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역사적 유물이나 예술품 등 온갖 자료들을 수집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의 기능이 보고 느끼는 공간에서 체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대구 교육의 역사적 힘을 보여주고 대구 교육의 미래와 비전을 열어가는 공간이다.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 문화 예술의 격차는 디지털 격차 이상으로 사회 발전에 치명적이다. 이를 치유할 공간이 바로 박물관이다. 서로 소통하고 통섭해서 바뀌어 갈 수 있는 현장, 인생에서 제3의 장소가 박물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그는 “대구를 정확하게 알리고 대구의 교육현장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다”며 대구교육박물관이 그 역할을 맡겠다고 한다.
“대구교육박물관 개관 5년째… 지역의 교육 역사 알리고파 연 2회 기획전 개최
지역문화 위상정립 ‘미래의 문화유산·삼국유사’ 추천… 교육명품도시로 도약
대구지역을 정확하게 알리고 소통·체험 등 자랑스러운 교육현장 만들고 싶어”
-대구에 교육박물관이 들어서고 5년이 됐다. 교육박물관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그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지 물으면 이상한가?
△대구와 대구의 교육, 역사를 키워드로 밀착된 교육적 역사를 찾아내고 있다. 잊혀질 수 없는 역사,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를 재조명하는 곳이 교육박물관이다. 대구라는 지역을 바르고 정확하게 보고 또 대구를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교육도시 대구교육의 ‘숨’과 ‘결’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어 왔다.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고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왜’라는 의문은 해보지 않았다.
-대구교육박물관이 다른 지역 박물관과 다른 특징은 어떤 것이 있나.
△대구는 대구의 역사박물관이 없다. 그래서 대구교육박물관은 연 2회씩 기획전을 열고 있다. 대구의 역사를 드러내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대구는 6·25 전쟁 통에 대구로 피난 온 중학생들을 위한 피난학교를 열었던 곳이고 이런 피난학교는 세계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대구읍성은 대구시민들의 마음 속 문화재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에게 훼손당했다는 증오심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읍성이 생겨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축성의 교훈을 배우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또 ‘학창, 시절 인연’이라는 기획은 개개인이 저마다의 성장기 꿈과 기억을 흑백사진을 통해 소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2·28 민주운동, 국채보상운동 등 상설전을 통해 대구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랑거리를 발굴해 가고 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어떤 콘셉트로 만들어졌나.
△말하자면 고현학(考現學)과 디지로그(digilog)를 통해 대구 역사를 찾아내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고현학은 고대 삶의 풍속에서 시대를 대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니 현대적 고고학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을 단순히 새것과 옛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존재의 본질을 통해 현대인에게 무엇인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빗살무늬 토기를 단순히 고대 유물로만 묶어두지 않고 최신 상품 디자인으로 응용하는 식이라 할 수 있다. 또 디지로그는 21세기 디지털 기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날로그의 정서를 더해서 그 풍요로움을 더한다는 개념이다. 애매한 절충이 아니라 유연한 퓨전과 하이브리드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대구교육박물관 설립 당시 교육청의 주문은 어떤 것이었나.
△우동기 당시 대구시교육감은 대구시교육박물관이 체험학습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교육박물관을 찾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교육박물관을 찾아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초등 3학년은 생존수영을, 초등 5학년은 과학관을, 6학년은 수련원을 필수코스로 규정한 것이다. 또 중학 1학년은 자유학기제에 교육박물관 탐방을 추천하고 있다. 따라서 연 4만 명 정도의 초중학생이 대구교육박물관을 반드시 찾게 만들었다. 대구시교육청이 교육박물관의 비전을 실천할 수 있게 교육박물관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대구를 교육도시라고 한다. 학교가 많다고 교육도시인가, 시민의 교육 수준이나 교양 수준이 교육도시인가.
△대구가 교육도시라는 것은 ‘역사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자리에서 빛나는 과거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제 ‘역사도 날개가 달려있다’는 걸 알게 하고 그 비상의 명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교육명품도시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현재 교육 현장의 실태를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나.
△교육과 학습, 이것을 ‘즐거움(樂)’으로 묘파한 공맹의 가르침에만 갇혀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리는 게 아니라, 현실감 있는 교육현장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학생들이 느끼고, 느낀 만큼 행동하는 박물관으로 매순간 진화하는 중이다.
-세계의 박물관을 두루 살펴봤다. 박물관에서 찾아낸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얘기한 ‘제3의 장소’를 박물관이라고 인식하게 됐고 대구교육박물관을 그런 제3의 장소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을 돌아봤는데 인간의 지속가능성은 박물관의 미래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제3의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주공간인 집과 삶의 공간인 일터 이외에 문화 예술과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자리인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레이 올드버그가 이야기했다. 영어로 ‘The good place’라고 하는 그 공간의 역할을 박물관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영화나 연극 공연을 보고 즐기는 등의 문화 예술을 하는 공간이다.
-세계 여러 박물관 중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박물관은 어디를 꼽나.
△캐나다 오타와의 전쟁박물관과 워싱턴의 오럴뮤지엄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코어’가 그것이다. 세계 곳곳에 전쟁박물관이 있지만 오타와의 그곳은 무명용사를 기억하는 방법이 특별히 감동적이었다. 해마다 1차대전 승전기념일인 11월 11일 오전 11시면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무명용사의 방을 비쳐주도록 설계돼 있고 건물 위쪽에 거대한 조형물은 ‘잊지 않기 위하여’라는 글자를 모르스부호로 만들었다. TV나 신문의 감동적 기사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 누구라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미안해하고 용서하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스토리코어의 의도를 알고 나면 누구라도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문화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시대적 변화와 변해야 할 것, 변하지 않은 것 등을 경험에 비춰 이야기해 달라.
△지금 지역에서 누가 변화의 물줄기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무도 모르는 제4차 산업혁명을 기다리며, 문화와 예술분야에서도 막연한 융복합과정을 치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려와 겸손인데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배려는 대화를 연성화 시킨다. 내가 한 발 양보하니 나를 향한 뾰족한 창이 무디어지는 것을 체험으로 배웠다. 겸손은 상대가 경청하더라. 특히 강의에서는 모두가 주목하더라.
예산과 제도만으로 문화 예술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성장을 멈춰버린 ‘하이랜드 증후군’을 앓는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정보 이용 격차)보다도 아트 컬처 디바이드(예술 문화 격차)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한국에 들어온 지 10여 년이 됐다. 대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나.
△이민을 가기 전 TBC 라디오 PD 시절 원로대담을 마련했다. 초대한 원로들이 말로는 ‘너희들이 해라’고 했지만 대담을 통해 그들이 다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로들을 대접하면서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대구에 어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대구의 맨 파워를 키우기 위해서는 출향인사들을 대우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그 때 갖게 됐다. 대구사람들에 대한 정의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대구 출생이 아니면 아무리 오래 대구에서 기반을 다지고 생활해도 대구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가 있더라. 대구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외국인으로 대구사람이 얼마나 있나. 이젠 거버넌스를 이뤄야 한다.
-경력이 다양하더라.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방송 활동을 했다. 환경이나 수용자의 태도 등에서 한국과는 어떻게 다른가, 또는 같은가.
△방송 PD, 대형극장의 총감독, 박물관장의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모두가 박물관에 유용한 경험으로 쓰여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해외 경험은 고작 10년이었지만 다양하고 생생한 해외 체험은 지금의 곡해된 다문화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 관장은 지역 문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연 ‘삼국유사’다. 경산에서 태어나서 달성에서 득도하고 대구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으며 군위에서 열반에 든 일연선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중요하다. 정말 우리가 너무 소홀히 대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구교육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미래의 문화유산·삼국유사’를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삼국유사의 현창을 위한 가장 중심도시가 대구이기 때문이다. 전국 18개 지방자치단체가 ‘삼국유사의 콘텐츠화’에 매진하고 있다. 이젠 대구가 전면에 나설 때가 됐다.
-구미문화예술회관장, 천마아트센터 감독을 역임했다. 지역 문화와 한국의 위상, 세계적 추세 등 문화예술과 우리 현실을 평가하면.
△한류에 대해 한 3년간 고민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 현실감을 갖고 세계성을 인식하면서 지냈다. 결론은 K-문화콘텐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한 쏠림 현상으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한류’다.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도처에서 날아오르는 콘텐츠를 발굴,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외동포 맨 파워의 바른 인식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문화선진국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교육박물관이 준비하고 있는 기획 아이템은 무엇인가.
△이달 23일부터 ‘대구큰장, 서문시장 100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이면 서문시장이 개장 100년이다. 이번 기회에 서문시장이 정치적 파워를 과시하는 그들만의 현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대구의 영화이기도 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배용균 감독이 주인공 기봉을 통해 ‘사바세계’로 묘사한 곳이 서문시장이다. 또 학생들이 품고 있는 역사적 영웅이야기를 1인극으로 표현하는 ‘나의 영웅이야기’를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1930∼50년대 대구의 문화인물들을 역사현장 위주로 재구성한 사진앨범 ‘그리운 풍경, 살가운 얼굴들’도 제작중이다.
□ 김정학(金政鶴·63)
대구 출생. 영남고, 영남대 영문과, 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행정대학원 문화행정전공 수료.
BBS불교방송 PD, TBC대구방송 라디오 FM방송 편성팀장. LA미주한국일보 뉴미디어국장, 캐나다 라디오코리아 대표, LA라디오코리아 본부장,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총감독, 국악방송 부장, 구미문화예술회관 관장, 대구교육박물관설립추진단장 등을 거쳤다.
경력에서 나타나듯 그는 에너지가 넘치고 적극적이며 박물관처럼 박학하다. 캐나다에서 미국 LA로, 다시 한국에 와서 여러 곳으로 불려 다니면서 일했다. 주로 개업전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첫 테이프를 끊었고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를 만나면 누구나 시작, 출발, 그리고 창의의 DNA를 나누어 가질 듯하다.
9남매의 막내지만 5대 봉제사를 지내면서 지방을 도맡았다. “전 대구시교육감이었던 삼촌(김연철)은 영문과 출신인 내게 지방을 쓰게 하셨다. 그게 한문에 관심을 갖게 했고 한문의 매력에 빠졌다”며 “한자 교육은 꼭 필요하고 한자박물관을 건립하고 싶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