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이던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경주 현곡을 찾았다. 신라 화랑이 먹었다는 풍월주 50찬을 엿보러 가는 여행이다. 경주시는 지난 2022 로컬여행상품 공모전 시상식을 열었고, 라선재 대표가 제안한 풍월주의 50찬을 대상작으로 선정·시상했다.
신라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까? 삼국유사에는 신라 30대 문무왕의 동생 차득공이 재상이 되어 안길이라는 친구가 찾아왔을 때 50가지의 찬을 차려 대접하였다고 내려오고 있다. 이 구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라선재의 ‘풍월주의 50찬’은 신라 음식 만들기 체험과 시식에 이어 신라시대 화랑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30분 타임의 연극을 관람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 사다함과 궁중음식 요리사 미소와의 사랑 이야기다.
미소는 전쟁터로 떠난 사다함을 애타게 기다리며 기록 속에 남아 있던 신라 음식 50가지를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사다함이 없는 틈을 타 미소의 처소를 찾은 진흥왕은 미소에게 사랑을 구하고, 그 유혹을 뿌리치다 미소는 칼에 맞아 쓰러진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다함은 쓰러진 미소에게서 평소 본인과 요리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진심과 사랑을 담아 마지막 50번째 음식인 상화병을 만들며 풍월주의 50찬을 완성한다는 스토리다.
풍월주의 50찬은 △1부 공연 풍월주 사다함과 궁중음식 요리사 미소와 사랑 이야기 △2부 생명의 꽃, 상화병 만들기 체험 △3부 식사로 구성했다. 식사는 돔배기 조림, 맥적, 대구껍질 요리 등 신라 음식 다이닝 순서로 운영된다.
풍월주의 50찬은 화랑과 신라 음식을 스토리텔링한 국내 최초 신라 음식 다이닝이다. 신라시대는 빨간 음식이 없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이라 신라시대 음식은 굉장히 순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소금은 있었다. 굉장히 비싸서 함부로 쓸 수가 없어서 우금이라고 소‘우’자를 써서 그만큼 비싸단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음식이 짜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추라기구이, 황자계구이, 꿩만두, 흰오리찜, 숭어회 등 50가지 요리를 보니 화랑의 식탁이 푸짐해 보였다. 우리는 마지막 50번째 찬인 상화병 만들기 체험을 했다. 준비된 반죽과 기름, 계란, 팥. 반죽을 저울에 올려 50g씩 소분 팥소를 넣고 오므려 둥글게 완성한 후 꽃 모양으로 만들어 달걀을 입혀 오븐에 구우면 완성이다. 물론 신라시대에는 가마솥에 넣어 쪘겠지만, 지금은 식감과 보관을 위해 오븐에 바싹 구웠다.
발효의 나라 신라, 신라인들은 술, 장, 해, 침채, 발효식품, 시, 포, 차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는데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예에 옹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서 말과 수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고 기록했다. 이 시대에는 벼농사의 정착이 어느 정도 음식문화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국가의 형성과 함께 계층화된 신분제도가 식생활 자체를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분리되는 계층화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삼국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식생활의 계층적 형태를 완성해 갔다. 이때는 또 농경의 발달과 쌀의 생산 및 외국과의 교류가 성행됨에 따라 한국 음식의 체제가 정착된 시대였다. 이렇게 정착된 음식문화는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글에 “헛되게 밥만 먹으니 국에 맛을 조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 문헌에서 국에 관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인듯하다. 신라인의 만찬은 주말에 체험할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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