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도착하는 사람과 떠나려는 이들로 늘 붐비는 기차역에 20분 미리 가 주차하고 기다렸다. 다행히 연착 없이 정각에 도착한 손님들을 태우고 감포 송대말등대로 향했다. 우리나라에 한옥 기와를 얹은 등대가 또 있을까 싶어 시간이 다소 빡빡해도 보여드리기로 했다.
등대 주변 동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들, 그 앞을 거니는 노부부에게 등대로 가는 길을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알려주셨다. 감포항의 역사를 미디어아트로 보여주는 기념관에서 사진도 찍으며 웃음이 넘쳤다. 감포에서 구룡포로 구불거리며 오는 바닷길에 또 돌고래 소리 같은 감탄사에 다 같이 또 웃었다. 그러다 어느 풀빌라에 메어 둔 긴 그네에 올라 푸른 바다 배경으로 인스타에 어울리는 인생샷도 찍었다.
저녁은 구룡포 전복죽과 해삼무침이었다. 은근한 전복죽은 구불거린 해안선의 울렁거림을 가라앉히는 맛이었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김을 방석 삼아 데코레이션한 해삼무침엔 홍삼이 더 많아 주인장의 인심을 느꼈다. 우연히 찾아간 가게 주인이 오래전 학부모라 또 깜짝 놀라며 포항이 넓고도 좁구나 싶었다. 호로록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호미곶 상생의 손을 거쳐 십만 평 펼쳐진 메밀밭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에게 머리에 챙 넓은 모자를, 목에는 샤랄라 진분홍 스카프를, 손엔 해바라기와 수국을, 진홍색의 우산까지 들려서 메밀밭 사이를 거닐었다. 호미곶의 파란 하늘에 새 날개깃을 닮은 구름이 뒷배경으로 화가의 솜씨로 그려놓은 듯해 완벽한 풍경이었다. 바람도 솔솔 불어 스카프를 날렸다. 이런 소품까지 준비하다니 놀라워하면서 또 소품을 마음껏 활용해주었다.
하지 무렵이라 해가 길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직도 해는 지지 않았다. 동해에서 바다의 일몰을 보여주겠다고 하니 그게 가능하냐며 따라나섰다. 구만리를 지나 연오랑세오녀 기념관까지 바닷가에서는 날씨만 좋다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 호랑이 꼬리 모양의 호미곶 안에 바다가 들어와 영일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똑 떨어지기 전 발산리에 도착하려고 우린 또 달렸다.
발산리에는 캠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 일행은 동네 맨 끝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사람들이 잘 몰라 조용할 거라고 갔더니 낚시꾼 몇이 먼저 와 있었다. 얼른 마지막 남은 해의 그림자를 찍었다. 구름과 햇살의 콜라보, 와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옆에 낚시꾼들이 있건 말건 온갖 폼잡으며 꺄르르거렸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피크닉 바구니를 꺼냈다. 저기 해파랑길 15코스에 앉아 차를 마시기로 했다. 자리를 펴려니 물고기를 잡던 낚시꾼이 모기 많을 텐데 하며 걱정해 주었다. 모기도 우리의 만찬을 막을 수 없었다. 맛집에서 맞춰온 바스크치즈케익, 얼음 가득 넣어 내려온 커피는 받침까지 있는 우아한 꽃무늬 잔에 따랐다. 체리, 블루베리, 딱 이맘때만 나오는 오디까지 펼쳐놓고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며 케익을 잘랐다.
노을 지던 하늘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분위기에 취해 찰팍찰팍 발산리 파도 소리에 맞춰 정지용의 시를 읊는 지인, 메밀밭에서 잊어버리고 못 날린 비눗방울을 어슴푸레한 하늘로 날려 보내는 친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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