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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던 날

등록일 2024-10-28 18:45 게재일 2024-10-2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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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지를 상징하는 금당과 좌우의 동탑과 서탑.

나라(奈良)현 천리시에 위치한 천리대학에서는 10월 5일부터 6일에 걸쳐 이틀간, 조선학회가 열렸습니다. 조선학회는 무려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학회인데요. 저는 고도(古都)인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학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나라로 향했습니다. 아침도 굶고 7시에 시나가와역에서 교토행 신칸센을 탔습니다. 10시 30분쯤 나라에 도착한 제가 처음 향한 곳은 스케일이 큰 궁터와 오래된 사원으로 유명한 나라의 니시노쿄 지역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향한 곳은 나라 시대 왕궁이 있던 헤이죠(平城) 궁터였는데요. 예전의 건축물 중에서는 정전에 해당하는 대극전이나 정문에 해당하는 주작문 정도만이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궁터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1967년 유적이 발굴되어 1998년에 복원이 완료된 도인(東院)정원이었는데요. 제가 이 곳을 둘러볼 때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어 아주 호젓했습니다. 혼자 정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 곳의 관리자가 와서 자신이 한국을 여섯 번이나 방문했으며, 자신의 아내는 한국어를 배운다며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던 그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익산에서 찍은 미륵사지석탑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이 분은 도인정원이 일본식 정원의 원형이 되었으며, 한국으로 치자면 경주의 안압지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주 핵심만 정확하게 짚어낸 좋은 설명이었습니다. 일본정원의 원형이 되어서인지, 도인정원이 일본 지폐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우지시의 뵤도인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는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인 야쿠시지(藥師寺)로 이동했습니다. 야쿠시지는 국보인 동탑과 1981년에 재건된 서탑, 그리고 금당에 모셔진 약사삼존상으로 유명한데요. 처음 금당 양 옆에 있는 동탑과 서탑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목탑의 웅장함과 정교함이 정말 대단했던 것입니다. 또한 금당에 모셔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너무나 요염하여, 불경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전방후원형의 모습을 지닌 스이닌 천황릉.
전방후원형의 모습을 지닌 스이닌 천황릉.

가시지 않는 감흥을 안고 야쿠시지를 나와, 나라 관광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나라공원으로 향했는데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옆에 토쇼다이지(唐招提寺)라는 사찰이 나타났습니다. 나라와 관련한 어떤 홍보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사찰이기에 저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가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글쎄 고대사를 다룬 빛바랜 책갈피 속에서나 보았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전방후원분은 전면이 네모꼴이고 후면이 원형인 형태의 무덤으로, 주위에는 해자를 두른 거대한 고분입니다. 예기치도 않게 실물로 전방후원분을 보게 되니, 저는 저 먼 고대사의 하늘 속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전방후원분이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에서도 집중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긴밀한 관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는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여, 그 넓은 무덤 주위를 몇 번이나 둘러보았는데요. 그 고분의 주인공은 2000년 전에 일본에 살다 간 스이닌(垂仁) 천황이었습니다. 특히 이 고분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있었는데요. 해자의 한 곳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 스이닌 천황의 신하였던 다마치마모리의 무덤이라는 것이 그 전설의 내용입니다. 스이닌 천황은 ‘불로불사의 향기로운 과일(非時香果)’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다미치마모리에게 내렸고, 다미치마모리는 죽을 고생을 한 끝에 그 향과를 구해옵니다. 그러나 스이닌은 이미 죽은 후였고, 다미치마모리는 향과의 절반은 황후에게 바치고 절반은 고분에 바친 후에 자살하고 맙니다. 이후 사람들은 ‘불로불사의 향기로운 과일(非時香果)’을 귤로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고분 주위에는 감귤 나무가 곳곳에 심겨져 있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경재 숭실대 교수

여전히 풀지 못한 고대사의 비밀을 잔뜩 가슴에 품은 채, 나라공원에 가기 위해 버스에 급하게 올랐습니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요? 버스에 오른 지 10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거꾸로 버스에 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4시가 가까워진 시간, 할 수 없이 나라공원으로의 이동은 포기하고, 그냥 지나쳤던 토쇼다이지에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 본 토쇼다이지는 결코 그냥 지나칠 절이 아니었습니다. 당나라의 고승 감진을 어렵게 초빙하여 세운 이 절은, 한 고승의 법력만으로 유지되는 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속적인 느낌이 덜했습니다. 특히 불교 계율을 가르치던 도장답게 강당이나, 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경전 등을 보관한 학교 창고 등이 더욱 경건한 느낌을 주었는데요. 푸른 주단을 펼쳐 놓은 듯한 이끼 정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토록 멋진 절이 왜 다른 절만큼 홍보가 안 되는 것인지, 혹시 절 이름에도 당(唐)이 들어가고, 감진이라는 중국 승려와 관련되어서 그런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한반도 남서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과 당나라로부터 온 고승이 세워 수천 년을 이어온 고찰을 떠올리며, 동아시아의 고대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공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본 나라 여행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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