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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필 선구자, 한흑구의 문학적 일대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06-17 18:25 게재일 2024-06-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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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출신 이대환 작가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br/>  한흑구 작가 작품 통찰력 있게 읽어 내 93곡 아리아로 엮어<br/>“평양서 포항, 남녘서 모란봉으로 가 선생 추억하는 날 오길”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표지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표지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로서 20세기 한반도와 대공황기 미주대륙에 새겨진 ‘한흑구의 문학과 삶’을, 그의 문학적 일대기를 93편의 이야기들로 엮어낸 책이 나왔다. 포항 출신의 중진 이대환(66) 작가가 최근 펴낸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다. ‘Han’s Aria 한흑구 아리아’라는 부제가 붙었다. 매 편에 인용한 한흑구의 작품과 그 상황을 통찰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마치 해설을 곁들인 아리아 93곡을 감상하듯이 읽을 수 있다.

1950년 8월 15일, 광복 5주년에 41세 한흑구는 아내와 같이 어린 자녀 넷을 데리고 포항에서 출발해 꼬박 한 주일을 걸어 부산의 동래 다리 밑에 닿았다. 곧바로 수영비행장에 주둔한 미군 지휘부의 통역관이 되어 공초 오상순, 조지훈, 청마 유치환 등 종군 문인들의 저녁 술자리를 책임지는 임무에 충실히 나선다. 그해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문인 대표들도 평양으로 날아가게 되자 조지훈은 평양 토박이 한흑구에게 동행을 강권한다. 그러나 한흑구는 이렇게 사양했다. “나는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 책 제목으로 삼은 이 장면이 첫 번째 아리아 <애인보다 가까운 조지훈과 함께/다시 모란봉에 올라보고 싶지만>이다.

두 번째 아리아 <아버지는 창끝에 찔려 넘어졌고/나와 동무는 도망하여 나왔노라>는 한흑구가 열 살 때(1919년) 경험한 3·1운동을 24세의 미국 유학생이 돼 1933년 3월 9일 ‘신한민보’에 발표한 시 ‘3월 1일’을 인용하고 있다. 세 번째 아리아는 ‘함박눈 내리는 날 지게꾼이 오고/어머니는 소리 없이 울었네’로, 한흑구가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에 아버지(한승곤)가 중국(상하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떠나는 장면이다. 이후로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1979년 11월 그의 임종과 장례를 담은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까지가 시계열에 어긋남 없이 그의 작품을 현장의 증언처럼 인용하면서 정연하게 이어진다.

서른아홉 번째 아리아 <식민지 조국에 돌아와/문학의 길로 정진하겠다는 한흑구의 자화상>까지는 주로 그의 시를 인용하고, 마흔 번째 아리아 <‘헐어지는 집’에 돌아와 휘트먼을 호출하고/16만 평양시민의 종합지 ‘대평양’을 창간하다>부터 마지막(아흔세 번째)까지는 주로 그의 산문을 인용한다. 쉰아홉 번째 아리아 <문학의 장르로서 수필의 독자적 가치와 양식을/한국문학사에 개척하고 정립하다>에서는 영미 에세이의 역사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통찰한 지식을 바탕으로 단단한 ‘수필문학론’을 피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수필문학의 선구자로서 한흑구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방된 평양이 ‘붉은 도시’로 돌변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탈출해 서울 문단에 합류하고 미군정청 통역관을 지냈던 한흑구가 1948년 늦가을에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낯선 땅 포항에 출현하는 모습은 예순한 번째 아리아 <포항시 남빈동의 낡은 집을 둥지로 삼는/검은 갈매기>에 담겨 있다. 포항에 정착한 그는 월트 휘트먼, 칼 샌드버그, 랭스튼 휴즈 등 미국 대표 시인들의 시를 번역해 번역시집 ‘현대미국시선’을 펴내고, 세계적 음악가로 ‘애국가’와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한 안익태를 가형처럼 도와주며 함께 지냈던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유학 시절을 A와 K라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젊은 예술가’도 발표하지만, 1955년 4월 18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적 수필의 명작 ‘보리’가 보여주듯이 문학적 정혼을 수필 창작에 기울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현대문학 시문학 수필문학 등 다양한 여러 매체에 많은 수필을 발표했다.

마흔 살을 앞두고 솔가해 포항에 정착한 한흑구는 ‘향수’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전후 폐허의 포항을 재건할 때는 미군의 도움을 불러오는 일을 조용히 해내고, 다시 일어서는 포항의 기상을 전국에 알리는 글을 쓰는가 하면, 포항수산대학 교수로서 후학을 길러내며 이명석, 김대정, 박영달, 최성소, 김녹촌, 손춘익 등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흐름회’를 조직해 문학운동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70세에 다가서며 생의 종점을 예감하는 한흑구는 가슴 깊이 봉인해둔 향수 주머니의 실밥이 터져 버린다.

이대환 작가
이대환 작가

그래서 글로 만든 ‘평양 안내지도’라 불러도 손색없을 ‘모란봉의 봄’ 같은 수필을 쓴다. 아흔 번째 아리아 <꽁꽁 봉인해둔 침묵의 향수(鄕愁)에/속절없이 그만 실밥이 터지고>다. 1979년 11월 지상의 마지막 음식으로 냉면을 맛보고 나서 자택에서 숨을 거둔 그는 영일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항시 죽천리 언덕에 묻혔다.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다.

이대환 작가는 “포항 육거리에서 서울까지 363킬로미터고 백두산까지래야 두 배도 못 되는 672킬로미터인데, 언젠가 평양 사람들이 포항에 와서 선생을 기억해주고 남녘 사람들이 모란봉에 올라가 선생을 추억해 주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며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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