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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시는 내비게이션엔 안 나와요

등록일 2024-07-24 20:06 게재일 2024-07-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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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우천시엔 체육관에서 모입니다’. 유치원생 아들의 가정통신문을 받은 엄마가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천시가 어디죠? 내비게이션에는 안 나오네요.” 雨天時(시)의 시(時)를 시(市·도시)라고 이해한 것이다.

“이번 박물관 견학 때 중식을 준다던데 우리 아이는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니 담백한 한식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이는 점심식사를 의미하는 ‘中食’을 ‘중국음식’으로 오해한 결과인 듯하다.

드물지 않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단다. “선생님,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이에요?” 사흘의 ‘사’를 넷을 의미하는 사(四)라고 오해한 것일 터.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실제 사례들이다.

아주 조금 어려운 한자나 자주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 앞에서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아이들이 많고, 어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을 읽으며 지식과 상식을 쌓고, 올바른 어법을 가진 어른들에게 언어 습관을 배우는 아동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한국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10권 아래로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이다. 책을 통한 학습으로 체화되던 문해력과 어휘력. 그게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은어, 비어, 속어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줄임말과 욕설 따위다. 한 나라 언어의 품격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된다.

본관(本貫)을 물으면 “네?”라고 반문하고, ‘시나브로’가 “프랑스어인가요?”라고 묻는다. 이쯤 되면 실소를 넘어 할 말을 잃게 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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