터와 이번에 나온 월지 동쪽 건물터에서 왕의 정전이나 사찰 금당에서만 보이는 ‘내진감주(內陣減柱)’라고 불리는 특수한 공간 구조가 공통으로 확인된다는 게 근거다.
두 건물터 한가운데에는 아예 기둥을 치지 않고 내진이라고 부르는 직사각형 모양의 빈 구역을 둔 것이 보이는데, 이런 공간 구조를 고고학계와 건축사학계 전문가들은 왕의 옥좌나 큰 불상들의 대좌를 안치하기 위한 공간으로 해석해왔다.
따라서 이번에 드러난 월지 동쪽 대형건물터에도 내진감주의 구조가 보인다는 건 이 건물터 역시 월지 서쪽의 건물터처럼 왕의 공간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건물 자체의 크기는 서쪽 건물터보다 조금 작지만, 앞마당은 더 넓고 서쪽 건물터에 없는 측면 계단이 확인됐다는 점 또한 위계를 낮춰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왕경유적인 월성의 경우 201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지만, 아직 일반적인 대형 궁궐 전각의 형식과 규모에 갈음하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이번 발굴 성과는 일단 기존에 왕경으로 간주해온 월성이 아니라 월지를 중심으로 핵심 궁궐이 조성됐다는 것을 보여주며, 신라의 궁궐 구조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신라사 전문가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동궁 추정 건물터 유구에 대해 “형태가 매우 뚜렷하며, 문화재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재 가치는 한번 지정되면 인식을 바꾸기 어렵지만, 이번 발굴로 인해 7세기 후반 신라사의 이야기가 다시 정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