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나무, 향수 등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한다. 시(詩)의 향기란, 마음으로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시향(詩香)이라 할 수 있다. 시가 뿜어내는 향기는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시향 천리(詩香千里)라는 말이 있다. 시(詩)향이 천 리를 가는 동안 무엇을 마주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향기를 뿜어낼까. 시(詩)의 향기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가슴 한곳에 쟁여두었던 그리움을 퍼 올리기도 한다. 이것뿐인가, 한 편의 시를 읽고 눈물을 닦아내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시향(詩香)을 통해 인향(人香)이 만리(萬里)를 갈 수 있음이다.
하늘이 높아지는 9월, 포항시 남구 효곡동 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개강했다. 시문학 수업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시를 찾아 여럿이 나눠 읽고 느끼며 마음의 갈증을 해소했다. 옹달샘이 품은 시는 추억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 누구는 그 조각 따라 깊은 산골 고향마을에 닿기도 하고, 누구는 도시의 작은 골목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가 뿜어내는 향기 따라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를 담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나는 시향의 여행자가 되었다.
금요일 아침, 시(詩)문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은 들떴다. 한 줄의 시를 받아 적기도 하고 어설픈 시인이 되어 펜을 들기도 했다. 우리 곁에서 소중하지만 잊혀가는 것들을 찾아내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숱한 의미가 함유된 메타포에 우리의 추억을 갈무리했다.
시를 읽고 음악에 맞춰 낭독하는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어디선가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옷깃을 여미고 이제 우리는 시문을 닫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의 향기를 맡았지만, 이제는 홀로 시를 찾아 각자의 방법대로 시향을 맡아야 한다. 곧 문화센터 시문학 교실이 동면에 들 시간이다.
짧은 이별이 아쉬워 문집을 만들었다. 문집 이름을 공모해 시(詩)향으로 정했다. 이번 학기 중에 만났던 시중에 내가 뽑은 최고의 시를 소개하고,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는 코너를 마련해 짧은 생각을 실었다. 물론 ‘나도 시인이야.’라는 코너를 빼놓지 않았다. 시인은 아니지만 몇 분이 시를 쓰는 용기를 내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수업 중의 사진을 찍어 이모저모에 실었다.
전문성이 있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시향을 맡을 수는 있다. 우리의 손길이 닿은 페이지, 페이지마다 시문학 교실의 수강생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컴퓨터 자판의 글씨가 아닌 각자의 필체대로 써 내려간 시는 열 명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첫사랑의 아련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그가 살아가고 있을 어느 도시를 가고 싶다는 분, 수업 중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한 편의 시를 완성한 분, 노동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괜히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는 분, 그날 접한 시를 낭송으로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주시는 분, 그들의 모습이 그들만의 향기로 전해져 왔다.
추위가 물러가면 머지않아 남쪽에서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봉해 두었던 시향을 풀어 볼 것이다. 어떤 이는 시향에 마음이 더 촉촉해졌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인이 되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묶어둔 시향에서 먼지가 날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시향을 펼치고 있을 텐데.
우리 동네 시향 천리(詩香千里)가 오래도록 은은하게,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두 손을 포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