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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

등록일 2022-02-24 18:30 게재일 2022-02-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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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얘기다.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했다. 이후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대선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 터져나온 여당의 정치개혁 공약이 야당 후보들로부터 진정성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여당의 다당제 정치개혁안에는 다당제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 대선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 개혁 등이 포함돼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일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제외한 제3지대와 이재명 대선후보 간 연대를 시도했다. 그런데 군소 야당후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차갑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의 선거제 개혁 발표에 대해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소신대로 하면 될 일이지 그걸 빌미로 단일화하자고 하지말아 달라는 뜻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아예 정치개혁안이 선거와 연계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 후보는 “공약을 내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랜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지난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심 후보와 정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온 힘을 보태서 만든 선거제도 개혁을 뒤집어 엎은 일을 거론했다.

지난 20대 국회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을 고리로 국민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4+1 연대(민주당+군소4야당)’까지 했지만 이후 민주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뒤통수를 쳤던 원한을 다시 떠올린 셈이다.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 역시 민주당의 정치개혁 공약에 대해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는 “연동형비례대표제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무력화시켰고, 서울·부산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보낼 때는 개혁 성과라고 자랑하던 당헌당규까지 고친 게 바로 일년 전”이라며 민주당을 선거전략만 고민하는 ‘양치기 소년’에 비유했다.

지금의 양당체제는 적지않은 문제가 있고, 폐해를 줄이기 위한 정치개혁은 꼭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치개혁안에 아무런 반향이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많은 국민들 앞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합의하고도 손바닥 뒤집듯 합의를 무너뜨린 여당을 믿을 수 없기때문일게다. 무신불립의 교훈을 지키지 않은 여당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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