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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5점 작품엔 고 조희수 화백 생전 예술혼 생생히 펼쳐져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4-08-29 19:02 게재일 2024-08-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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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수 작고 1주년 기념전’을 다녀와서<br/>황술조 등과 함께 영남 구상미술 중심<br/>
조희수 화백의 그림.

조희수 선생을 실제로 만난 건 시내 한 일식당에서였다. 그날 함께 한 식사자리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아흔이 넘은 작가는 이미 원로 작가가 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약속 장소에 나타나셨다.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밥 한끼 사주려 한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풍문에 들려온 날카로움은 조금도 없이 식사 내내 웃기만 하셨다. 즐겨 드신다는 맥주도 한잔 하셨다. 가끔 근처를 지나거나 식당에 가게 되면 그날이 떠오른다. 다른 이들과도 종종 함께 했던 곳인데 어느 순간 그곳은 대선배의 단골식당으로 기억에 박혀버렸다.

어느덧 작고 1주년이 되었다. ‘빛으로 만드는 풍정- 나의 살던 고향’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산증인 조희수 화백의 작고 1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전시다. 경주문화재단 주최, 아트앤지미술경영연소가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전시로 지역 예술인 상생 프로젝트 ‘쌍쌍경주’에서 출발했다.

8월 6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9월 22일까지 관람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1927년 출생한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경주 출신 화가인 황술조, 손일봉, 김준식, 박봉수의 뒤를 이어 20세기 한국화단의 중심에서 영남 구상의 맥을 이어왔다. 또한 남한 최초의 예술전문교육기관인 ‘경주예술학교’의 1회 졸업생으로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그의 인생이 수많은 캔버스 위에 펼쳐져 있다. 총 125점의 작품들에선 그가 다녔던 장소, 보았던 풍경들이 풍부한 붓 터치로 남아있다.

현장 작업을 즐겨 했던 덕에 화가의 그림 앞에 서면 풍경은 더 이상 2차원 캔버스 안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1979년 작 설경에선 눈발이 내리치는 찬기가 피부로 느껴지며 1971년 작 양지에선 햇볕의 온기로 가득 찬 마당 위에 선 채 단발머리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화가는 현장감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장 작업에 능한 화가답게 포착된 빛들은 조금의 들뜸 없이 작품 안에 온전히 녹아내려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도 그는 경주를 잊지 않고 자주 찾았다. 경주의 학생미술대회, 신라미술대전 등에 당대 내놓으라 하는 작가들을 심사 위원으로 모시고 내려왔다. 그 중엔 화가 박수근도 포함되어 있다 회고했다. 또한 사생을 위해 경주를 찾는 일이 잦았는데 지역 후배, 제자들에게 중앙 화단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역할 등 지역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밟았을 논두렁, 눈 쌓인 흙길을 뒤따르며 온기 혹은 차가움, 때론 간이역에서 마주한 타인의 삶, 평화롭게 내려앉은 오후 햇살을 온전히 느끼고 나니 생전에 남긴 수업 노트를 마주했다.

꼼꼼하다 못해 치밀할 정도로 잘 정돈된 정갈한 노트들에서 그의 성품이 느껴졌다. 그리고 당시 예술학교의 수업이 얼마나 훌륭하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끝으로 노트에서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옮겨본다.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은 신비롭게도 사람의 마음을 맑게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만물에 대해서 사랑을 깊게 만든다. ‘미’라는 것은 신비로운 것이다. 미를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깊이에 비례한다. (중략) 화가는 온갖 재료를 통해서 신을 보는 것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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