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공론정치를 지향했다. 1565년 백인소를 시작으로 관료를 넘어 재야 유생들까지 상소 운동이 이어졌다. 만인소 운동도 1792년 이후 1823년 서얼 만인소, 1881년 척사 만인소 등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시민운동’으로 불려지는 상소(上疏)와 관련된 기록유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24년 정기기획전으로 ‘세상을 살리는 곧은 목소리, 상소’라는 제목의 상소 특별전을 28일부터 유교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열고 있다.
국내 국학자료 최다 소장 기관으로 현재 60만 점이 넘는 자료를 기탁받아 보존 관리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상소자료만을 선별해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인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萬人疏)’는 1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연명해 올린 상소다. 해당 유산은 지난 1855년 영남유림이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줄 것을 탄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총 서명 인원은 1만94명이며 길이만 해도 약100m, 무게는 16.6㎏에 달한다.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가 없던 조선시대에 유학의 권위를 빌려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촉구했던 선조들의 사회참여적인 비판 의식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오는 8월 25일까지 하는 전시회에는 최익현 ‘지부상소(死罪臣崔益鉉疏)’등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상소문과 ‘성학십도 병풍(聖學十圖 屛風)’,‘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등 상소문과 관련한 그림과 기록 문화유산 34점을 소개한다.
조선 초기 상소는 국왕에게 국정에 대한 의견을 전하는 수단으로서 관료들이 작성하는 것이었다.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15세기에는 성균관의 유생들이 예비관료의 자격으로 국가정책에 대해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고, 16세기가 되자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재야의 지식인들에게도 상소 제도가 개방됐다.
하지만 관료가 아닌 자의 단독 상소는 국정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담긴 사사로운 요구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공론을 모아 상소를 올리는 ‘유소’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재야 지식인들이 공론을 형성하고 그 의견을 담아낸 ‘유소’는 동아시아권에서도 거의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여론 전달의 형태다.
이번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상소’에서는 상소의 형식을 볼 수 있는 자료와 사직상소, 유소, 시무상소, 응지상소 등 상소의 다양한 종류를 소개했으며 제2부 ‘조선을 움직인 상소들’에서는 조선시대 국정의 방향을 틀었던 각종 상소문들을 전시한다.
특히 제3부 ‘만인소’에서는 길이 9650㎝에 달하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를 만나볼 수 있다. 1만94명이 서명한 이 만인소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김형수 유교문화박물관장은 “이번 정기기획전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사회참여적인 비판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관직에 진출하면 국왕과 함께 나라의 운영을 책임지는 존재가 돼야 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나 재야에 있더라도 항상 국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적하는 비판적 지식인이 돼야 했다”며 “상소문을 통해 그들이 현실을 성찰하며 발견했던 문제의식과 국가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책임의식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