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명절 용돈으로 영화 관람 큰 재미<br/>1980~90년대 경주엔 영화관 세곳 성업<br/>봄엔 추억의 극장 나들이 한번 나서보길<br/>
텔레비전으로 개봉이 지난 영화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더 큰 즐거움은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극장에 가는 것이었다. 어린이 대상 영화 중에선 영화 포스터가 그려진 책받침을 나눠주는 행사도 있어서 다음날 학교에 자랑삼아 가져가기도 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부터 어린이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던 히어로물 등 대목을 맞은 극장가는 늘 붐볐다. 영화사들도 앞다퉈 개봉 전쟁을 치렀다.
1980~90년대 경주엔 세 개의 영화관이 있었다. 규모가 비슷비슷했던 대왕극장과 아카데미극장, 그리고 앞선 두 영화관에 비해 작은 규모의 명보극장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 풍경처럼 극장들도 운명이 바뀌었다. 대왕극장은 대왕 시네마로 운영되다 현재 메가박스를 위탁 운영 중이다.
노동동 원효로 110번지 2층에 위치한 건물 위쪽엔 대왕시네마 로고가 붙어있다. 2020년에 잠시 영업을 종료했다 2022년 12월 10일에 재개점했다. 1관 183석, 2관은 50석으로 컴포트관이다. 그리고 3관은 126석으로 총 3개관으로 운영 중이다. 경주 중심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보니 아이와 종종 들르는 곳이다. 아이는 품에 가득 안기는 팝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듯 하지만 이른 시간에 방문하면 조용히 영화 감상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세기말이라 세상이 꽤나 사색적이었던 시기에 그 앞은 많은 이들에게 약속장소로 이용되었다. 2000년 초중반까지 극장 1층에 자리하던 피자집과 오락실은 또 하나의 단골 장소였다. 영화 시간이 조금 남거나 하면 시내를 한두 바퀴 돌다 왔는데 같은 얼굴 두 번쯤 마주치고 나면 영화 시작 시간이 다 되었다. 음악 소리로 떠들썩하던 오락실 자리는 점포 임대 현수막이 꽤 오래 붙어있다.
대왕극장과 더불어 인기였던 아카데미극장 자리엔 프리머스 경주점을 거쳐 현재 롯데시네마가 운영되고 있다. 노동동 계림로 83에 위치해 있으며 총 2개관으로 1관 136석, 2관은 143석이다. 아파트 단지가 많이 위치한 황성동에도 롯데시네마가 있다 보니 예매시 주의를 요한다.
가장 작은 규모였던 명보극장은 전시장으로 잠시 운영되다 현재 건물마저 사라져버렸다. 좁은 계단을 올라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바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영화상영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곳이었다. 88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인 9살 때였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그곳은 내가 방문한 생애 첫 영화관이었다.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라는 영화였는데 당시 아역으로 인기였던 이건주씨가 주인공이었다. 또래 아이들로 영화관은 꽉 차 있었고 겨우 빈자리 한 곳을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좌석과 계단의 구분이 모호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아직도 극장을 찾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꽤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두 차례 더 명보극장을 찾았었다.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지 않았을 무렵 극장은 문을 닫았고 기억으로만 떠올릴 뿐이다. 세상은 빨라지고 따라 경험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생산되고 있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선 좋지만 그만큼 ‘특별함’을 느끼는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별한 일 몇 개쯤은 따로 빼두었다 마음이 지친 날 보약으로 써도 좋지 않을까. 아직은 성급한 마음이나 겨울은 이제 떠날 차비를 하는 눈치다. 다가올 봄엔 도심 상권도 살리고 추억의 극장 나들이를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선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