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이종환 경상북도수목원 관리소장
나무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 왔다. 포항시 청하면 소재지에서 폭이 좁은 곡선도로를 15분간 오르면 무음(茂蔭)의 수목원을 만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수목원인 경상북도수목원이다. 해발 65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는 3천여 종의 식물과 백여 종의 희귀식물이 서식한다. 지형을 그대로 살린 산책로 또한 산 구릉의 굴곡을 닮았다. 수목원의 계절은 도심과 다르다. 봄꽃은 늦게 피고 단풍은 일찍 든다. 우거진 나무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여름에는 평균 기온이 4도 이상 낮다. 구태의연한 계절과 조금씩 어긋난 계절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경상북도수목원의 이종환 관리소장을 만났다.
드문 고산지대 위치한 경북수목원, 45명 직원들 식물종 수집·연구·관리·운영 힘써
세계적 희귀 수종 망개나무 ‘자랑’… ‘숲에서 미래 보는 연못’ 삼미담도 꼭 관람해야
“눈 앞의 작은 묘목, 세월 흐르면 울창한 숲 돼… 더 많은 사람들 산림복지 누렸으면”
- 타 지역과 다른 경북수목원의 특징은 무엇인가.
△전국에 68곳(국립 4, 공립 36, 사립 28)의 수목원이 있지만 고산지대는 드물다. 고산에 조성하다 보니 나무는 그냥 두고 평탄한 전답이 있던 곳에 전시원을 조성했다. 도심의 수목원보다 경관이 잘 보존되고 자연과 어우러진다. 지정 면적도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넓다.
-고산지대니 수종도 다르겠다.
△참나무가 우세한 혼효림이다. 고산지대 치고는 굴참나무가 많아서 양묘협회 관계자들이 신기하다고 말하더라. 굴참나무는 표피가 두껍고 나뭇잎에 수분이 많아 화재에 강한 ‘내화 수목(耐火樹木)’이다. 참나무류와 함께 우리나라 극상수종(極相樹種·안정된 숲에서 나오는 수종)인 서어나무도 많다. 서쪽에 있는 나무라는 뜻의 ‘서목’이 변한 이름이다. 줄기 모양이 사람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
-수목원마다 대표하는 식물이 있다. 경북수목원이 자랑하는 희귀종이 있다면.
△수목원 내 망개나무 자생지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망개나무는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수종이다. 충청도와 경북 북부에만 보이는 고산수종으로 경북수목원의 깃대종(한 지역의 생태계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종)이다. 경북수목원에 많이 서식하는 희귀식물은 백리향과 노랑무늬붓꽃이다. 울릉도 식물원에 일부 있고 다수의 희귀종은 관람 구역 이외에 많다.
-관람객들의 출입 가능한 구역은 어디까지인가.
△경북수목원의 관할구역은 2926㏊로 관람구역(55㏊)과 보존구역(2871㏊)으로 나뉜다. 수목원에 방문하면 관람구역 안의 고산식물원, 울릉도·독도식물원, 희귀식물원 등 26개 분원을 둘러보게 된다. 다음으로 수목원 등산로와 거의 유사한 14.62㎞의 생태관찰로가 있다. 관람구역은 관리팀에서 매일같이 보살피고, 생태관찰로는 수시로 점검한다. 이외 보존구역은 1년에 10㏊씩 숲가꾸기 사업을 실시하는데, 숲가꾸기의 가치를 생각하면 면적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목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나.
△정규직원 7명과 공무직 6명, 산림 관리원들까지 합치면 45명 정도 된다. 주요 부서는 수목원을 관리 운영하는 운영지원팀, 식물종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보존연구팀, 생태체험 프로그램과 전시원을 관리하는 숲문화팀이다. 나를 포함해 8명은 수목원 내의 직원 숙소에서 생활하며 식물들을 보살핀다.
-수목원이 공원이나 식물원과 다른 점은.
△수목원의 본래 목적은 식물유전자원의 보전이다. 경북수목원은 해마다 300여 종의 종자를 채취해서 반은 자체 보관하고 나머지는 백두대간 수목원의 종자저장소(시드볼트)에 기탁한다. 두 군데에서 병행해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함이다. 식물원은 풀과 나무 등 식물을 가리지 않는 박물관이라면 수목원은 주로 나무 위주이다. 수목원에 피는 꽃은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맘때면 수국이 개화했는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
-수국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가.
△여름이면 수국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삼미담(森未潭) 주변과 전시온실 앞으로 가면 산수국이 피어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수국 명소는 침상원(지면보다 낮은 정원으로 계단식으로 조성)이다. 수국으로 꾸며 놓은 화계(花階)가 두 줄 있다. 바람막이를 할 수 없는 구조라서 겨울철 추위를 잘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이곳 찬바람이 워낙 매서워야 말이다. 올해는 꽃송이가 풍성하길 바라며 가지를 정리하는 등 여러모로 강구하고 있다.
-꽃을 피우는데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지 몰랐다.
△경북수목원은 고산지대라 철쭉이나 산벚처럼 산에서 자생하는 종류를 제외하곤 꽃을 잘 못 피운다. 볼거리를 원하는 관람객을 위해 작년에 장미와 맥문동을 심었다. 영하 20도 아래의 거센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일일이 바람막이를 세운 덕에 장미가 활짝 피었다. 중앙광장 소나무 아래엔 맥문동을 5만4천본 심고 겨우내 짚으로 덮어놓았는데 곧 개화할 것이다.
-계절별 수목원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람객이 많이 찾는 계절도 궁금하다.
△봄꽃은 도심보다 보름 이상 늦지만 단풍은 열흘 정도 일찍 든다. 봄은 더디고 가을은 서둘러 오는 셈이다. 관람객이 많은 계절은 가을이다. 삼미담 앞의 단풍이 절경이다. 겨울에는 눈이 있느냐는 문의가 자주 온다. 시내에 비가 오면 여긴 눈이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눈이 귀했던 지난겨울, 지형이 움푹 들어간 전시구역만 눈이 쌓여 다들 신기하다고 했다.
-경북수목원에서 반드시 보고 가야 할 하나를 꼽는다면.
△삼미담(森未潭)은 꼭 들러야하는 곳이다. ‘숲에서 미래를 보는 연못’이라는 이름부터 얼마나 멋진가. 수련과 애기부들 등이 서식하고 지금은 노랑어리연꽃을 볼 수 있다. 삼미담 옆 창포원은 꽃창포로 뒤덮인 습지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꽃창포 사이로 올챙이들이 꼬물거리는 재미난 곳이다. 해발 730m에 위치한 전망대 ‘영춘정(봄을 맞이한다는 뜻)’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거쳐가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반면 숲해설전시관을 지나쳐가는 경우가 많다. 수목원 입구에 위치한 전시관은 숲해설가들이 상주하며 설명을 해주고 안내서도 구비되어 있다. 지난 14일부터는 올해 새로 제작한 식물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식물표본실을 둘러 보고 왔는데, 제작 과정이 흥미로웠다.
△식물표본은 식물의 DNA까지 가진 가장 효율적인 학술적, 교육적 식물 자료이다. 식물 연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식물표본 채집은 ‘수목원 코디네이터’가 참여한다. 채집한 식물을 세척하고 핀센으로 일일이 펴고 압착, 건조까지 품이 드는 작업이다. 레진 기법을 활용한 표본은 산뜻함과 화사함을 더한다.
-지대가 높고 숲이 우거져 야생동물도 많겠다.
△창포원 습지는 멧돼지들의 목욕탕이다. 습지에서 뒹구는 멧돼지의 몸집이 얼마나 큰지 섬뜩할 정도였다. 삼미담에 오래 살던 팔뚝만 한 잉어를 4년 전 수달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후 오리를 키웠지만 삵이 전멸시켰다. 올해 다시 잉어를 키우는데 수달이 올까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새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으면 곤줄박이가 날아와서 물어간다. 사무동 옆으로 할미새가 자주 보인다. 노랑할미새와 딱따구리, 어치, 직박구리, 까마귀, 참새, 박새 등도 많다. 유아숲 체험장의 목조는 딱따구리가 여기저기 구멍을 내놓았다. 수목원에는 산책하며 듣기 좋은 배경음악이 흐르는데, 지저귀는 새소리가 좋다고 볼륨을 낮춰달라는 관람객이 있었을 정도다.
-면적이 넓고 탐방로, 등산로, 임도가 여러 갈래여서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2005년 개원해 시설이 노후된 편이다. 시설물의 유지와 보수에 투입되는 현장인력들이 안전하게 작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써 가꿔놓은 숲을 한순간에 잃게 되는 산불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등산객들도 인화물질은 가져오지 않도록 주의를 부탁드린다.
-30여 년 산림 공무원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당장 눈앞의 작은 묘목은 엉성해도 세월이 흐르면 울창한 숲이 된다. 산은 늘 들인 노력보다 더 크게 보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수목원을 찾도록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는 전망대로 가는 낡은 목계단을 복구하고 삼미담에 낮은 분수대를 세운다. ‘산림복지’라는 말이 있다. 산림을 활용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수목원을 단장하고 쾌적한 산림을 더 많은 관람객들이 즐기도록 만드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이종환 관리소장은
경북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김천시청 녹지과를 시작으로 임업 공무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와 산림소득개발원, 산림생태과학원, 도청 산림자원과를 거치며 산림분야 정책과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주로 산림재해를 예방과 복구, 황폐화를 막는 사방 분야에 매진했다. 2020년에는 산림환경연구원 사방기술교육센터장이 되어 우수한 경북지역 사방기술을 전파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했다. 지난해부터 경상북도수목원 관리소에서 일하면서 경북지역의 산림자원 보존과 식물자원화 연구를 이끌고, 도민에게 심신 휴양과 자연체험 교육장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