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점”인 1913년으로 되돌아가 모더니즘의 찬란한 태동을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면, 이번 신작에선 제1차세계대전~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1929~1939년까지의 10년의 기간을 다룬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사랑’이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남몰래 괴로워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가 동성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이 알코올에 빠지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미쳐버린 젤다는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배우, 예술가, 정치인 등 수많은 명사들의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얘기는 잿빛 과거에서 생생한 현재로 데려다주는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제공한다.
1920~30년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토 무질의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는 참으로 적확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랑, 상대의 재능 때문에 빠져든 사랑, 식어가는 사랑, 너무 뜨거운 사랑, 은은한 사랑, 미칠 것 같은 사랑, 심연보다 깊은 자녀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이야기는 깊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