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대장간 유종태
세월은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며 수많은 직업이 생기고 사라졌다. 아직까지 기술이 인간의 손을 100%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기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최신기술 도입에 있어 적극적이었다. 이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은 기술 선도국이 됐다.
하지만 기술과 속도가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느리지만 소중한 것들이 우리 삶에는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과 더께가 묻어 있는 작은 노포에서 삶의 위안을 얻고, 전통을 꿋꿋하게 지키는 사람들을 보며 뭉근한 감동을 받는다.
소박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경상도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탕탕탕’
경북 경주시 건천읍 건천시장 안 깊은 골목.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낯선 망치실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니, 골목 한쪽에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건천대장간’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5평 남짓한 공간. 그곳에서 2대째 가업을 잇는 건천대장간 유종태(53)사장이 수줍은 미소를 건네며 기자를 반겨줬다.
유씨의 첫인상은 ‘평범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두툼한 어깨와 손, 둥근 배까지도.
하지만 그는 보통 중년들과 다른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에게서 뜨거운 불과 쇠의 향기가 짙게 느껴졌기 때문.
그는 “아버지께서 65년간 이 자리에서 대장장이 일을 했다. 어렸을 적 대장간은 나의 놀이터였다”면서 “대장간에 손이 없어 바쁠 때면 낫에 댕기를 엮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깨너머로 배운 일을 물려받아 어느덧 20년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65년간 이 자리서 대장장이 일
어렸을 적부터 대장간은 ‘나의 놀이터’
건천대장간은 80년째 전통 방식을 고수
그의 칼은 뛰어난 절삭력과 강도로 정평
“고객 작업 환경 맞춰 형태·강도 등 조절
맞춤 칼 제작, 이 일의 큰 매력이자 보람”
◇오직 수작업만 ‘고집’
건천 대장간의 첫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194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대장간의 한쪽 벽면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연장들로 가득했다.
유씨는 “연장뿐만 아니라 화덕 같은 집기들도 개업 당시 상태 그대로다. 망치에서부터 집게, 풍로까지 모두 아버지가 썼던 물건이다”고 했다.
건천 대장간은 80년째 대부분 작업을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대장장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저렴한 중국산 농기구에 밀려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된,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눈요기용 대장간이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유씨는 “사실 기계의 힘을 빌려 작업을 하면 편하고, 물건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면서 “하지만 수 백번 두드려서 만든 칼과 쉽게 만든 칼은 절삭력의 차이가 엄청나다. 만드는 사람이 힘이 들수록 좋은 칼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유씨의 아침은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기상을 한다. 이후 전날 두드려 놓은 쇠를 모양과 두께에 맞춰 가는 작업을 한다.
또 다른 철을 불에 달구고 다시 꺼내 수 백번 망치질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낙하 해머를 사용하는 다른 대장간과는 달리, 유 씨는 오직 손 망치질만을 고집해 칼을 제작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칼을 만드는 대장간은 전국에서 몇 곳이 안 된다. 수작업으로 만드니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칼은 3~5개 정도다.
◇경북동해안지역 최고 인기 수제 칼
유씨는 정성 들여 만든 칼을 경주 안강 시장과 건천 시장, 포항 구룡포 시장, 기계장 등에 판매한다.
그의 칼은 절삭력이 뛰어나고, 강도가 세기로 소문 나있다. 가정집 주방용 칼보다는 횟집, 수산가공물 손질 업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유 씨의 칼을 한 번 사용해보면 중국산 칼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유씨는 “대량 생산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공장 제품들과 오랜 시간 메질과 담금질을 반복한 수제품의 차이는 품질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면서 “고객의 작업 환경에 맞춰 연장의 형태와 강도, 무게 등을 조절해 주고 있다. 고객을 위한 맞춤형 칼까지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자 보람”이라고 했다.
그가 개발한 칼 중에 특히 횟 칼은 경주, 포항뿐만 아니라 영덕, 울진 등에서 인기가 높다. 경북동해안지역 횟집에서 사용하는 회칼 70∼80% 가 유 씨가 만든 것이다.
목수들도 유 씨가 만든 망치, 정, 끌 등의 연장을 찾는다.
이같은 명성 덕에 그의 대장간 대부분의 고객은 20년 이상 된 단골들로 구성돼 있다. 아버지 때의 단골도 현재까지 포함하면 40년 된 단골도 있다.
유씨는 “우리 칼의 수요는 꾸준하지만, 정작 칼을 만드는 일을 배워 보겠다는 젊은이가 없어 걱정이다”며 “우리나라는 공장이 발전돼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잘 없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꼭 가업이 아니더라도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모습은 참 대조적이고 아쉽다”고 했다.
◇3대째 명맥을 잇는 이의 등장?
지난해 반가운 손님이 유 씨를 찾아왔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민규 군이다. 그는 유 씨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집인 울산을 떠나 경주로 유학을 왔다.
유씨는 “민규 군 부모님이 전화로 ‘우리 애를 받아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수차례 부탁을 받았다”면서 “처음에는 이 일이 힘이 들어 민규가 금방 포기하고 갈 줄 알았는데, 어느덧 6개월째 일을 배우고 있다. 대를 잇겠다는 이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온 민규가 반갑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민규 군도 배움의 의지를 활활 불태웠고 그렇게 대장장이 유 씨의 후계 수업도 시작됐다.
유씨는 “우리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장간 일을 배워보려는 젊은이를 후계자로 두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라면서 “정부에서도 사라져 가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 등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