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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조금 더 익기 전에 산책 가요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4-10-01 18:35 게재일 2024-10-0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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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콰이어 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아이.

하늘로 길게 치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늘어선 길. 계절이 좋을 땐 꽉 막힌 길이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겨우 맘을 내었을 땐 더운 여름이었다. 그러나 비지땀을 흘리며 숲길을 걷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날이 식으면 가봐야지 하며 가을만 기다렸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더뎠고 세찬 비를 앞세우고서야 드디어 찾아왔다.

경주 토박이인 필자에겐 경북천년숲정원은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더 익숙하다. 아마 다른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구원으로 쓰이던 정원은 2023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경상북도 지방정원 1호이자 국가정원으로는 5번째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다. 3월에서 10월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동절기인 11월에서 2월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운영 종료 시간 최소 30분 전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함께 동행한 아이와 입구에 서서 안내표지판을 먼저 읽어보았다. 쉬엄쉬엄 코스 40분, 정원 꿰뚫기 3시간. 친절하게 코스 안내가 되어있다. 유심히 읽어보던 아이는 그 둘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다녔다. 숲을 즐기기에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아직 설익은 낙엽과 지난밤 내린 비로 길이 제법 미끄럽다. 핫스팟으로 유명한 곳은 인생사진을 남기기 위한 방문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산책하는 중간 중간 비로 인해 미끄러워 위험하니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주의 방송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정원엔 많은 갈림길이 있었고 아이는 매번 고민에 빠졌다. 종보존원을 지나 수변정원에 이르자 커다란 수양버드나무가 보였다. 어릴 땐 꽤 흔했던 나무였는데 내 삶의 터전이 바뀌어 보이지 않는 건지 수양버드나무 자생지가 줄어든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덩치 큰 자태를 보자니 반가웠다.


반바퀴를 돌 무렵 무궁화가 하얗게 피어있다. 더도 덜도 말고 교실마다 걸려있던 액자 속 그 모습인데 흰 꽃잎이 빛이라도 품은 듯 유독 환해 보인다. 무궁화 꽃 뒤로 단풍나무엔 조금 이른 단풍 몇 개가 찾아들었다. 몇 안 되는 단풍잎이 이렇게 반가울 일이었나 싶다.

조금 더 걷자 표지판에 징검다리가 적혀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꽤 걸어가도 징검다리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입구에 거의 다다를 쯤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 숲. 그곳을 그리 불렀다. 맞은편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건너기 시작했다. 가운데쯤 이르자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으로 대칭된 나무들이 물 위에 비쳐보였다. 수초가 조금 적었더라면 더 맑은 거울을 볼 수 있었겠단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무 사이 자리 잡은 구름까지 더해져 충분히 멋진 광경이었다.

가볍게 걸었음에도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기온이 내려갔다고는 하나 너무 이른 긴 옷에 더위가 느껴졌다. 가을이 조금 더 익은 날 다시 찾기를 기약하며 산책을 마쳤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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