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br/>건축가 최상대
건축은 우리 삶을 담는 그릇이다. 겉으로 보기엔 조형성의 예술 영역이지만 그 내면에는 기능이라는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건축가의 생각이 현실적 작품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한계를 건축 스케치로 해소하는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장. 그에게 건축은 역사와 문화와 전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 시대의 정신과 함께 담겨 있어야 한다. 그는 건축을 집짓기라는 영역에서 인문학의 세계로 지평을 넓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가겠다고 욕심낸다.
한옥의 현대화는 외형의 복제가 아닌 전통과 문화의 계승이어야 한다. 현재 대구시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과 재건축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미래를 내다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획일적 아파트만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궁궐건축, 사찰, 민가, 정자건축에는
세계에 없는 K건축만의 정신이 있어
한옥의 정신과 공간의 맥락 연결되는
창의적 탐색이 곧 세계화로 이어질 것
재건축·재개발, 기존보다 더 새롭고
미래를 내다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다음 세대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공적 도시’ 화두 사명으로 여겼으면”
- 좋은 건축, 훌륭한 건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탄생하나.
△기능과 구조, 미(美)를 건축의 3요소라고 한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건축은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영위하는 건축의 기본이다. 건축주의 균형 있는 요구와 건축가의 훌륭한 설계에 따라서 성실한 시공자의 능력이 합일된 마음으로 세워지고 만들어진다면 좋은 건축이 탄생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영위하는 주거 건축에서 지금은 현대 문명생활을 위한 이상적 건축이 요구되고 있는 시대이다.
-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가 각 분야에서 세계화하고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통건축과 한옥은 그 시대의 시간과 생활문화라는 공간적 산물이다. 당연히 고려, 조선시대의 일상과 삶이 건축에 녹아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문명과 함께 공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궁궐건축, 사찰, 민가, 정자건축에는 세계에 없는 K건축만의 정신이 있다. 건축문화 유산 계승과 연구로 한옥의 정신과 공간의 맥락이 연결되는 창의적 건축 탐색이 곧 세계화로 이어질 것이다. 기와지붕, 처마선, 배흘림기둥으로 표현되는 외형적 형태의 재현에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한국의 서원, 전통마을의 구성들은 일제강점기, 6·25동란,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중간적 연계가 없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러나 K팝의 세계화처럼 이제는 건축에도 한류 파워가 생겨나고 있다.
- 현재 대구시내 곳곳에서 재건축과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경관과 주변 환경 등 생활 여건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나.
△아파트는 현대 주거생활이 극대화로 치달으면서도 건축 문화적으로는 하극상(下剋上)으로 표현되어지기도 한다. 함께 산다는 ‘공동 주거’라는 본질에서도 벗어나 차단되고 고립으로 치닫고 있다. 골목도 이웃도 동네도 사라지고 건폐율과 용적률 채우기에 급급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땅값이 올라가고 재산증식 수단으로 아파트 구입과 평수 늘리기에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도시계획도 이상적인 삶의 터전이 아닌, 아파트지구만 채워지는 기형적 도시가 되고 있다. 도시의 바람길이자 물길인 신천 양편에도 아파트로 채워져 가고 있다.
시민의식과 국민의식이 재건축과 재개발은 기존의 개발과 건축을 더욱 새롭고 미래를 내다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들이 함께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공적 도시’라는 화두를 사명으로 여겼으면 한다. 그러나 현실적 제도적 인식적으로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생각이다.
- 아파트에 변화를 주는 것은 불가능한가.
△아파트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 변형이 테라스를 넓히고 빛을 거실로 들여 놓는 정도이다. 변화를 주고 설계를 새로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해서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건축주의 생각이나, 그렇게 해서 살려고 하지 않는 시민의식도 바뀌어야 할 문제다.
지금 아파트는 외관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통제가능한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다양한 아파트 디자인과 경관 변화는 어려울 것 같다.
- 한옥을 좋아하면서도 한옥지구로 지정해도 현실적으로는 잘 들어서지 않는 것 같다.
△한옥의 정신은 마당과 사랑채에 있다. 기와집이라는 목조 시대의 필연적 결과가 한옥인 것이다. 복고에의 환상이나 추억이 외형의 복제를 가져오는데 이건 또 다른 실패작일 뿐이다. 대형 관공서 같은 건물이 표피만 한옥을 복제한 시멘트 덩어리는 결코 문화가 아니고 전통도 아니다.
우리는 골목이나 작은 가게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전통을 파괴하고 재건축하고 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고도(古都)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빠른 근대화는 금전적 가치와 함께 전통이나 한옥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생활 터전이 상업적 가게로 변하면서 현재까지는 성공적이지만 계속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시민상대 특강을 나가보면 수강생들의 높은 수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생활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하고 교양으로, 생각으로만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 도시에서 건축물 외관과 내부만 치중하고 건축물 주위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도시에 공간 구조물을 배치하면서 쾌적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편하지 않은 생활공간부터 마련하는 도시계획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건축물이 예술작품이라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바라는 경제가치가 내재된 상업시설이자 업무시설이다. 아파트도 분양 대출 투자라는 논리 안에 갇혀 있다. 도시 경관을 지배하는 것은 고층 주상아파트가 되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 그렇듯 피해갈 수 없는 경제 논리 과정에서 건축가 행정가 시행사 건설사의 인식과 무엇보다 시민의식의 변화와 향상이 가장 중요하다.
그나마 문화 예술 시설이 복잡다단한 도시민의 정서를 품고 위안을 주는 오아시스적 건축이어야 하는 이유다.
- 대구문화예술회관이나 경주 엑스포공원의 황룡사 9층탑 등 건축물은 나름의 상징을 띠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나 시민회관(대구콘서트하우스), 경북실내체육관 건축은 지역건축가인 고 후당 김인호의 작품이다. 시민회관은 철거하지 않고 건축 이미지를 영속하는 리노베이션으로 새로운 콘서트홀로 변신하는 사례를 남겼다. 기능이 다한 실내체육관도 구 경북도청 후적지(현 대구시청 별관)와 함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 시민공간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체육관이라는 한정된 이미지에서 문화적 시각을 입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길 바란다.
경주 엑스포공원 상징 타워는 1500년 전 세워진 신라 황룡사 9층탑을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아이디어에서 실루엣으로 상징화한 현대 건축이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역사보존도시의 건축 컨텐츠요, 경주의 랜드마크다.
- 유럽의 런던이나 파리 같은 도시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중국의 고대 도시들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은 모두가 역사적인 건축 문화유산들이다. 과거 시간이 그대로 연계되어서 지금 국가와 도시의 관광 상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도 도동 도산 옥산 소수서원과 하회 양동마을, 대구의 청라언덕, 사대문 읍성, 약령시의 흔적으로 컨텐츠를 구축해 왔다. 우리가 배척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로 지워버렸던 일제강점기 건축조차 100여 년의 근대건축으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역사의 단절은 곧 잃어버린 건축 문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 대구시청 신청사를 달서구 두류정수장 부지에 건설하게 된다.
△대구 미래의 청사진을 담을 새 청사 건축은 명실상부한 대표 건축 작품을 세울 기회를 살려야 한다. 두류산 공원의 자연환경을 연계하고 여유로운 부지와 공간적 배경, 시청사의 업무기능에만 한정하지 말고 시민문화 공간, 대구시 상징 공간, 주변 전망공간을 모두 갖춘 복합적 미래 청사로 세워져야 한다. 기존의 대구시 청사는 업무적인 1차 기능만 담당했다. 새로 지어질 신청사는 오피스 빌딩의 단순 기능을 넘어 대구의 대표 조형물, 랜드마크로 건축되어야 마땅하다. 일본 동경도 청사처럼 문화와 예술의 복합기능과 시가지 조망이라는 기능을 더한 다목적 종합 청사여야 한다.
- 대구지역의 공공 건축 공간에는 어떤 조형 건축이 들어서야 할 것인가.
△앞으로 공공건축은 시립박물관과 도시건축미래관이 들어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시립박물관은 지역 내 각 대학에 분산되어 있는 박물관 기능을 한 곳으로 집중하여 관람 기회를 높이는 것이다. 진정한 시민의 박물관으로 전환해서 박제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또 대구의 역사와 변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도시건축미래관이 들어서야 한다. 그곳에서 대구의 50년, 100년사를 집약 전시해서 지금까지 도시의 난맥상을 짚어보고 앞으로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뿐 아니라 외부 방문객에게 대구의 건축과 경제 문화를 한 곳에서 보여주는 공간 시설이 되는 것이다. 세계의 도시에는 그 도시의 생성과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도시 건축박물관이 있다. 중국 닝보시의 도시계획관처럼 도시의 미래 비전을 보여줌으로서 앞날을 내다보게 하는 일종의 도시계획관이 되는 것이다.
- 건축가로서 스케치여행을 활발하게 하고 책도 3권이나 냈다.
△과거에 반해 건축이 인문학 영역으로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고 이에 따라 다양한 체험을 통한 건축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현실에서는 건축주의 요구와 법규적 제약, 경제적 여건 등 이유로 건축 설계 작업이 작품이 항상 좋은 작품으로 현실화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완성되지 못한 아쉬움과 과정을 스케치와 글로 표현해 왔고 전시와 책으로 정리했다. 컴퓨터로 표현하기 이전 마음과 몸의 표현이 스케치 과정이다.
대구와 호치민 교류 미술전에 대구의 건축을 표현한 스케치 시리즈를 출품, 베트남 미술인들에게 건축가의 스케치가 대구를 알리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책 발간을 통해 대학, 도서관, 연수원, 단체모임 등에서 건축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됐고 시민들에게는 인문으로서의 건축을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계기가 됐다.
- 건축가로서, 화가로서, 수필가로서 앞으로 활동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적으로 내면의 깊이를 살찌우는 성찰의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대중적 만남을 자제하는 대신 진정성을 갖고 참으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깊게 교유하고 예술 문화의 세계에 깊숙이 침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돌아보면 그동안 건축가로서 또 사회적으로 활동도 열심히 다양하게 했다. 아직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외연을 확장하며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다. 국내외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스케치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시민 사회의 문화적 고양과 성숙된 건축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인문학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예술학 철학 공부에도 도전하고 싶다. 물론 건축설계 본래 작업을 손 놓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작업 공간을 재정비하고 있다.
□ 최상대(崔相大·66)
한티시티건축 대표.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장.
경남 의령. 중앙대 건축과, 경북대 건축과 석사.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대구예총 수석부회장(회장 대행), 대구광역시 경관위원(장).
이인성 고택 복원추진위원. 경북대, 영남대 겸임 초빙교수.
저서 ‘말하는 건축, 침묵하는 건축’, ‘대구의 건축 문화가 되다’, ‘건축, 스케치로 읽고 문화로 말하다’.
대구건축작가상 수상, 한국예총 예술문화 대상.
포항 워터폴리, 부광교회, 경북대 전자공학관, 복현회관, 영남대 기숙사, 국군체육부대, 88올림픽 레슬링경기장 등 설계.
경남에서 고교시절 대구로 전학 왔고 대학 졸업후 국내 최대 정림건축에서 10년 근무했다. 삼척문화회관 전국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대구에 정착, ‘고군분투’한 끝에 대구에 뿌리를 내리고 작품 활동과 사회활동 병행했다.
건축을 전공한 공학도이지만 문화와 예술을 건축에 접목한 인문학적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