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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길목, 기청산식물원의 ‘상사화 음악회’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09-19 19:15 게재일 2024-09-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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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숙 ‘어링불’ 단장 14일 음악회 열어<br/>시낭송·보컬·색소폰 등 다양한 공연
상사화 음악회 출연진들의 커튼콜 모습.

황금들녘을 앞에 두고도 여름이 고집을 부린다. 추석명절을 앞둔 지난 14일도 오전 내내 뙤약볕의 찜통더위라 오후 3시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회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래도 나섰다. 포항시 청하면 기청산식물원으로 가는 길, 따가운 볕이 사라지나 싶더니 하늘이 요술을 부린 듯 구름이 짙어지며 거짓말처럼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자연을 벗 삼은 시와 노래 소리 울려 퍼지는 대왕나무(King Tree) 아래서 내빈소개가 전혀 없는 소박하면서도 알찬 음악회는 그렇게 선물처럼 다가와 준 소소한 가을바람과 함께했다. 상사화는 땅에서 쏘아올린 화살촉 마냥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외려 더 예쁘다. 기청산식물원의 상사화 음악회는 정혜숙(필명 정혜) 공감놀이터 어링불 단장의 기획으로 시작되었으며 올해로 4년째다.

많은 이에게 생소하게 들릴 ‘어링불’은 포항의 옛 이름으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뜻한다. 옛 사람들은 지금의 포항제철소 일대를 어룡사, 어릿불 또는 어링불이라고 불렀다. 옛 어룡사의 모습은 20여리나 되는 모래벌판으로 풀 한포기 없는 황무지였다.

조선의 유명한 지리학자 이성지가 이 지역을 둘러보고는 범상한 곳이 아니니 언젠가는 이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될 것이라며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 명이 살 곳이니라. 서쪽 문명이 동방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라고 예언했다 한다. 훗날 이 곳에 대나무처럼 굴뚝이 세워지며 포스코가 들어섰다.

정혜숙 어링불 단장은 힐링이 필요할 때마다 기청산식물원을 찾았고 20여 년을 다니며 식물원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인해 식물원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2020년 6월 화재로 수십 년 간 연구해 온 중요 자료의 반이 소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겹쳤다. 이런 힘든 시기에 식물원에 도움이 되기 위해,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7만 송이 상사화의 아름다움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고자 지역 예술가들의 야외공연을 기획하여 경북문화재단 지역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상사화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경상북도 관광진흥기금 보조사업 ‘자연이 주는 선물-기청산식물원’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시낭송, 소프라노, 테너, 보컬, 색소폰, 건반, 첼로 등 다양한 예술인들의 공연은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고, 박수갈채에 가을바람도 신이 난 듯 소소히 불어줘 즐거움을 더했다. 더불어 포항시인 김만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통해 그의 시상을 듣는 호사도 누렸다.

60여 년 동안 육아일기를 쓰듯 애정을 쏟으며 식물원을 관리해 온 이삼우 기청산 식물원 원장은 자연을 아끼고 우리 것을 사랑하는 것이 후손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시며 아직 피지 않은 중국의 붉은 상사화보다 조금은 덜 붉고 덜 화려한 그래서 외려 더 청아하고 고운 한국의 백양상사화가 마침 음악회 일정에 맞추어 곱게 피어 무대 위에 정성스레 두었노라 하셨다.

포항의 지역문화를 아끼는 어링불의 예술인들은 가을이 깊어지는 시월에 택전 ‘언약의 숲’에서 스토리텔링이 있는 노거수 회화나무 아래서 또 다른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하게 열리는 우리지역의 예술문화를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즐기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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