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아버지는 반평생 땅 한 평 가지지 못했다.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산비탈을 개간하여 고구마나 콩을 심어 놓으면 짐승이 제 주인인 듯 먼저 다녀갔다. 실망한 아버지는 점점 바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산골의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들이닥치면 그제야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걸음이 재발랐다. 동살이 잡히면 채마밭에서 웃자란 풀을 향해 호미를 들었다. 고추, 상추, 호박이 잘 여물 수 있게 고랑을 돋우고는 부엌으로 우물가로 잰걸음을 걸었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봉수대처럼 산골 마을의 아침을 알렸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살이는 쉽게 볕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어머니 걸음이 빨라졌다. 새마을 개발위원과 이장을 만나 머리를 맞대더니 이웃의 논과 밭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뭔가를 도모하는가 싶더니 읍내에 나가 경운기를 덜컥 샀다. 농사일에 서툴렀던 아버지는 돈이 없다는 것은 참 좋은 핑계였다. 더욱이 경운기처럼 덩치 큰 농기구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경운기가 집에 오는 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구령에 맞춰 출정식을 하고 우리를 경운기에 태웠다.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의 심장도 경운기 엔진처럼 힘이 넘쳤다. 스타트 레버를 수십 번 돌려 퉁, 퉁, 탕, 탕, 탕 경운기 엔진과 펌프질한 아버지의 심장이 밭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
동창을 벗기는 것은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였다. 비알밭을 맴돌고 있던 콩새는 아버지 연장 끄는 소리에 숨죽이고 경운기 소리에 댓 걸음 도망쳤다. 산비탈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논에서, 하천 밭에서 저녁노을을 물릴 때까지 경운기 소리가 났다.
타작할 때면 경운기에 줄을 걸어 탈곡기를 돌렸다. 경운기 소리 못지않게 탈곡기도 ‘아롱시롱’ 떠들어 댔다. 그 소리에 신이 난 우리는 마당과 뒤안을 쏘다니며 놀았다.
하루는, 평상시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막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경운기가 갑자기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방향을 돌려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급기야 아버지는 조종간까지 놓쳐버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어머니까지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도망갔다.
어머니는 평생을 같이한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다 늙어서 혼자 살려고 줄행랑치는 꼴이 볼썽사나웠다며 어머니는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겁이 나서 얼떨결에 그랬다고 아버지가 해명했지만, 경운기 사건이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지런에 어지간히 시달린 경운기였지만, 헛간 구석으로 밀려나 녹이 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면 덜컹거렸던 몸을 쉬고 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이우는 별을 헤아렸던 때가 가물가물했다. 후둑 후두두 헛간 슬레이트 지붕에 비가 내려도 아버지는 경운기를 돌보지 않았다.
아버지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헛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운기와 마루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는 그렇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경운기도 탕탕거렸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헛간에 오도카니 놓인 경운기에 아버지는 더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성기도 이울었다. 뜨거운 심장 소리를 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아버지는 더는 경운기 시동을 걸지 않았다. 마당 구석에 있던 경운기는 텅텅 힘 빠진 소리를 내며 옆집 아재네로 옮겨졌다.
경운기는 일머리를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그 자존심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기력도 쇠하여졌다. 그렇게 경운기가 없는 헛간은 오래도록 고요에 들었다.
어디선가 탕탕탕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