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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생활화 기여, 진정한 문화 도시 대구 만들겠다

등록일 2022-06-13 19:49 게재일 2022-06-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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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    □ 신중현(申重鉉) 학이사 대표

모든 것이 광속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시대. 그런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뒤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힘, 그것은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책이 인류의 지혜와 정보의 보고라면 그 보물과 소통하는 방법이 독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생각을 깊게 하게 된다. 독서는 지식에의 허기를 채워주고 독서카페나 동아리 문화센터를 통해 지적 허영심까지 해소시켜 준다.

평생을 책을 만들어 온 신중현 학이사 대표. 그는 “책 읽기는 숙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가 있다는 것은 좋은 언론사나 대학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그는 책을 통해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역 대구가 진정한 문화의 도시, 책의 도시가 되는 길을 고민한다. 그가 독서아카데미에 열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출판은 그 지역의 진정한 삶을

발굴하고 기록한다.

그것은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래서 ‘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 쯤

있다는 것은 언론사나 대학이

하나 있는 것이다’는 말로 용기 낸다”

 

- 대구가 인쇄 출판 도시라 불렸는데, 대구 출판업계의 현황은 어떠한가.

△역사적으로 대구는 출판 문화의 도시였다. 특히 6·25 전쟁을 계기로 서울의 작가와 출판사가 대구로 피란 우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 때 출판의 수도로 번창한 곳이 대구다. 내가 출판사 이상사에 입사하던 1987년만 해도 전국을 무대로 활발한 영업을 하던 수많은 출판사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신생 출판 기획사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대구시에 등록된 출판기획사 수만도 1천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게 많지만 단행본을 출판하는 출판사는 몇 되지 않고 대부분 관공서나 특정 업체의 인쇄물을 수주 받아 인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종이책의 위기라 그런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책값이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독서 인구는 오히려 늘어난 것 같다. 지금 지하철에도 도서관 시스템이 있고 동네 도서관을 통해 책을 빌릴 수 있다. 독서 환경이 정말 좋아졌다.

예전에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여성이 가장 큰 독자층이라 했다. 지금은 30 ~40대가 가장 큰 독자층이라 생각한다.

 

- 대구서적 문화서점 본영당서점 제일서적 학원서림 태양당 등 문화도시 대구의 위세를 보여준 서점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정말 서점들이 많이 줄었고 대구가 특히 심하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서점들이 건물 임대료에 밀려 업종을 바꾸고 사라진 것이다. 현재 대구를 대표할 토종 서점이 없다. 많은 서점들이 학습교재 판매로 주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으로는 전국적으로 작은 책방이 골목마다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 디지털 시대, 모바일이나 e북이 종이책을 삼킬 것으로 보나.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양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줄어들겠지만 종이책과 모바일이나 e북이 지닌 물성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평생을 책을 만들어왔다. 종이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종이책은 읽는 사람에게 깊게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건 정말 중요하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교감할 수 있고 자신의 상상을 펼쳐 나갈 수 있다.

기억하고 싶은 곳은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 등으로 표시할 수 있어 다시 찾기 편리함과 더불어 내용을 기억하기에 유리하다. 종이책은 읽는 사람에게 무게와 형태, 그리고 종이의 감촉 등이 책의 물성을 느끼게 한다.

 

- 지방 출판사의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

△이건 지방신문과 중앙일간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 중앙과 지방의 차이는 인력과 마케팅 능력, 자본 등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좋은 책은 기획하려면 그만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지방 출판사에서 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 출판사의 어려움은 지방 작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을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면 서점에서 일반 독자와 만나는 선순환의 유통 구조를 이뤄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서점들이 거의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중앙 중심, 대형출판사 중심으로 책의 유통구조로 짜여 지면서 지방출판사는 물류면에서도 불리하고 지방출신 작가의 위치도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어려운 구조라는 이야기인가.

△좋은 작가의 책을 기획해서 서점에 내놓고 책이 독자와 만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획출판은 드물고 대부분의 책은 작가가 자비출판해서 배급까지 떠맡고 있다.

자비출판의 경우 저자가 출간한 책을 본인이 지인들에게 배포하는 것이다. 어쩌다 판매가 예상되는 책이 있을 때는 출판사에서 일부 판매에 나서기도 하지만 물류창고도 있어야 하고 영업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흔하지 않다.

책이 더 이상 라면 냄비 받침에서 탈피해야 한다. 안 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책도 있다는 정도는 알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책 광고만 하더라도 한 때는 책 광고 한 번에 뉴 그랜저 한 대 값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만한 값어치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지역 출판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 출판사가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 출판사가 그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 생각하면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책 출판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자부한다. 출판은 그 지역의 진정한 삶을 발굴하고 기록한다. 그것은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래서 ‘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 쯤 있다는 것은 언론사나 대학이 하나 있는 것과 같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용기를 얻는다.

지역 출판사의 역할이 왜 소중한지, 왜 지역 출판사를 아껴야 하는지를 알리는 데에도 적극 나선다. 책을 통해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 대구가 진정한 문화의 도시, 책의 도시가 되는 길을 고민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 학이사(學而思)라는 출판사 상호부터 특이하다. ‘학이’는 뭐고 사(社)가 아니기도 하다.

△논어 위정편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판사명을 생각 사(思)로 쓰는 것도 그래서이고 이건 기업정신이기도 하다. 2007년 대구의 한자 옥편 전문 출판인 이상사(理想思)를 맡으면서 이름을 바꿨다.

학이사는 2017년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기획 편집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출판학회가 제정한 상으로 출판사가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기획 편집부문 상을 지역출판사로서 받은 것이다.

 

- 그동안 어떤 책을 얼마나 발간했나. 어느 책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종이책 400종, 전자책 150종, 그리고 오디오 북 몇 권을 냈다. 1년에 30권 가량을 내고 있다. 가장 자랑스러운 책은 대구에서 코로나가 창궐하던 당시 국내 처음으로 코로나 관계 도서를 발간해 기록으로 남기고 전국적인 코로나 관련 도서 발간의 동기를 만들어 냈다는 거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한 달 여 만인 2020년 4월 17일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발간했다. 각기 다른 직업의 대구시민 51명의 코로나 체험기다. 이어 대구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의사와 간호사, 구급대원 등의 체험과 제안을 수록한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를 냈다.

책이 나오자 중앙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했고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되고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까지 관심을 갖고 취재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지역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환경운동가 정홍규 신부의 ‘마을로 간 신부’로 중국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사전검열에서 4대 금서 리스트에 오른 일이다.

 

- 출판사 운영에 어려운 시절은 없었나. 언제가 제일 힘들었나.

△시쳇말로 ‘단군 이래 안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디지털시대인 지금이 어렵다면 가장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펄프 값이 40%나 뛰고 제작비가 인상되어 힘들다. 그러나 출판 환경은 예전과 달라졌다. 대통령 욕이든 어떤 이야기든 제지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 학이사에서 주관하는 독서아카데미가 지역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을 통해 개인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책을 제대로 읽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2016년 시작, 지난해 7기까지 배출했다. 매 기수 15명이 주 1회씩 3개월간 12강으로 완성한다. 문무학 시인의 강의와 서평쓰기 공부를 통해 제대로 읽는 방법을 배운다. 수강생 중에는 멀리 경주나 구미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부터 70대까지 연령층과 직업 또한 다양하다. 각 기수별 수료생들의 서평집을 발간해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 또 지역 일간지에 매주 토요일 ‘내가 읽은 책’으로 연재(6월 4일 현재 237회)하고 있다.

 

-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출신의 모임인 ‘책으로 노는 사람들’도 책읽기를 전파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의 동서양 고전문학을 번갈아 읽고 토론을 벌이는 모임으로 2016년 7월 설립됐다. 코로나로 한 자리에 모일 수 없었을 때는 단체 톡이나 줌을 이용해 독서토론을 벌여왔다.

또 문학작품의 배경지 답사를 연례적으로 벌이고 있기도 하다. 춘향전의 배경인 남원, 무영탑(김동리)의 배경 경주, 삼국유사 배경 군위 인각사, 칼의 노래(김훈)를 읽고는 고령, 덕혜옹주(권비영)를 읽고는 ‘대마도 하루 만에 다녀오기’ 등 작품이 탄생한 현장을 찾아 작품의 깊이를 되새기고 있다.

 

- 학이사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작가 60명의 자기 책에 대한 생각을 담은 ‘내 책을 말하다’를 출간했다.

△올 해는 창사 15주년이자 학이사의 전신 이상사를 기준으로 35주년이 된다. 그동안 나는 출판인으로 학보사 활판인쇄에서부터 청타와 인화지의 사진식자 시대를 건너 현재의 전산 시대까지 출판 현장을 경험했다. 내달 쯤 개인의 출판계 역사를 출간하려 한다.

 

- 지역 출판사로 서평쓰기 대회를 열고 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학이사 취지에 공감하는 지역인의 지원으로 2017년부터 시작하고 있다. 기업이 이름을 걸고 후원하고 수상을 받은 개인은 물론 회사에서도 독서 활동으로 이어지는 행사다.

앞으로 ‘책 학교’를 만들고 싶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책이 부담스런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친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어린이에게 장난감이 친밀한 것처럼. 아직은 막연한 꿈일 뿐이지만.

 

 

신중현 학이사 대표

경남 거창 출신. 가조고, 계명전문대 무역과. 방송통신대, 방통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중퇴.

1987년 6월 29일 이상사에 입사해 편집자와 영업사원을 거쳤다. 2006년 7월 1일 이상사를 물려받아 학이사로 변경하고 대표가 됐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을 만큼 책을 만드는 일이 신이 났다’고 회고한다.

그가 자란 거창군은 군 단위에서 고교가 6개나 있는 전국 굴지의 교육도시이다. 독학사 자격을 따고는 대학원에서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다 접었다. “학력을 세탁해서 출세할 일도, 취업할 일도 없는데 밤새워 공부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 기여의 길을 찾은 것”이라 한다.

35년을 책과 살아온 그는 돈 많이 벌면 ‘책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취미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생활로서의 독서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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