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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실현과 사회정의 실현에 충실한 인간이 되라

등록일 2022-09-19 19:54 게재일 2022-09-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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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세상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다움, 사람답게 사는 것,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다. 일체 권위를 배제하고 모든 이데올로기와 권력과 결별하고 비주류 이단자로 나답게 살아가는 주체적 아웃사이더,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는 자유 자치와 자연을 이상으로 삼고 나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는 무섭게 엄격하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더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주의 출세주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끝없는 욕심을 버리고 정신을 살찌우라고 충고한다. 노인들에게는 스스로 홀로 서는 연습을 권한다.

입시·수험 중심 교육을 떠나 독서 버릇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은 기본… 그것을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야

우리 사회가 과도한 물질주의·출세주의·성장주의 벗어나길 바라

-법학자 박홍규가 철학자, 인문학자 박홍규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나는 지금도 법학자다. 경북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이고 학회 활동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주차 문제로 자주 송사가 벌어지는데 그러면 나에게 자문을 구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차법이 아닌 노동법을 전공했다’고 말해준다. 내가 철학자나 인문학자라고 하기는 부끄럽다. 나는 법대 교수를 시작할 무렵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그래서 80년대부터 이반 일리치 책을 번역해 내고 91년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해 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사람들의 사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는데 아무도 번역을 안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책을 써 왔나. 작업은 주로 언제 하나. 농사일도 하고 있다. 퇴직 전후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달라졌나.

△100권은 훨씬 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헤아려보지는 않았다. (저서와 번역서 모두 150권도 넘을 듯.) 집필 작업은 주로 새벽과 오전에 한다.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1,2시면 일어나 쓰거나 읽는다. 농사일은 아침과 저녁에 한 시간 정도씩만 한다. 자급자족을 위해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농사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농약을 아예 쓰지 않으니 주변 농민들로부터 (잡초나 병충해 때문에) 싫은 소리도 가끔씩 듣는다. 퇴직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집과 농장,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맴도는 일과다.

 

-그동안 저술과 번역한 책의 원고료나 인세 수입만도 상당할 것 같다. 특별히 애정이나 의미를 두는 책은 어떤 책들인가.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으니 인세 수입은 보잘 것 없다. 게다가 인세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 제일 많이 팔린 책은 1991년에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3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나가고 있으니까. 같은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도 내가 아끼는 책이다. 물론 내가 쓴 모든 책을 사랑한다.

 

-청소년기 미술에 소질을 보였고 지금도 직접 그리는 서양 회화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또 법학을 택한 계기가 따로 있나.

△그림이 의미가 있으니까 그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만사를 잊을 수 있고, 자연이나 대상의 묘사에 집중할 수 있으며,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게 희열을 느끼게 만든다. 법학을 택한 이유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한 1970년 겨울에 대구 출신의 노동운동가 전태일 씨가 분신자살을 하면서 노동법 책을 태웠다. 그것을 보고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가가 되려고 결심하고 법학을 택했다.

 

-현실과 배치되거나 괴리가 있는 법률들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하나로 집약시킬 수 없으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상식 아닌가.

△노동법은 노동자들을 위한 법인데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헌법에서도 그런 노동법의 제정을 촉구하는데 우리나라의 노동법에는 아직 문제가 많이 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때 다수결에 따른 것이 상식이지만, 지금 우리 노동법이 그런지는 의문이다. 그밖에도 헌법에서 정한 인권과 괴리되는 법률도 많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급에서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것이 사상의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독서를 해야 사상이 풍부해지는데, 독서하지 않은 자들이 지도급이니 그 사회가 빈곤한 사상, 즉 무식에서 나오는 독선과 독주에 의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지도급이 그 모양이니 대중들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지 않아 무식하게 된다. 해결책은 모두들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독서 버릇을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입시용 수험 중심이니 평생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독서를 하지 않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SNS로 소통하는 시대다. 그것이 즉흥적이고 피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활자매체 시대 아날로그식과 비교해서 불편함이나 단점은 없나?

△나는 SNS를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가 없고 단편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사고를 하지 않고 적당하게 베끼거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다. 소위 지도자급이 쓰는 석사나 박사의 학위논문까지 그 모양인 걸 잘 알지 않나? 이래서야 학문도, 사상도, 지성도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 강조해 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돼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먹고 사는 거야 기본이고 그것을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모두들 너무 잘 먹고 살아야 한다고, 모두들 벼락출세를 하고, 최고급 아파트에 외제 자가용을 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나는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열심히 찾아가는 진지한 젊은이들이 많다고 본다.

 

-지방대학을 나와 지방대학에 근무하면서 콤플렉스를 가졌던 적은 없나. 살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었나.

△미국 대학에서 연구할 때도 그런 느낌을 가졌다. 서울 학회에 갔을 때 ‘아직도 그 학교에 있느냐?’고 이죽거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콤플렉스를 주는 요인들을 잘 알고 그것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경멸하며 이겨냈다. 서울 일류대학에 다니는 자들은 나보다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시험공부에만 열중한 속 좁은 인간들이라고 경멸하는 식이다. 그들을 숭배하거나 나 스스로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으로 나는 더 훌륭하고 당당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학연 혈연 지연이라는 인적 네트워크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 패거리문화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신 적이 있나.

△엄청나게 자주 경험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사회의 선거만이 아니라 대학의 총장 선거 등에서도 경험했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너무 자주 겪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일본에 있을 때도 국내의 지역주의를 일본에까지 끌고 와서 경상도 출신이라고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그것도 진보라는 청년 유학생들이. 또 언젠가 경북대학교에서 노동교육을 하는데, 지방 출신의 어떤 노동운동가가 뒤에 가서 노동자들에 반하는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했더니, 한 사람이 일어나 ‘그 정치인이 당신의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렇게 비판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동창이면 무조건 지지해야 하고 선거에서도 찍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패거리 짓는 것을 싫어하고 인연을 중시하는 풍토를 비판한다. 그러면 학교나 학계에서 대표나 임원으로 활동하신 경력은 어떤 게 있나.

△1990년대 후기에 민주주의법학연구회장을 하면서 전두환 노태우 재판에 앞장섰고, 2000년대 초기에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을 지내면서 아나키즘 연구를 했다. 최근 20여 년 간 한국과 일본의 노동법 학자들이 모인 한일노동법포럼의 한국 대표를 지냈다.

-우리 사회는 교수를 지식인이자 기득권층으로 인식한다.

△교수가 지식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300∼400만원 월급쟁이인데 무슨 선택받은 기득권인가? 지금 내가 사는 시골 마을 앞뒷집에 군대 하사관으로 제대한 분이나 학교 직원으로 퇴직한 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다들 나보다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선택을 받았다는 말인가? 교수가 학문을 하는 사람이니 지식인 대접이야 받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그게 무슨 명예인가? 나는 교수가 그렇게 잘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평범한 시민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지성인으로서, 대학교수로서 정치인과 재벌 등 기득권에 늘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왔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하나. 지금 우리 사회에 충고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실 수 있나.

△글쎄, 필요할 때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기회가 반드시 많지 않았으니 항상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제발 과도한 물질주의, 출세주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내 주변을 보면 다들 잘 먹도 잘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욕심이 끝이 없어 보인다.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그 대신 정신을 살찌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두 돈 욕심만 부리니 기후변화도 오고 코로나도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 정신 차려야 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정체성과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스스로의 경험을 살려 충고를 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나.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남보다 더 잘 먹고 살려고 하지 말고, 자기실현과 사회정의 실현에 더 충실하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고령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국민소득보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노인들이 행복하려면 홀로서기 연습을 해야 한다. 40년 전 일본에 있을 때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 도서관이 문 열기 전부터 노인들이 줄서서 기다리다가 문 열면 들어가서 제각기 자기 공부를 하더라. 거기엔 시험 공부하는 중고생이나 대학생은 없더라. 우리도 노령사회를 맞아 노인들이 외로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자기만의 학습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행복이 되어야 한다. /이경우 편집위원

□박홍규(朴洪圭·70)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저술가.

구미 출신, 경북고, 영남대 법대, 영남대 법학석사. 일본 오사카시립대 법학박사.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

법학자로 모든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초기엔 헌법과 전공인 노동법 관련 저서를 쓰다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철학과 문화 예술 관련 저술에 집중.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 수상(1997).

노암 촘스키, 에리히 프롬, 반 고흐, 에드워드 사이드, 존 스튜어트 밀, 톨스토이, 이반 일리히, 조지 오웰, 간디, 카프카, 루쉰 등의 평전을 썼고,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니체는 틀렸다’, ‘제우스는 죽었다’, ‘인문학의 거짓말’, ‘독서독인’,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플라톤 다시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등 저서를 썼다.

패거리를 거부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한 모든 문화 권력을 혐오하며 주류 사회로부터 자발적 따돌림에서 오는 고독을 즐기는 아웃사이더이자 진정한 자유인. 아나키스트. 지독한 엄격함이 때로는 오만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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