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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에밀레종 소재로 한 서경연 씨 ‘에밀레, 에밀레야’ 대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10-19 18:43 게재일 2023-10-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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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에세이 공모전<br/>전국 유일 철 소재 수필작품 공모전… 올해 국내외 500여편 출품<br/>일반부문 금상 조창환 ‘금화상생’, 청소년 금상 권도훈 ‘고철’ 수상
서경연 씨

경북매일신문이 포항시와 함께 개최하는, 철을 소재로 한 창작 문학작품 공모전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제7회 수상자들이 결정됐다.

제7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심사위원회는 지난 11일 심사를 진행, 서경연(57·경남 양산시)씨가 응모한 수필 ‘에밀레, 에밀레야’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일반 부문 대상 작품 ‘에밀레, 에밀레야’는 우리 국보 에밀레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현대인은 말하기를 좋아하나 상대의 말은 잘 듣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다. 묵묵한 것, 홀로 있는 것, 마지막까지 순수하기를 바라는, 자신만의 인문학적 사유를 깊이 있게 담아 수작으로 호평 받았다.

금상은 조창환(경북 청도군)씨의 ‘금화상생’, 은상은 변재영(대구시 수성구)씨의 ‘쇠흙손’, 동상은 김순자(울산시)씨의 ‘버려진 의자’, 김희선(경기도 시흥시)씨의 ‘철 없는 딸’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안성봉(경남 합천군)·김미옥(대구시)씨가 뽑혔다.

청소년 부문 금상의 영예를 안은 권도훈(포항제철공고 1년·자동화기계과) 학생의 ‘고철’은 철의 특수성과 사연, 자신의 생각을 접목해 수필로서 깊이 있는 작품이라 호평을 받았다.

은상은 이현준(포항제철공고 1년) 학생의 ‘대문’, 동상은 류기운(용인대지중 3년) 학생의 ‘나는 여기 있습니다’, 김민성(포항제철공고 1년) 학생의 ‘자전거’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정혜원(포항대흥중 3년), 정현우(포항동지고 3년) 학생이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돼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한 전국 유일의 철(鐵·Steel)을 소재로 한 수필 작품 공모전이다.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진 공모전은 올해가 일곱 번째다.

지난 8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국내외 거주자(기성문인 포함)를 대상으로 접수한 올해 공모전에는 독일을 비롯 서울, 경남, 전남, 제주 등 국내외에서 스틸과 관련한 추억이 담긴 수필 작품 500여 편이 출품돼 △일반부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2점 △청소년부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2점 등 모두 14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회는 “‘제7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들은 철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각자의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풀어내어지며 수필의 본질적 재미를 유려히 표현하면서도 철학적 고찰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들이었다”고 평가했다.

대상 수상 소감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거예요”

기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아둔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희 조상님 8대를 통틀어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너는 누구를 탁(택)해서 태어났느냐고 아버지는 한 번씩 물어보십니다. 흐뭇함이 아니라 걱정되어서 하시는 말씀인 줄 잘 압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대답합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거예요” “그래 그래야지.”

문학하는 사람들의 곤궁함을 곁에서 많이 지켜보셨던 아버지는 한때, 당신도 문학청년이었기 때문에 자식이 글 쓰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십니다.

그래도 상을 받으면 좋아서 빙그레 웃습니다. 틀니가 다 빠진 아버지의 입속이 오늘은 환한 벚꽃 동굴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활자 중독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주문하면, 책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전화번호부를 들고 와서 뒷장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전보 치는 법, 국제 전화 거는 법 등등이 나와 있었습니다. 파푸아 뉴기니라는 생경한 이름은 왠지 따뜻하고 야자수가 많을 것 같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부조차도 지루하지 않았던 활자 중독을 저는 아직도 못 고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저에게 세상을 건너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는 노자이고 그의 책, 도덕경입니다.

노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흐르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한 인간에 대한 위로도 10분 단위로 돈을 지불 해야 하는 이 시대에, 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인간에 대한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의 전부이신 아버지, 끝까지 제가 특별한 아이인 줄로만 알고 돌아가신 행복한 엄마, 두 분께 이 소중한 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포항은 철강의 포스코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경북매일은 포항을 터전 삼아 영남을 대표하는 신문사로 성장했다.

어느새 일곱 번째가 되는 ‘스틸 에세이’ 공모전에 아주 많은 분들이 응모를 해주셨다. 일반인 부분에 이어 이번에는 청소년 부분까지 신설해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스틸 에세이’라고 하면 일차적으로는 응당 ‘철’을 소재로 한 수필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우리 주변의 쇠로 만들어진 것들, 쇠와 관련된 물건들, 공간들, 사람들이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소재적 제한이 먼저 오는 것은 포항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고유성을 살리고자 함에 있다.

일반부에서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한 글은 서경연 님의 ‘에밀레, 에밀레야’였다. 에밀레종은 성덕대왕 신종, 우리의 아름다운 전설이 담긴 물상이어서 이미 큰 뜻을 갖고 있다. 이 수필을 쓴 분은 산문적 글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고, 문장에서 의미까지 아주 잘 갖추고 있다. 조창환 님의 ‘금화상생’은 다소 예스러운 제목을 달고 있지만 생각의 깊이가 느껴진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변재영 님의 ‘쇠흙손’은 ‘흙손’이라는 도구에 담긴 사연을 중심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잘 나타난 글이었다. 그 밖에 심사위원들은 수필, 산문의 의의를 잘 살릴 수 있는 글들을 당선작들로 선정하고자 했다.

청소년들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길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글은 사람의 마음을 성장하게 한다. 이 성장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잘 알고 또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도훈 군의 ‘고철’은 수필다운 사연과 생각의 깊이가 잘 갖추어진 글이고, 이현준 군의 ‘대문’ 또한 수필의 글쓰기 특징을 잘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류기운군과 김민성 군, 그 외에 좋은 글을 내주신 학생, 청소년 분들에게도 축하와 격려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한다.

/심사위원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박필우 수필가·이하진 SF작가

 

대상 수상 작품

 

천 년을 건너온 에밀레종 위로 빛나는 파아란 가을 하늘

제7회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서경연씨 ‘에밀레, 에밀레야’

종(鍾)은 죽은 제후의 무덤 같았다. 위엄을 한껏 부려보지만, 혼자서는 어떤 소리도 복기하지 못하였다. 종은 엎어놓은 둥실한 항아리 같았다. 밤이면 항아리는 뿌루퉁한 입술로 새달을 깨물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항아리의 둥그런 테두리가 이(齒)처럼 촘촘하란 의식이었다. 종은 죽은 공주의 묘 같았다. 동그란 봉분 위 파릇한 풀빛이 그러하고, 장례식에선 금기시되는 빨간 헝겊을 묘 두덩에 떨어뜨리고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에밀레종의 존재가 신화로 변해가던 순간을. 지나가는 중에게 여인은 제 아들을 시주하겠다며 농을 건넸고, 그것은 감히 어길 수 없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단숨에 쇳물에 던져진 아이는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척추뼈를 세우며 눈부시게 일어나고 있었다. 금박을 입힌 아이는 살림 넉넉한 절의 동자승 같았다. 아이는 종의 안쪽, 당좌에 탯줄을 매달았다. 그리고 종의 가장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당좌에 탯줄을 달면서 아이는 침묵하는 법부터 익혔다. 종소리와 종소리의 맥놀이가 없다면, 그래서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이 없다면, 그것은 메아리이지 종소리가 아니다. 메아리는 멀리 갔다 되돌아오지만, 종소리는 넓게 펴지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몸이 울린다. 아이는 그네를 타듯 종의 추를 잡고 종속을 횡단한다. 미끈한 등허리와 두 다리는 바깥세상을 향한 아이의 눈부신 도약이다. 이대로 추를 잡고 마구 당긴다면 종은 흔들흔들 떨어져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금박을 입힌 아이는 햇빛에 닿자마자 몸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릴 것이다.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아이는 종의 가장자리에 앉아 아주 오래전의 바깥세상을 기억했다. 그때 아이는 아주 오래된 식물, 고사리의 맛을 알아가던 참이었다.

종의 미끈한 곡선을 타고 내려온 연꽃 문양의 당좌에 탯줄을 달고, 아이는 세상의 바람을 마셨다. 언젠가는 일어나 한 번이라도 걷고 싶었던 밖을 향하여 아이는 소리쳤다. 그러나 나오는 소리는 에밀레 뿐이었다.

“에”는 노승의 한밤중 혼잣말 소리를 닮았다.

“밀”은 경매시장 경매인 아저씨의 입술 언저리를 닮았다.

“레”는 미처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독경 소리를 닮았다.

사원의 종에는 오래된 적막이 고여 있었다.

한 발짝만 더 다가가도 종은 “쨍” 소리를 내며 깨질 것 같았다.

자신의 무게 하나 어쩌지 못해 고리를 끊어버린 종이 있었다. 자신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 휘어지다, 휘어지다가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앉은 종이 있었다. 비파를 켜고 있는 비천상은 지상의 바람에 날개옷을 펄럭인다. 아이가 셋이 되도록 비천녀는 이 지상을 떠나지 못하리라. 종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연꽃의 수술에는 꽃밥이 가득하여 천 년이 지나도록 에밀레종은 배곯지 않았다. 기도가 하늘이고 밥이 하늘이고 배고픔이 하늘이다. 철제 무기의 시대를 지나 철제 농기구의 시대에도 벼의 수확과 다산을 비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벼농사를 짓는 나라에서는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자연히 인구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동이 밥을 얻는 시대가 되었다.

원래 종은 중세 기도원에서 식사시간을 알릴 때 쳤던 일종의 알림 벨이었다. 띄엄띄엄 방들이 있다 보니 일일이 찾아가 식사하라고 말하기가 번거로워 이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종은 유리가 깨지는 듯 쇳소리가 많이 나고 여운이 짧다. 종소리는 뭔가 잔뜩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음은 가파르다.

이에 비하자면 에밀레종 소리는 에. 밀. 레. 세 음이 모두 다르다.

“에”는 낮은 단조의 저음이어서 약간의 무서움마저 인다.

“밀”은 단조로운 한 음을 울리며 순간처럼 지나간다.

“레”는 갑자기 음을 떨어뜨리며 멀어진다. 지고 있는 꽃잎처럼.

절 입구에서, 가짜 종을 팔고 있던 아주머니를 보았다. 좌판에 종을 진열해놓고 종을 사라고 거듭 말했다. 조악한 종은 중국제였다. 종의 가장자리를 감싸고 올라간 용은 미꾸라지 같았다. 종의 방울은 둔탁해서 지독한 게으름뱅이가 내는 소리 같았다. 사양하며 돌아서는데,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맨날 절만 찾아다니면 뭐 하는겨? 좋고 싫고 예쁘고 못난 분별만 하고 있는데. 이럴 땐 못난 종(鍾) 한 개 사 주는 것도 불교야. 똑같은 쇳동가린데 이건 되고 저건 안돼?”

속으로는 백 가지도 더 아닌 이유를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농사로 자급자족하는 스님들의 밭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나무의 가지를 억지로 비틀거나 생자로 유도하지 않았다. 식물에도 고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철사로 줄기를 유도해 공중까지 세워 올려도, 스님은 식물에 고통을 주어 많은 수익을 내려 하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의 착취 대상이 아니라는 걸 스님은 말하고 싶으리라.

솟대, 자물쇠, 경첩, 운판(구름판), 오래된 사찰에는 마치 숨은 듯 철이 들어 있었다. 그 유연성으로 철은 역사 속에서 살아남았을까?

철은 이제 딱딱한 직선에서 유려한 곡선으로 진화하고 있다. 철을 먹는 녹마저 녹이고, 철은 부식되지 않을 세월을 살아가며 어느새 자연의 곡선을 닮아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딱딱한 금문교에서 그것을 카피한 남해 금문교를 지나, 지금 철이 가진 양면성은 현대 미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자전거와 안경, 그리고 전위미술의 구부러진 시계처럼, 왜곡된.

나에겐 살아가는 날들이 나날이 자기 표절 같았다.

고기 타는 연기에 어정쩡한 눈물을 흘리며 고기를 뒤집는 것이 나는 새삼 불만스럽다. MZ세대라는 신입들은 고기를 굽기는커녕 회식에 참석해 주는 것만도 고맙고, 과장인 양반은 아예 고기를 굽지 않는다.

“우리는 왜 부자에게 돈을 쓰는 것은 투자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쓰는 것은 왜 비용이라고 하나?”

그들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술자리에 불러내면서도 정작 서빙을 하는 아이들은 함부로 대했다.

“어이, 가위 좀. 미련해 터진 놈아. 내가 주인이면 넌 벌써 잘렸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는 에밀레종 소리가 울린다.

“에”는 마치 저승에서 온 듯한 어두운 소리여서 덜컥 겁이 났다.

“밀”은 단조로운 한 음을 울리며 순간처럼 쉬이 지나간다.

“레”는 갑자기 툭 떨어진다. 꽃이 떨어지듯 하강의 속도는 급작스럽다.

에밀레종 소리는 1시간마다 5분씩 스피커에서 울려 나온다. 여름에 듣기에 에밀레종 소리는 조금 무겁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에밀레종 소리의 비밀은 아주 과학적이다. 종소리를 사람 목소리처럼 낼 수 있는 것도 에밀레종만이 가진 주조공법 때문이다. 종의 한쪽은 두툼하게, 다른 한쪽은 얇게 만들어 차례로 맥놀이를 하면 소리끼리 윤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회하는 것이 어디 소리뿐이랴, 바람도 천 년 전의 그 바람인 것을 저 나무도 끄덕끄덕 잘도 아는 것을.

그리하여 어느 가을날, 천 년을 건너온 에밀레종 위로 파아란 가을 하늘이 깨질 듯 빛나고 있었다.

청소년부 금상 수상 소감  권도훈(포항제철공고 1년·자동화기계과)

“진정성 어린 나의 글로 많은 이들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가끔 나태함에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목표·의지가 나를 일깨워줘

고물상의 눈을 가졌던 그 아이는 어느새 청년이라는 발판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가끔은 저 역시 나태함 속에서 꽃 피운 여린 녹들이 뿜은 잔향에 취해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목표와 의지는 다시 한번 저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이렇게 대회에서 입상하는 꿈만 같은 쾌거를 이루게 한 것만 같습니다.

혹시나 제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 깨달음을 주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살짝은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진정성 어린 저의 글로 많은 이들이 좋은 방향으로 지평선을 따라 끝없이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아직 어린 저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깊은 생각의 기회를 주신 경북매일신문사, 포항스틸에세이 주최 분들께 큰 감사를 표합니다. 또 공모전에 출품을 권장하시던 한국희, 권홍근 선생님께도 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실 나의 어머니, 고된 일과를 끝내고 퇴근 중이실 아버지, 수능시험을 준비하랴 힘든 일상을 보내는 우리 누이에게도 이 소식을 하루빨리 전하고 싶습니다.

 

청소년부 금상 수상 작품

‘고철’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선인 이도 저도 아닌 날, 이런 날마다 과거에 내가 방황했던 시기가 떠오른다. 그날의 어머니께선 어린이라 부를 수도 청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어중간한 나이인 놀고 있는 나에게 평소처럼 귀에 익는 잔소리를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미래를 위해 뭐든 준비하는데 너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 이런 얘기였던가. 분명 아직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자꾸만 진이 빠졌으며 꽃가루가 무슨 바람에 그리 날리는지 숨을 쉬기 어려웠다. 점차 언성이 높아지면서 주변은 어느새 고요해지고 가슴속을 때리는 말들만이 귓속에 박혀 내 존재의 가치를 흔들었다.

답답한 내 마음속과 시끄러운 소리의 향연은 함께 길게 선을 이루고 매듭지으며 엉키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 그리고 모든 걸 집에 두고 도망쳐 나왔다. 절대 나의 나태함과 무의미함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다. 내가 여기서 도망치는 건 꽃가루가 날리고 습함에 의해 진이 빠져서다. 나는 무엇도 지니지 않은 채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걸었다. 밝은 색감의 빛들이 담긴 팔레트와 같은 햇빛들은 조형물들을 백지 삼아 형형 각색의 색채들을 한껏 담았으며 눈을 감고 뜰 때마다 시시각각 새로운 색들로 반짝였다. 나는 그 풍경들을 감상하며 자유롭게 길을 걷다가 어느새 한 고물상을 지나가게 되었다.

누가 봐도 아름답던 그 풍경에 녹슬고 위험해 보이는 고물상의 출현은 높게 솟아올랐던 나의 기분을 살짝 내려앉게 했다. 문득 저 거칠고 강렬한 색이 거뭇거뭇 서린, 어떠한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잡동사니들을 모으는 사람들의 악취미에 의구심이 들었다.

홀린 듯이 들어간 고물상에서 주위를 빙빙 돌아보자, 본래의 상태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고철들부터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고철들까지 마치 전통시장에서 먹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그 빨갛게 변해가는 철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렇게 한참을 고물상 안을 돌아다니자 한 어른이 내 존재를 의식했는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왜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어린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왜 저 쓸모도 없는 고철 덩어리를, 아무런 가치를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모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 어른은 어린 나에게 고철에 관한 진실을, 고철과 사람이 다를 게 없다는 듯한 이야기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고철은 비록 사람들에게 쓰이다 버려진 형태가 남은 거친 잔여물이요 아주 낡고 오래된 쇠 또는 그 조각을 의미하지만, 실상 고철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존재임이 틀림없다고 하셨다. 고물상엔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사연 깊은 고철들이 한 곳에 모인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볼 수 없는 그 진가를 고물상들은 알아보고 그 비릿한 잔향의 고철을 다 함께 모은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고철들을 그들이 온 고향에 따라 분류한다. 그렇게 철은 자신의 가족을 만났으며 스테인리스는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며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들의 재회 속에서 고물상들은 서로 떨어져 외로워하지 말라고, 모두가 함께 있을 수 있게 그들을 압축시켜 한데 모아놓는다. 금속들은 서로의 오랜 만남과 함께 힘들고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내는 경쾌한 충돌음은 왠지 모를 정겨운 소리였으며 그들 고향 속 노랫소리들에 고철의 형태를 이루는 녹슨 뼈대들이 노을빛과 소리에 취해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여정의 종착점에선 고물상들과의 작별과 함께 그들만의 고행로인 전기로에 도착한다. 전기로에서 고철들은 뜨거운 찜질을 통해서 오래 묵힌 그들의 기억이 담긴 땀들을 전부 빼낼 때까지 버텨낸다.

자신의 몸이 녹아내릴지언정 버티고 버텨 그 열정들만이 가득 남긴 밝게 빛나는 붉은 정열의 산물이 된 그들을 적당한 크기로 점토 자르듯 잘라내 식히면 반제품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지만 불타는 심장이 계속 뛰는 한 고철들의 의지는 죽지 않고 다시 한 번 숨 막힐 듯이 몸을 달군다.

그 후 그들의 몸이 식어 색이 전부 바래지기 전에 아지랑이 피며 붙어 있는 적색으로 빛나는 녹과 같은 때들을 밀고 세월과 함께 씻어내고, 그 의지와 열정의 정수들을 모양 잡아준다면, 비로소 고철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런 ‘아무 쓸모없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 고철들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철들이 되었을 줄은

과거 그 어른께서 해주신 고철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가치관을 바꾸게끔 하였으며 그로 인해 나는 가끔 나는 사람들이 고철과의 닮음에 혼동 할 때가 있다. 쓰임이 다해 주위로부터 버려진 고철처럼 어떤 사람들은 쓸모없는 자신이 산화되어 가는 일종의 고철과 다름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가끔 봐왔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정말 쓸모없는 존재들인가? 물론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불필요한 존재들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나의 시각은 다르다. 나에겐 그들과 달리 고물상의 눈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소가취(無所可取)라고 낮추어 보는 그들이지만, 나의 시야엔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또 다른 그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만약 그들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 변화와 발전할 본질적인 계기가 생긴다면, 그들은 마치 고철처럼 자신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내면의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들의 몸을 달구기 시작할 것이며 그들의 의지는 모든 변화를 버텨내며 변모할 때까지 버텨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육신이 쇳물처럼 뜨겁게 녹아 흐를지라도, 그들의 의사가 담긴 꿈들이 그려진 틀에 붓는다면 새롭게 환원된 또는 그 이상의 존재들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비록 철이나 사람이나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여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녹슨 기운들이 어리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고철이 유용과 무용을 순환한 것처럼 우리 역시 모두 마음속의 열정과 의지가 뒤받쳐 준다면 사람이란 존재들은 언제든지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누구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존재들이 분명하니 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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